건강 기준이 나를 배신한다면

건강을 파는 사회에서, 건강 공포를 파는 사회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건강은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지 궁금하다. 흔히 말하는 건강의 기준이 트랜스젠더퀴어에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인바디 검사 결과는 어떤 젠더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적절할까? 태어날 때 남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인바디 검사 결과는, 특히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엔 어떤 젠더의 평균값으로 평가해야 할까? 건강검진의 해석이 트랜스젠더퀴어를 배신한다면 이것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사유하지 않는 의료 사회가 문제란 뜻이다.
두 갈래 고민. 트랜스젠더퀴어는 의료에 종속된 존재라는 비난이 있는데 왜 인바디 검사 같은 건강 검진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배신할까? 건강 검진의 결과 해석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트랜스젠더퀴어의 건강 중 어떤 부분은 해석 불능의 영역으로 남는다. 물론 해석하려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트랜스젠더퀴어를 존중한다면서 건강의 개념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순이고 언어도단이다.
그리하여 다시 질문. 건강해야 하는 것일까? 왜 건강해야 하는가? 의료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을 하지만 그냥 병원에 안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쇼닥터의 목적은 시청자가 건강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만들어서 병원에 가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그냥 건강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텐데… 미뤄둔 ‘건강에 반대한다’란 책을 읽을 때가 되었나…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마주하다: 어머니와 건강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 관련 이야기는 1~2번 흘리듯 나오는 수준이었고 진로 문제도 1번 정도 나오는 수준이었다. 2박 3일 동안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 거의 반드시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길게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이야기 주제가 바뀌었다.
일상의 병리화, 의료화를 고민하고 관련 자료를 접하다보면 엉뚱하게도 어떤 성분이 어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함께 알게 된다. 머리가 나쁜 나는 이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는 동시에 잊어버리지만 간혹 기억한다. 그렇게 기억에 남긴 정보 중 몇 가지가 있는데… 혈액순환 관련 정보 중 일부와 면역력, 감기, 그리고 비염 관련 정보 중 일부다. 처음부터 이 두 정보가 내게 두드러진 건 아니고 어느 순간 내게 의미있게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는 늘 손발이 저리는 증상을 좀 심하게 겪었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관련 어려움을 겪으셨다. 최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걸 봤는데 혈액 관련 정보를 보다가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러자 또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환절기와 겨울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늘 감기에 걸려 있었다. 전화로는 늘 괜찮다고 하시지만 끊임없는 감기의 나날. 면역력이 약해서 발생하는 문제기도 할 테고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두 정보가 연결되자 어머니에게 각각에 해당하는 약이라도 사드려야겠구나 싶었다. 내가 효트랜스여서가 아니라(결혼 안 하는 나는 영원한 불효트랜스지) 그냥 그랬다. 그래서 ㄴ과 ㅍ을 챙겨서 부산에 갔는데… 이 두 제품을 계기로 어머니가 드시고 있는 건강보조식품 관련 이야기,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강 관련 이야기 등을 주로 나눴다. (덩달아 암웨이 종합비타민의 폭리도 확인했다…) 이제까진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주제기도 했고 어떤 의미에선 어머니가 가장 신경쓰고 걱정하고 계신 주제기도 했다.
무엇이 몸에 좋다 아니다, 어떤 제품이 이런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논의는 그 자체로 논쟁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동시에 이렇게 건강 강박 논의와 건강을 유난으로 여기는 태도 사이에서 병리화와 탈병리화, 의료화 논의는 별개로 탐문해야 할 이슈다. 학생인 내가 이런 이슈를 파고드는 것과는 별개로, 건강 제품을 통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몰랐던 점을 알아가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해당 제품이 실제 건강에 도움을 주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건강이 어머니의 주요 관심사라는 점에서 그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걱정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지.
아무려나 이번 부산 방문은 뭔가 좀 달랐다.

스트레스인 하루

어머니와 텔레비젼을 켜고 이런저런 일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ㄱ.
왜 박근혜 연설의 특징. “…합니다. (짝짝짝) 입니다. (짝짝짝) …않겠습니다. (짝짝짝)” 문장 하나 끝나면 박수를 쳤다. 도대체 왜? 별 내용도 없는 연설인데다 내용과 무관하게 도대체 왜 문장 하나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거지???
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어…’
광복70주년 기념 방송의 아나운서부터 거리 시민 인터뷰까지 모두가 하는 이 말.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어…” 도대체 왜 강대국이 되어야 하지? 강대국이 되면 시민의 삶은 뭐가 좋아지지? 정말 궁금했다. 세계 제일 강대국이 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여러 복잡한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지나요? OECD 가입국 지위로도 온갖 차별이 만연한데 무슨…
ㄷ.
광복 이후 70년을 기념하는데 각종 영상이나 언설은 모두 박정희를 회상한다. 경제 성장을 찬양한다.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는 없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로…”와 같는 언설은 넘치는데 경제성장이 독재정권의 탄압을 밑절미 삼았다는 지점,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과 관련한 비평은 전혀 없다. 그런데 박정희만 연상시키는 과거 회상을 현재로 바로 연결하는 역사 회고는 박근혜를 현재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방송은 끊임없이 박근혜를 1970년대의 유산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럼 누가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지? 아무려나 역사가 권력의 입장에 따라 달리 재현됨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다
아우, 짜증나.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