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단어로 설명하지 않기

누군가를 계속해서 언급하며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건 슬픈 일이다. 쓰고 나면 지치고 왜 이런 글을 썼나 싶다. 그런 글을 써야 해서, 할 말이 있어서 작업을 했다지만 편하지 않다.

그런데 나 나름르로 살벌하게 비판했다고 느끼는 구절이 남들에겐 순하게 부드럽다는 인식을 준다. 뻔한 소리거나 수위가 낮거나. 혹자는 이런 톤이 나의 문체라고 했지만 때론 정말 살벌한 톤으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퇴고 과정에서 끊임없이 순화되기 마련리지만… 톤이 세면 문장이 거칠고 어색해서 별로더라.

그래서 요즘의 질문은 혐오가 뭔지 모르겠다,이다. 혐오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을 설명할 수 있고 어떤 현상을 포착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혐오 프로젝트 회의에서 이야기했듯 이런저런 현상을 분석하고 명명하기 위해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왔다. 어떤 뚜렷하고 선명한 용어말고 구체적 현상을 그냥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의제설정이 힘든 것일까? 요즘 고민거리다.

영양을 둘러싼 논쟁의 복잡한 지형을 배우기

어떤 것의 효능을 둘러싼 논의는 언제나 협상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우유.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우유. 우유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하는 논의는 관련 업체와 무관하기 힘들고 부정적 효과를 주장하는 논의는 실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논쟁은 비타민 복용제.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암을 유발하거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주장이 대립 관계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 논의에서 제약 회사와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는 회사 사이의 이윤 관계가 얽혀 있으니 흥미롭게 살펴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논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논의를 살피면서 궁금했다. 합성 비타민 복합제의 무용성 및 유해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일상 생활에서 식사만 제대로(!) 하면 복합제의 복용이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이 식사를 제대로 챙길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고, 한식은 영양이 고루 갖춰진 식사라고 주장하는 언설은 헛웃음만 나오지만(잘 차린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지?) 아무려나 이런 건 나의 주요 관심이 아니다. 나의 질문은 단순하다. 합성 비타민 복합제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비건채식을 하는 사람에겐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채식은 위의 논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거운 이슈다(온전히 나의 체감일 수밖에 없다). 온갖 산업이 얽혀 있고 경험이 얽혀 있고 믿음과 주장이 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논쟁 분야가 육식의 유해론이다. 합성 비타민 복합제의 유해론과 무해론을 둘러싼 논의는 어쨌거나 충분한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는 점 자체엔 동의한다. 고기가 유익하다는 주장과 아무 필요 없고 유해할 뿐이라는 주장은 협상 불가능하고 과학과 의학의 믿음 체계 자체를 달리 한다.
고기를 비롯한 잡식이 건강에 좋으며,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합성 비타민 복합제를 비롯한 여러 영양제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비건채식에게 어떤 말을 할까? 고기를 먹으라고 할까, 고기를 못 먹겠다면 합성 영양제를 먹으라고 할까? 물론 전혀 다른 답변의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 어떤 대답이 나와도 뜨거운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건 채식이 반드시 건강한 식사라고 믿지 않는 나로선(정크비건이 할 얘기는 아니겠지만… 크) 이런 논쟁을 둘러싼 입장과 의견이 궁금했다.
아울러 의료화, 탈병리화 등을 둘러싼 강의를 했는데, 이런 논의를 좀 더 일찍 접했다면 더 재밌게 강의를 했을 텐데… 아쉽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혐오라고 명명해야 할까

혐오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할까? 이 용어가 오히려 논의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이항대립 구조를 강조하게 만드는 방식은 아닐까? 요즘 이런 고민을 몇 명의 사람과 나누고 있다.
예전에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정몽준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두고 꼭 관련 모든 사건을 성희롱 혹은 성폭력으로 명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다른 용어로도 해당 사건을, 여러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데 성희롱이나 성폭력과 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건을 오히려 단순하게 규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요즘 그 질문을 자주 떠올리는데 혐오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가 아니면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 이 고민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