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힘든 일

옳고 그름의 문제, 우월과 열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어제 밤에 읽은, 제대로 비평글을 쓰고 싶도록 한 어느 논문(그 논문은 문화연구자 양성의 현주소를 논하고 있다)에서 문화연구가 사회과학을 포함한 분과학문에 인문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며 인문학과 출신은 연구대상이 인문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에 가까워서, 그리고 글쓰기 형식이 달라서 문화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출신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성찰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하여 문화연구 논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그 이후 여성학을 공부했고 석사논문은 영문학전공인 선생님에게서 썼고, 지금은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다. 어찌보면 분과학문의 양극을 전공하고 있지만 나는 이들 학문 사이에서 부대끼거나 뭔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겐 이들 모두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부지 뭔가 낯설고 괴로운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 전공자는 다른 어느 전공을 익히기 어려워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 (나는 그 문단에 커다란 물음표를 그려뒀다.)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공부했고 읽었던 나로선 서로 낯설어하는 태도 자체가 낯설다.
다른 말로 나는 아직도 사회과학적 연구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동시에 사회과학적 연구라는 것과 인문학적 연구라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몸은 치명적 한계일 수 있다. 학문을 제대로 모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 왜 형식, 아니 관습부터 규정해두고 시작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일단 원하는 형식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나? 공부가 짧은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인데 블로깅하려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어쨌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mtf/트랜스여성/트랜스젠더/젠더퀴어의 성적 ‘반응’과 관련해서…

정말로 단순하게 짧게.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훨씬 길어야 하고 복잡하니까. 짧게.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남성으로 지정받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남자로 불리고, 남성으로 양육되고 “사내자식이”란 말을 들어야 했지만, 자신을 남성으로 동일시하지 않거나 여성으로 인식하거나, 남성이자 여성이라고,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그냥 트랜스젠더라고, 젠더퀴어라고 또 다른 어떤 젠더라고 인식하는 사람들 중에서 종종 혹은 자주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성적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은 짧다면서 문장은 무척 길다.. -_-;;;] 특히 발기와 사정으로 말해지는 경험 때문에 더더욱 괴로워하고 자신의 몸과 갈등하기도 하죠. 발기와 사정이 언제나 비트랜스-남성의 경험으로만 말해지기에 몸의 이런 반응, 혹은 작용에 거부감이 크기도 하고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이 여성이어서, mtf여서, 트랜스여성이어서, 젠더퀴어여서, 트랜스젠더여서, 혹은 다른 어떤 젠더여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땅한 대체 용어를 아직은 못 찾았지만(애써 용어를 바꾸기보다는 의미를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멋진 용어가 있다면 좋겠지요) 발기와 사정은, 예를 들면, 당신이 여성이어서 경험하는 겁니다. 발기와 사정은 트랜스여성이어서, 트랜스젠더여서, 젠더퀴어여서 혹은 또 다른 어떤 젠더여서 하는 경험이지 ‘남성’이어서, 남자의 몸이라서 겪는 게 아닙니다. 발기와 사정으로 괴로워 하지 말아요.
(물론 연애를 원할 경우, 파트너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가… ;ㅅ; )
아무려나 이 주제와 관련해선 정말 제대로 글을 쓰고 싶어요.

LGBT란 말은 애초 불가능했는지도…

어떤 연구 분야에서 이제까지 LGBT와 관련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논문도 게이남성에 집중하고 있고 레즈비언, 바이여성, 트랜스젠더는 빠져 있다고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그 자신의 논문은 제목에 LGBT를 분명하게 명시했다. 그리고 글을 전개하는 내내 LGBT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논문에서 바이/양성애와 트랜스젠더는 기껏 몇 줄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동성애 논의였다. 동성애 맥락의 논의를 하면서 LGBT라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같이 언급하며 성적 지향 이슈라거나 성적 정체성 이슈라고 설명했다. 흠…
LGBT는 LGB/T인지, LG/B/T인지, L/G/B/T인지 심하게 많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각각을 나누는 의도는 다 다르다. 트랜스젠더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하자. 트랜스젠더가 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란 점에서 성적지향 이슈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동성애와 양성애 이슈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앞 문단에서 예를 들었듯 트랜스젠더의 다른 생애 경험을 성적 지향의 경험으로 환원하는 어떤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페미니즘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계속해서 배제하거나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를 젠더 이슈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랜스젠더 이슈는 젠더 이슈란 점을 계속해서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 한 편에 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가 동성애/양성애와 다른 이슈라고 말하면, LGBT라고 통칭하는 공간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그냥 그들의 이슈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박원순의 트랜스젠더 지지, 동성애 반대 발언도 이런 이해가 한 켠에 있었겠지. 아마도. 동시에 이런 구분은 트랜스젠더의 섹슈얼리티 경험, 성적 지향 경험,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이나 젠더 이행에 섹슈얼리티와 성적 지향이 매우 밀접하게 작용하는 점을 무시해버린다. 실제 트랜스젠더의 섹슈얼리티 논의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분은 트랜스젠더를 모두 이성애자로 가정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정말로 트랜스젠더와 성적 지향 이슈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슈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다시, 둘을 구분하는 것이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여장남자나 남장여자란 범주를 다시 사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한다.
동시에 동성애와 비교할 때 트랜스젠더만이 계속해서 이런 딜레마,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는 갈등을 겪는다. 이것이 이른바 LGBT라고 이야기하는 (상상적/망상적)공동체에서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는 권력 문제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정확하게 이 순간에 LGBT로 묶는 것 자체가 엄청난 망상 혹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던 것일까라고 꿍얼거리지만… 이것은 좀 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뭔가 심란하고 갈등하고 곤혹스러운 시간이다. 뭐, 언제는 안 그랬느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