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이것저것

ㄱ.
범죄와 엮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올 한 해는 혐오가 주제어구나 싶다. 아아… 그리고 혐오를 주제로 글을 쓴다면 ‘우리 이렇게 혐오 받고 있다’거나 ‘혐오가 이런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혐오가 이렇게 구조적으로 팽배하다’란 식의 글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식의 글이 분명 필요하고, 나 자신이 이런 주제로 글쓰기 작업을 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스타일의 글은 아니다. 아마도 “헐… 이게 뭐야…”라는 반응과 함께 무시 당할 법한 그런 글을 쓰겠지. 후후후. 이전의 많은 글이 그러하듯이. 후후후.
ㄴ.
한국어로 쓴, 한국의 퀴어 활동가가 쓴 퀴어 관련 글을 읽다 보면 ㅎ님이 레즈비언의 역사를 정리한 글이 무척 많이 인용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딱 그 뿐이다. ㅎ님이 정말 많은 글을 썼고 각 글에서 중요한 인식론적 전환을 위한 작업을 했지만 인용되는 글은 역사를 정리한 글이며, 이론이나 인식론을 위한 근거는 모두 미국이나 영국 이론가, 프랑스 철학자의 것에서 가져온다. 한국 퀴어 연구자가 쓴 글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자료고 서구 이론가의 글은 인식론이자 이론이라는 뜻일까? 꼭 이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역사를 정리한 글만 인용되고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글은 인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지혜 선생님의 영향이 정말 가득한 논문인데 정작 지혜 선생님의 논문은 인용하지 않고 지혜 선생님이 쓴 논문에서 인용된 저자의 글만 인용한 논문을 본 적도 있다. 왜일까?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탈식민은 불가능한 것만 같다.
ㄷ.
E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고민이 섞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그냥 나는 내 공부를 묵묵히 하면 된다. 그 뿐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순간 망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공부는 언제나 티가 난다

살다보면 정말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천재의 재능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임을 실감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공부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붙잡고 산다. 석사과정에 있을 때 어느 선생님이 한 말씀인데, 공부는 노력한 만큼 그 성과를 드러낸다고 했다.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천재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 여전히 껠바사서 아직 그 경지를 모른다. (주변엔 엄청나게 성실하게 공부하고 또 똑똑한 사람이 여럿이라 나 따위 정말 별것 아니다.) 하지만 책 한 권, 혹은 논문 한 권을 더 읽으면 그것은 글에서 바로 티가 난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공부를 게을리하는 순간 게으른 티가 매우 분명하게 난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무섭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안 하는지를 대면하는 순간이 가장 무섭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티가 난다는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무섭도록 선명하게 티가 난다는 말과 같다. 열심히 해도 부끄러운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부끄러운가. 슬프게도 나는 늘 이 엄청나게 부끄러운 순간을 조우하며 살고 있다. 껠바사 터진 인간의 부끄러움. 언제 즈음이면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울까.

실패를 예감하는 드립

나의 정치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어쩐지 광역 어그로를 끌고 싶은 마음에 다음 문장을 구성했다.

자신이 LGBTAIQ/퀴어거나 퀴어정치학을 고민하면서 채식을 하지 않는다면,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함과 같습니다.

이 문장은 나의 채식 정치학과 경합하는 지점이 있기에 이것은 내가 주장할 법한 드립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이런 드립을 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측면에선 이 드립 중 옳은 구석도 있다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고민과 광역어그로를 끌겠다는 장난같은 마음과는 별개로 나의 이 드립은 어그로는커녕 그냥 관심 자체를 못 끌 것이다. 두 가지 이유. 특별할 것 없는 드립이니까. 무엇보다 이곳은 변방의 이름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트위터 같은 SNS가 아니라) 블로그니까. 🙂

실패를 가정한 드립은 정말로 실패할 운명이란 점에서, 그리고 정말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성공한 드립이 되었다. 우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