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9시 즈음 몇 명이 모여서 슈테판성당에 가기로 했다. 38번 트램을 타고 이동했지만 잘못 내렸고 그 결과는 오히려 흥미로웠다. 슈테판 성당을 찾아 가는 길에 많은 건물을 보았고 그 모든 건물이 모두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본 건물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 치명적 문제랄까… 하하. ㅠㅠㅠ 그럼에도 모든 건물이 매력적이었다. 규모로만 보면 한국에도 무수히 많은 건물이 더 큰데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은 무척 달랐다. 건물이 내뿜는 아우라가 나를 압도했고 이것이 역사가 축적되고 문화가 축적된 흔적인 것인가라는 고민을 잠시 하였다.
ㄴ. 그리고 유일하게 건물 이름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곳이 슈테판 성당. 이곳은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그냥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가 사진으로는 결코 이 느낌을 포착할 수 없겠구나를 확인했다. 마침 미사를 보고 있어서 성가대의 노래도 잠시 들었는데,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서구 클래식의 역사에서 왜 특정 시기, 특히 이런 종류의 건축물을 중시하던 시기에 웅장한 음악이 나왔는지를 깨달았다. 동시에 그런 음악은 바로 이런 공간에서 들어야 한다는 것도. 어떤 곳에서 연주할 것인가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작곡할 것인가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서 실감한 기분이었다.
ㄷ. 오전의 관광은 ㅈㅇ님과 돌아다녔는데 여러 건물을 보며, 내가 원하는 여행은 이런 것이란 걸 확인했다. 어딜 봐야 한다고 서둘러 움직이기보다는 그냥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면서, 길을 잃더라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여행이다.
ㄹ. 1시 즈음 빈 대학으로 돌아가서 학술대회 마지막 일정인 퀴어시티투어에 참여했다. 첫 번째 간 곳은 frauen cafe. 이곳은 모든 여성과 모든 트랜스젠더, 모든 인터섹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트랜스/인터섹스를 배제하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다음은 빈 시청 앞 공원이었다. 이곳은 게이 남성들이 크루징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빈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했다. 다음은 비건 팔라펠을 파는 Maschiu Maschiu에 갔다. 무척 맛났고 무난한 가격인데도 무척 배가 불러서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차가운 바람에 다들 몸을 떨면서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은 Rose Lila Tipp. 1980년대부터 존재한 곳이며 주류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것에 비판하며 도착/변태pervert를 적극 표방하는 곳이었다. 아, 마음에 들어. 동시에 동물권을 이야기하며 채식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야스민의 말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퀴어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이들의 경우 80% 가량이 채식을 한다고. 오오오, 멋진 곳이다. 이곳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보낸 다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들 헤어졌다. 어쩐지 아쉬웠다.
ㅁ.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저녁 7시가 안 되어서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내일은 벨베데레궁전이고 아침엔 장을 봐야 한다.
*답글은 제가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을 때… 죄송합니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