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아침에 일행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한 나이든 오스트리아인이 일행 중 한 명에게 뭐라고 하고 지나갔다. 나중에 들으니, 그가 아침으로 먹을 빵을 자르다가 실수로 손으로 잡고 잘랐고 이에 그 오스트리아인이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단다. 그래서 천으로 잡고 잘랐는데, 아침을 다 먹은 그 오스트리아인이 나가는 길에 그에게 ‘여기는 오스트라아이지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갔다고 했다. 정말 많이 화가 났고,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이 화를 냈다. 심각한 인종혐오,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그 자리에서 그 말을 전혀 못 알아 들어 화를 못 낸 내가 한심했고,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을 그가 얼마나 화가 나고 분노하고 슬펐을지를 생각하며 속상했다. 동시에 그 발언은 단순히 그를 향한 발언이 아니라 그 테이블에 있는 일행 모두를 향한 발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그 발언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잠재적으로)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ㄴ. 마노 유카타 씨가 영어 발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뭔지 모르게 부럽기도 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마노 씨를 위해 지도교수는 영어 발음과 읽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영어 발표문을 음성으로 녹음해서 줬다고 한다. 마노 씨는 그것을 계속해서 들으며 발표를 연습했다. 동시에 마노 씨가 나눠준 발표문의 영어는 문법이 상당히 깔끔한 느낌이었는데 이것 역시 누군가가 전문적으로 해줬다고 한다. 퀴어 맥락을 전혀 모르는 업체에 급하게 맡기고, 추가의 연습 없이 엉망인 발음으로 발표한 나에 비하면 상당한 노력이구나 싶다는 점과 함께 이렇게 번역을 적극 지원해주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이것은 일본이 번역을 무척 중요한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한 부러움이기도 하다.
ㄷ. 학술대회에 참가하며, 직접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면 앞으론 외국 행사에 참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ㄹ. ㅈㅇ의 발표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질문하는 사람의 수로 따지면 역시나 무척 적은 편이었다. 더 많은 질문이 나올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단순히 발표자의 역량이나 내용의 매력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란 고민을 했다. 나처럼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인간은 안 될 테지만, 영어를 잘 하고 한국의 지역/문화적 상황을 잘 아는 연구자가 국제 학술대회에서 더 많이 발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을 알리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 등이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한국의 하나의 지역으로 사유할 수 있는 퀴어 연구자가 늘어나면 좋겠다. 뭐, 나를 빼면 다들 영어를 잘 하는 듯하니 나의 이런 바람과는 상관없이 다들 잘 하겠지만!
ㅁ. 영어의 헤게모니를 비판한 지점이 좋다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그 반응을 들으며 내가 느낀 건 기쁨이라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고민이었다.
영어의 헤게모니를 비판하면서, 그리고 영어 사용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그와 관련한 논의를 다시 영어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어 사용을 비판하는 지적에 영어로 좋았다고 반응하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
영어의 헤게모니를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다시 영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판적 인식론이 더 넓게 통용되기 위해선, 그래서 국제 정치과 지형에서 의미있는 비판적 목소리가 되기 위해선 영어를 무척 잘 해야 하거나 영어로 잘 번역되어야 하는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리가 아프다.
영어의 국제정치, 영어의 헤게모니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 ‘주인의 언어/도구로 주인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한 작업인가? 가능한 작업이라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은 작업이라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역을 거치지 않으면서, 어느 한 언어를 중심에 두지 않으면서 영어의 헤게모니,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갖는 힘을 비판하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번역이 지속적으로 혼종과 가능성의 장을 열지만 동시에 문화적 맥락과 뉘앙스를 지워버리고 다른 문화적 맥락과 뉘앙스를 기입하는 과정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서 번역, 통역, 그리고 언어를 통한 소통의 다른 방식, 다른 가능성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2015.03.21. 메모)
ㅂ. 빈 대학교에 무척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있었다. 이 장면이 무척 신기했는데 한국의 대학교는 주민에게 개방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놀이터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ㅅ. 다음달인가, 퀴어문화축제가 주관, 주최하는 행사에서 상하이 프라이드와 관련한 내용을 발표하는 연구자와 같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가 비건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한국의 음식과 관련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줬고 나중에 서울에 있는 비건 식당을 추천해주기로 했다. 여기서 짐작하겠지만 한국의 음식 대부분은 비건이 먹을 수 없고 과자는 거의 100% 우유가 들어가며 믹스넛에도 우유가 들어간다고 말해줬다. 그는 다른 부분에선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지만 믹스넛에도 우유가 들어간다는 말에 무척 슬퍼했다. 어쩌겠는가. 이것이 한국에서 비건이 살아가는 매우 익숙한 환경인 것을.
ㅇ. 저녁으로 상당히 근사한 식당에 갔다. 이 식당에선 비건을 위한 메뉴가 세 가지가 있었는데 비건버거,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 그리고 생선까스였다. 오오, 비건이 3명이었는데 모두 생선까스를 주문했다. 아울러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자허토르테를 닮은 케익도 있었는데 이것이 정말 맛났다. 입에서 녹으면서도 진한 맛을 내는 비건 초코 케익이라니! 정말 포장해서 한국에서도 먹고 싶은 맛이었다.
호텔에서 먹은 아침.
학술대회 주최측이 준비한 비건 파이. 사진은 애플파이인 듯. 옆에 작게 나온 것도 비건이다.
이것 역시 학술대회 주최측에서 준비한 비건빵.
점심은 어제 오늘 모두 뷔페였는데 모두 비건이다. 비건이 아닌 것처럼 생겼지만 비건이다. 심지어 맛있다.
저녁으로 먹은 비건 식사. 사진의 대부분이 비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