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비엔나 도착

지금 30시간 넘게 19일을 살고 있는 관계로 간단하게… 짧게…

ㄱ. E 덕분에 무사히 탑승하였습니다.
ㄴ.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고 둘 다 서양식 비건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승무원이 내게 와서 영어로 식사와 관련한 질문을 해서 급 당황… 맛은 그럭저럭… 생야채가 있어서 싫었고 맛난 건 맛났습니다.
ㄷ. 11시간 가량을 비행했지만 이것 자체는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발표 준비하고, 영화 [사랑의 모든 것] 보고, 발표 준비하고, 책 읽고 자고 하니 시간이 그럭저럭 가네요. 하하.
ㄹ. 도착해서 엄청 긴장했는데 ㅅㅇ를 만나서 덕분에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ㅁ. 그리고 ㅈㅇ님도 만나, 셋이서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학술대회 다른 팀과 어떻게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었… 암튼 자리를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구경했습니다.
ㅂ. 한국 시간으론 이미 깨어났을 시간인데 이제 자야죠…
ㅅ. 오스트리아 입국장은 그냥 도장만 찍고 끝!

출국 전날

E에게 늘 사용하는 에그를 넘겼다. E는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과 생존독일어 문서를 내게 줬다. 구글나우는 내일 출국할 비행 일정을 미리 알려줬다.
내일이면 빈에 간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 목록은 한 달 전부터 적어뒀지만 그럼에도 불안해서 여러 사람에게 물었고, 결정적으로 E의 큰 도움을 받았다. 생전 처음 한국 영토를 벗어나는 나로선 모든 것이 불안하다. 정말 자잘한 온갖 것을 챙겼는데 예를 들면 면봉 같은 것도 챙겼다. 이게 평소에는 별 필요가 없다가도 은근히 필요한 순간이 발생하는데 없으면 무척 아쉬우니까.
아무려나 내일 출국하면 다음주 금요일에 입국한다. 얼추 일주일 가량의 여행이다. 블로깅은 계속하겠지만 답글은 달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여행 기록이 돌아와서 작성하려면 정리가 안 되기 마련이니 그냥 그날그날 하려고. 무리하지는 않겠지만.
오스트리아에서 “Queer Is Not Diversity. Queer Is Perversity.”와 같은 구절이 적힌 옷을 입고 다니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지만, 결국 또 아무 일 없겠지.
그저 답글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느리게 천천히 말하기

정희진 선생님의 글(http://goo.gl/q5xJcw)이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논란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이 글 어디가 그토록 논란을 야기했는지, 어디가 사람들을 트위터처럼 토론에 부적합한 매체에서 떠들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나로선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한편 지젝은 테러리즘은 비판하는 책을 썼다고 한다(http://goo.gl/eeoSK4). 그저 기사만 읽었기에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지젝의 폭력 논의, 이웃 논의는 무척 흥미롭기에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했을지 궁금하다. 그의 쿨한 입장은 끊임없이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그저 문득 궁금했다. 어떻게 하여 어떤 사람은 어떤 사건을 접한 다음 비난하거나 간단하게 비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를 테면 테러리즘 사건과 관련해서 테러리스트를 비난하기는 쉽다. 비난하는 사람은 테러를 한 적 없는 사람이거나 테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데 테러가 발생하기까지, 그러니까 국제 정치에서 끊임없이 국가간 문화간 위계와 부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계속해서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가 발생하기 전 상황에서 ‘나’는 이와 관련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말을 했고 의견을 냈을까? 그냥 궁금하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내가 끊임없이 침묵했고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테러가 발생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라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질문하기를 나는 어디에 공모하고 있다가 어떻게 논평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침묵을 선택했다. 방관의 침묵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측면, 정치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의 침묵이었다.
다른 한편 이번 테러에서 ‘테러리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역시 작년 12월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한 무지개농성단도 동일하게 비난한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사람은 안 죽였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 점거 역시 테러의 일종이다. 서울시는 농성단이 시청을 무단점거하고 있다며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수 차례 보냈다. 동시에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인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관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전문시위꾼이라며 비난하고 시위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개인의 인성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입장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해석됨을 보여주는 무서운 순간이다. 나는 아직도 2006년인가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테러리스트를 다룬 다큐에서 주인공은 말했다. 당신들의 입장에선 우리가 테러리스트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질문은 간단하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포함하지 않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어디에 감정이입하는가?
나의 정치적 책임을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성급하게 비난하거나 논평하기보다 좀 천천히, 좀 더 천천히 말을 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요즘 나의 고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