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선생님의 글(http://goo.gl/q5xJcw)이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논란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이 글 어디가 그토록 논란을 야기했는지, 어디가 사람들을 트위터처럼 토론에 부적합한 매체에서 떠들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나로선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한편 지젝은 테러리즘은 비판하는 책을 썼다고 한다(http://goo.gl/eeoSK4). 그저 기사만 읽었기에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지젝의 폭력 논의, 이웃 논의는 무척 흥미롭기에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했을지 궁금하다. 그의 쿨한 입장은 끊임없이 비판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그저 문득 궁금했다. 어떻게 하여 어떤 사람은 어떤 사건을 접한 다음 비난하거나 간단하게 비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를 테면 테러리즘 사건과 관련해서 테러리스트를 비난하기는 쉽다. 비난하는 사람은 테러를 한 적 없는 사람이거나 테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데 테러가 발생하기까지, 그러니까 국제 정치에서 끊임없이 국가간 문화간 위계와 부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계속해서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가 발생하기 전 상황에서 ‘나’는 이와 관련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말을 했고 의견을 냈을까? 그냥 궁금하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내가 끊임없이 침묵했고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테러가 발생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라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질문하기를 나는 어디에 공모하고 있다가 어떻게 논평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침묵을 선택했다. 방관의 침묵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측면, 정치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의 침묵이었다.
다른 한편 이번 테러에서 ‘테러리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역시 작년 12월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한 무지개농성단도 동일하게 비난한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사람은 안 죽였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 점거 역시 테러의 일종이다. 서울시는 농성단이 시청을 무단점거하고 있다며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수 차례 보냈다. 동시에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인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관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전문시위꾼이라며 비난하고 시위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개인의 인성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입장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해석됨을 보여주는 무서운 순간이다. 나는 아직도 2006년인가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테러리스트를 다룬 다큐에서 주인공은 말했다. 당신들의 입장에선 우리가 테러리스트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질문은 간단하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포함하지 않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어디에 감정이입하는가?
나의 정치적 책임을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성급하게 비난하거나 논평하기보다 좀 천천히, 좀 더 천천히 말을 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요즘 나의 고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