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조은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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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업한 끝에 케이트 본스타인의 책 [젠더 무법자: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가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책의 기획 단계부터 번역 과정, 그리고 출판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기에 이번 출판이 더 기쁘기도 합니다.
제목에 트랜스젠더가 포함되느냐 아니냐가 검색 등을 고려할 때 무척 중요하기에 제목을 결정하는데 고민이 무척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원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무척 고민이 많았겠죠.
저는 이 책을 페미니즘, 젠더이론, 퀴어이론, 트랜스젠더 이론, 트랜스젠더의 삶, 젠더퀴어 정치학, 퀴어 연극(책에 본스타인이 직접 쓴 연극 대본이 실려있습니다), BDSM 정치와 이론 등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으셔야 한다고 믿어요. 혹은 지금까지 한국의 주류 언론에서 주로 소개하는 트랜스젠더의 서사가 아닌 다른 서사를 읽고 싶은 분에게도 좋고요.
좀 더 자세한 건 번역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쓰겠지만,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어요. 정말 젠더 개념을 사유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거든요.

한국어로 말하기, 영어로 말하기, 사회성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지만 내가 깨달은 것 몇 가지.
10년 가까이 거의 매일 영어로 쓴 논문을 읽었는데 이게 영어 문장 공부라는 차원에서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싶다. 아직도 엄청 서툴고 엉망이지만, 문법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음에도 그럭저럭 문장의 꼴은 만들고 있다. 자랑할 수준이 전혀 아님에도 영어 글쓰기를 전혀 못 하는 나로선, 외국인과 만났을 때 “Thank you~”라는 말도 제대로 못 떠올리는 내 수준으로선 놀라운 일이다. 후후. 부끄러워라… ㅠㅠㅠ
말하기 듣기가 수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말하기 듣기의 핵심은 사회성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터놓고 말해서 나는 한국어로도 대화를 잘 안 하는 편이다. 퀴어락에서 일하고 있으면 여러 활동가를 만나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고, 하루 종일 인사 외엔 말 한 마디 안 하고 지낼 때도 가끔 있다. 사람 많은 자리에서도 말을 거의 안 하는데, 주로 경청하는 편이고 경청하는 걸 좋아하지 내 의견을 내거나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간단한 일상 대화가 안 될 때도 많은데 누군가 내게 질문하면 답변은 하는데 내가 다시 질문을 하거나 하지 않아서 대화의 벽이 되는 일이 많달까. ㅠㅠㅠ 이러한 나의 습관은 영어 말하기, 듣기 수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니 영어를 못 하는 상황이 사회성 부족과 만나면서 엄청난 침묵을 만든달까… 질문을 했는데 뭐라고 답할지 몰라 우물쭈물한다거나,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에서 “And you?”를 못 해서 일시적이나마 대화가 침묵에 빠진다거나… ;ㅅ;
영어 말하기와 듣기가 기본적으로 꾸준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사회성이 무척 중요한 변수란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고 그나마 영어로 말을 할 때면, 내가 한국어로 대화할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말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내가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동안 저랑 대화하느라 고생하셨을 모든 분들께, 깊은 고마움과 사과를 전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앞으로도 별로 고쳐질 것 같지는 않아요. ㅠㅠㅠ
(가장 난감하고 미안할 때가, 특강을 하게 되어서 특강 끝나고 뒷풀이에 참가할 때다. 뒷풀이에 참가하면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 전까진 침묵… 뭔가 무게를 잡거나 권위를 상징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몸이라 그냥 침묵… 그러다가 뻘쭘해서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뒷풀이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뒷풀이 자체에 재미를 못 느끼기도 하지만.)

문화 텍스트로서 판결문

법의 체계, 법의 한계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판결문은 정말 흥미로운 텍스트다. 어떤 사건의 ‘실체’라고 가정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몇 안 되는 문서며, 특정 사건을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그럭저럭 구체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의 한계에서 해석한다면 판결문은 그저 헌법 혹은 특정 법의 법적 논리를 어떻게 해석했느냐, 혹은 어떻게 적용했느냐의 이슈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분석은 끊임없이 기존 법의 논리를 반복하고 기존 법의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법을 문화 텍스트로 접근한다면 이것은 어떤 사건을 인식하는 법적 인식론의 한 단면을 알려주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 된다. 그리고 판결문을 신문 기사, 현재의 문화적 인식과 연결해서 분석한다면 이것은 풍성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어떤 사건을 분석할 때 판결문보다 흥미로운 텍스트도 없다 싶을 정도다.
현재 대충 찾아보면 판결문을 분석하는 많은 작업이 법학 논문에 치중해 있다. 여성학이나 문화학에서 관련 작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의 대부분이 법학 전공자가 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 젠더연구나 문화연구 맥락에서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많이 하면 좋겠다. 나 역시 이 작업을 하고 싶어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판결문을 법의 한계를 무시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정말 흥미로운 분석이 잔뜩 나올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