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퀴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늘 가시적이었다

자료를 계속해서 찾다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는데, 최소한 근대 이후 혹은 1900년대 들어 한국에서 LGBT/퀴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시기는 없다는 점이다. 변태는 늘 등장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들을 꾸준히 신경 쓰고 있다. 석사학위논문에서였나, 다른 글에서였나, 한국의 LGBT/퀴어는 한국 사회에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매번 마치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대하는 반응을 두고, 비규범적 존재를 대하는 지배규범의 규범적 태도라고 썼다. 그땐 단편적 몇 가지 흔적만으로 이렇게 추론했는데, 자료를 찾을 수록 정말 그렇다는 것을 확인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비규범적 존재를 지배규범이 인식하는 방법, 안착시키는 방법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존재함은 인정하고, 사회적 구성원이라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용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말이다.
물론 나의 이런 추론은 틀렸을 수도 있다. 자료를 더 찾고, 더 꼼꼼하게 읽다보면 또 다른 무언가를 깨닫을 테니까. 늘 낯설고 당혹스러운 존재로 표현하면서 변태 혹은 LGBT/퀴어를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복잡할 것이란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그나저나 옛날 자료를 찾다보면 당혹스러운 점. 번역서인데 도저히 원저자의 영어 표기를 유추할 수가 없다. 저작권 계약 없이 해적판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라서, 원래 언어도 표시가 안 되어 있다. 끙… 이럴 때 이 자료는 믿을 수 있는 자료일까? 신빙성을 어떻게 따져야 할까? 고민이다.

은유, 수식어와 관련하여…

무뇌아Anencephaly라는 용어 자체는 그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몸의 형태를 지칭하는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명백하게 장애 혐오 발화다. 이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의도는 ‘생각 없음’, ‘머리에 든 게 없음’ 등이겠지만, 정작 ‘무뇌아’ 증상으로 태어난 인간은 전혀 사유하지 않는다. 아니 이 증상으로 태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망각한 상태에서 그저 하나의 수식, 수사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에이즈가 쓰이는 용법처럼, 암이 쓰이는 용법처럼. 그런데 이 용어가 페미니즘과 결합할 때, 장애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를 동시에 고민하는 사람, 장애인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 등은 순간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더 많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은유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하셨다. 은유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거나 의미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 뭔가 머리 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는 듯 깨닫는 그런 순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은유는 언제나 은유로 쓰이는 그 존재에게, 혹은 은유로 쓰이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심각한 폭력이다. 은유는 그저 관습적 용법이 아니라 존재나 대상을 이해하는 사회적(혹은 그 은유를 사용하는 개인의) 관념, 인식론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 특히 많은 페미니스트와 퀴어연구자가 은유의 위험을 지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런 은유를 피하며, 비판하며 글을 쓰다보니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럼에도 더 좋은 글을 쓴다.

색깔을 인식한다는 것

아침에 잠깐 웹서핑을 하다가 “엥 나 색맹인건가요?”http://goo.gl/UbveO4 라는 글을 읽었다. 그림에 녹색이 있다고 해서 머리 색깔에서 좀 진한 부분이 녹색일까라고 생각하며 댓글을 읽는데… 얼굴색이 녹색계열이라고. 뭐라고?!?!?!?!?!?!?! 얼굴은 그냥 살구색 좀 연한 느낌인데???
그래서 오랜 만에 좀 찾아봤더니 이런 게 있었다.

내가 이미지를 퍼온 곳은 http://goo.gl/VSIZ9V
위쪽 혹은 왼쪽은 비색약/비색맹인이 봤을 때 모습이고 오른쪽 혹은 아래쪽은 적녹색약인이 봤을 때 모습이라는데… 나의 느낌은, 둘 다 같은데? 차이라면 위쪽 혹은 왼쪽은 약간 더 화사한 느낌? 구글플러스의 포토에서 자동으로 사진을 보정해주는 딱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다.
그래서 E에서 링크를 주며 물어보니 E에겐 두 개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사진, 바다에 눈이 쌓여 있는 산엔 무지개가 있다는데 내겐 전혀 안 보인다. 튤립은 노란색이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다음에 흰색(하지만 E는 연분홍이라고 알려줬다), 붉은색은 잎사귀와 함께 섞여서 구분하면 보이지만 그냥 무시하면 안 보일 수도 있는 수준?
가장 놀란 부분은 신호등에서, 오른쪽의 초록색 신호등이 E에겐 회색이라고. 엥?
한국인의 경우, 이른바 남성은 6% 가량, 여성은 0.5% 가량이 색깔 감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또한 트랜스젠더 중 색깔 감각이 다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조금 바꾸면, 색깔 경험은 염색체를 통해 유전된다고 하는데 그럼 생물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혹은 이것은 생물학적 경험일까, 문화적 경험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한데, 그 모두다. 색깔 경험 자체는 매우 문화적 경험이지만, 그런 문화적 경험을 어떻게 공유하는가엔 어쨌거나 유전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떤 변수는 분명 존재한다. 이럴 때 고민은 생물학적 결정론이 아니라, 생물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로 나아가는 것이고.
적녹색약이라고 해서 살면서 불편한 건 없고,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아도 괜찮은 핑계가 되니(하지만 적녹색약이어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는 있다) 어떤 의미에선 좋은 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여기(http://goo.gl/ZWpCrn)에 가면 6색 무지개를 인식하는 방법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