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수식어와 관련하여…

무뇌아Anencephaly라는 용어 자체는 그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몸의 형태를 지칭하는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명백하게 장애 혐오 발화다. 이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의도는 ‘생각 없음’, ‘머리에 든 게 없음’ 등이겠지만, 정작 ‘무뇌아’ 증상으로 태어난 인간은 전혀 사유하지 않는다. 아니 이 증상으로 태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망각한 상태에서 그저 하나의 수식, 수사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에이즈가 쓰이는 용법처럼, 암이 쓰이는 용법처럼. 그런데 이 용어가 페미니즘과 결합할 때, 장애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를 동시에 고민하는 사람, 장애인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 등은 순간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더 많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은유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하셨다. 은유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거나 의미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 뭔가 머리 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는 듯 깨닫는 그런 순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은유는 언제나 은유로 쓰이는 그 존재에게, 혹은 은유로 쓰이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심각한 폭력이다. 은유는 그저 관습적 용법이 아니라 존재나 대상을 이해하는 사회적(혹은 그 은유를 사용하는 개인의) 관념, 인식론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 특히 많은 페미니스트와 퀴어연구자가 은유의 위험을 지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런 은유를 피하며, 비판하며 글을 쓰다보니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럼에도 더 좋은 글을 쓴다.

색깔을 인식한다는 것

아침에 잠깐 웹서핑을 하다가 “엥 나 색맹인건가요?”http://goo.gl/UbveO4 라는 글을 읽었다. 그림에 녹색이 있다고 해서 머리 색깔에서 좀 진한 부분이 녹색일까라고 생각하며 댓글을 읽는데… 얼굴색이 녹색계열이라고. 뭐라고?!?!?!?!?!?!?! 얼굴은 그냥 살구색 좀 연한 느낌인데???
그래서 오랜 만에 좀 찾아봤더니 이런 게 있었다.

내가 이미지를 퍼온 곳은 http://goo.gl/VSIZ9V
위쪽 혹은 왼쪽은 비색약/비색맹인이 봤을 때 모습이고 오른쪽 혹은 아래쪽은 적녹색약인이 봤을 때 모습이라는데… 나의 느낌은, 둘 다 같은데? 차이라면 위쪽 혹은 왼쪽은 약간 더 화사한 느낌? 구글플러스의 포토에서 자동으로 사진을 보정해주는 딱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다.
그래서 E에서 링크를 주며 물어보니 E에겐 두 개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사진, 바다에 눈이 쌓여 있는 산엔 무지개가 있다는데 내겐 전혀 안 보인다. 튤립은 노란색이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다음에 흰색(하지만 E는 연분홍이라고 알려줬다), 붉은색은 잎사귀와 함께 섞여서 구분하면 보이지만 그냥 무시하면 안 보일 수도 있는 수준?
가장 놀란 부분은 신호등에서, 오른쪽의 초록색 신호등이 E에겐 회색이라고. 엥?
한국인의 경우, 이른바 남성은 6% 가량, 여성은 0.5% 가량이 색깔 감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또한 트랜스젠더 중 색깔 감각이 다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조금 바꾸면, 색깔 경험은 염색체를 통해 유전된다고 하는데 그럼 생물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혹은 이것은 생물학적 경험일까, 문화적 경험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한데, 그 모두다. 색깔 경험 자체는 매우 문화적 경험이지만, 그런 문화적 경험을 어떻게 공유하는가엔 어쨌거나 유전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떤 변수는 분명 존재한다. 이럴 때 고민은 생물학적 결정론이 아니라, 생물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로 나아가는 것이고.
적녹색약이라고 해서 살면서 불편한 건 없고,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아도 괜찮은 핑계가 되니(하지만 적녹색약이어도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는 있다) 어떤 의미에선 좋은 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여기(http://goo.gl/ZWpCrn)에 가면 6색 무지개를 인식하는 방법이 나온다.

비온뒤무지개재단, 무지개 우산의 기적

어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정기총회에서 공개한 “무지개 우산의 기적” 판이다.

재단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후원해주는 분이 늘어나는 방법이 최선이라 ‘무지개 우산의 기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들은 것도 같다. 이 우산이 모두 채워지면 재단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아무려나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재단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이 퀴어 아카이브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