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 용어를 설명한다는 것

1. 성 정체성(sexual identity)
: 사회, 신체적 성별/ 성적 지향/ 관계의 양상 등과 같은, 스스로가 부여하는 성과 관련한 정체성을 포괄해 통칭하는 말

동성애
이성애

2. 성별 정체성
: 스스로가 인식하고 본인에게 부여하는 젠더
(1) 시스 젠더
: 젠더와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
(2) 젠더 퀴어
: 완전히 남/녀로만 구분되지 않는 성별을 소유했거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에 반대함.
*트랜스젠더: 젠더와 생물학적 성별이 불일치
*안드로진: 젠더 정체성에 남, 여가 모두 존재



*6색 무지개: 전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동성애자 자긍심의 상징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트위터의 논모노섹슈얼봇
네이버 지식백과
*위의 용어들은 글쓴이가 사전 지식과 여러 자료를 조합해 맞춘 결과이므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편집했지만, 어쨌거나 위의 인용을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들까? 네이버 지식인, 혹은 출처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설명과도 같다는 인상을 주는 이 글의 출처는 ‘이화 성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가 2014년 11월에 진행한 “죽은 퀴어의 사회: 제12회 성소수자 문화제”의 자료집에 실린 내용이다. LGBT/퀴어 모임에서 퀴어피디아란 꼭지로 정체성을 분류하고 설명한 부분이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이를 테면 성정체성이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성정체성이 위의 정의와 같다면 어째서 이른바 성적지향 관련 용어만 하위 범주로 포섭되고, 젠더 정체성은 포섭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섹스와 젠더, 섹슈얼리티란 세 용어의 개념 자체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 썼다는 혐의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했다면 생길 수도 있는 일니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지만) 넘어가자.
일단 나는 이 설명은 ‘퀴어피디아’가 아니라 ‘동성애가 쓰는 퀴어사전’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은 동성애자/레즈비언이 다른 퀴어를 설명하겠다는 기획이거나.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 퀴어피디아인데 동성애와 이성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왜? 내게 두 용어를 설명하지 않는 태도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것,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전제한 인상이다. 하지만 어째서? 가장 많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동성애와 이성애다. 비트랜스젠더-동성애자는 언제나 양성애와 같은 비이성애-비동성애자에게 그리고 트랜스젠더에게 ‘너희들이 우리의 구성원이 맞느냐’라며 존재의 정당성, 구성원이 될 자격을 요구했다. 설명에서 누락되는 것,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는 언제나 이성애 그리고 때때로 동성애다. 또 다른 이유는 “6색 무지개”의 정의 때문이다. 무지개는 언제부터 ‘동성애자’의 상징이었나? 좁혀서 LGBT나 퀴어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 아니었나? 적어도 한국의 공적 행사에선 비이성애자와 트랜스젠더/젠더퀴어를 포괄하는 의미로 무지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독점했다. 이 두 가지로 인해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이 동성애자의 입장에서(글쓴이가 동성애자건 아니건 상관없이) 작성한 글이라고 의심한다.
블로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성별정체성 항목 때문이다. 성별정체성에 시스젠더와 젠더퀴어가 있고, 젠더퀴어의 하위 범주로 트랜스젠더가 있다고?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매우 당혹스럽다. 용어 등장의 역사적 맥락에서 트랜스젠더가 먼저 등장했고,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대중에게 통용되는 방식과 갈등하면서 젠더퀴어가 등장했다. 실제 미디어나 대중에게 유통되는 방식으로 트랜스젠더를 설명한다고 해도 트랜스젠더는 젠더퀴어의 하위 범주가 아니다(이렇게 한다며면 아예 다른 범주가 되어야 한다). 굳이 구분한다면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는 별도의 범주 같으면서도 또 일정 부분 겹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란 두 용어는 끊임없이 정치적 긴장을 일으키는 범주용어여서, 그 어느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분류하건 매우 많은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미국 백인 중심의 학제에서 사용하는 정의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하위 범주에 젠더퀴어가 위치할 가능성이 크고, 대중에서 쓰이는 방식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는 교집합이지 부분집합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젠더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설명하는 정의 자체도 문제고 상당히 화가 나는 내용이 많은데 이미 많이 한 이야기고 이 블로그에도 많이 있으니 생략…
블로깅을 하겠다고 결심한 다음 가장 화가 난 항목은 자료출처와 부가설명이다. 자료 출처는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백과, 트위터의 논모노섹슈얼봇이다. 위키피디아의 내용은 수시로 바뀌고, 논모노섹슈얼봇은 2013년 하반기 혹은 2014년 상반기 즈음 없어졌다. 일단 범주 용어를 설명하겠다면서 어떻게 위키피디아와 네이버 지식백과만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뭐, (절대 그럴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가장 큰 문제는 “*위의 용어들은 글쓴이가 사전 지식과 여러 자료를 조합해 맞춘 결과이므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란 문장이다. 이런 무책임한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범주 용어를 설명하겠다면서? 범주를 설명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을,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건 설명하겠다는 시도와도 같다. 그런데 ‘아님 말고’란 식의 부연 설명을 덧붙여버리면 이것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동성애는 남자들만 많은 공간에서 비합리적으로 생기는 성향이다”라고 쓴 다음 ‘이 설명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쓰면 괜찮은지 묻고 싶단 뜻이다. 그래서 이 구절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 많이 화가 났다.
용어를 설명하는 시도는 정말 좋은 일이다. 그래서 다양한, 때때로 논쟁적인 설명 방식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설명이 경합하면서 의미를 만들어가고, 정의(def.)를 구성해가니까. 하지만 용어를 설명하는 시도는 존재를 설명하는 일이란 점을 자각하고, 자신의 설명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면서, 혹은 책임을 피해갈 여지를 만들면서 범주를, 존재를 설명하려는 기획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짧은 메모: 집권 정당의 진보성과 LGBT의 삶

한국의 현대사를 기준으로 봤을 때, 흔히 말하는 진보/중도 정당의 집권이나 민주화 세력의 집권이 ‘보편적 인권’ 개념의 확산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최소한 LGBT/퀴어 인권이나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는 적절하지 않다. 더 조밀하게 살펴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만 따지만 진도/중도 정당 혹은 민주화 세력이 LGBT/퀴어 이슈를 의제로 삼지도 않았고 반드시 긍정적이지만도 않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를 테면 내가 가장 좋아한 정치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엑스존 사건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 항목과 성별의 정의 항목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 이것이 그저 단적인, 너무도 단편적 부분일 뿐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다시 사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민주당이 친 성적소수자 입장이고 공화당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정치 구도가 한국엔 전혀 안 맞다. 그러니까 논의틀을 한국의 맥락에서 다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저녁에 좀 했다.
나의 논문은 수렁으로…
(했던 이야기 반복하는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묘하게 다른 이야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