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완벽하게 닮았지만 닮지 않은 아카이브

퀴어 아카이브와 관련하여 내가 상상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거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다름 아니라 완벽하게 복제된 두 개의 아카이브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차이는 있다. 하나는 최초 생산된 기록물을 보관하는 것으로 지정된 소수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으며 기록물 보존에 있어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이 아카이브에 기록물이 들어가면 영구 보존이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된다. 이 아카이브를 완벽하게 복제한 또 하나의 아카이브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아카이브는 모든 문서가 각자의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하며 따라서 도서관과 달리 다른 기록물로 대체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한다. 원칙이라 때때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각 기록물은 개별의 것으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이것을 가장 완벽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개의 완벽하게 복제된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랄까. 하나는 정말 완벽하게 보존만을 목적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열람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완벽하게 자가 복제 방식이어서 보존 목적의 아카이브에 등록하면 자동으로 열람과 연구 목적의 아카이브에도 자동으로 생성되고 등록되는 방식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클라우드의 동기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완벽하게 자동 복제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하나는 일절 손상이 없고 다른 하나는 손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방식. 어쩐지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읽을 법한 상상이지만 정말 이런 곳을 꿈꾼다. 그리고 나는 보존 목적의 아카이브에 들어가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퀴어락 등록 일기: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김홍신과 트랜스젠더 관련 법

퀴어락 등록 업무를 하다보면 그 동안 구체적으로 찾지 않았던 이슈를 만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작년에 했던 일이지만,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한동협)의 경우 그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소문처럼 이름만 들은 정도였다가 E와 함께 등록 작업을 하고 컬렉션을 하면서 약간의 실체를 만난 느낌이었다. 한동협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회의를 했고, 어떤 회원이 모였고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모임 아니마가 가입 신청서를 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작업이고 LGBT/퀴어 운동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오늘은 다른 기록물과 함께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전환자의성별변경에관한특례법안 관련 기록물을 등록했다. 그러며 이 법안을 작성했던 초기엔 전혀 다른 이름이었고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현재 알려진 제목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등록하는 과정에서 등록 대기 상태로 있던 기록물만이 아니라 새롭게 수집한 기록물도 있다. 별 것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을 심사할 당시 논의 내용 속기록, 법사위의 검토보고서 등이 그것이다. 구하기는 쉬운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기록물을 구할 수 있음을 모른다. 그리고 법안 심사 당시 속기록을 훑어보며 확인한 사실. 대표발의한 국회의원과 검토보고서를 대표로 작성한 연구원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다른 국회의원의 의견은 적혀 있지 않다. -_-;;; 그 만큼 몰랐다는 뜻일까?
그리고 이것저것 찾다가 대법관후보자 조희대의 인사청문회에서…
홍일표 위원: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금 더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어느 일간신문에 어떤 분이 ‘LGBT를 양지로 불러내야 될 때다’ 이런 칼럼을 썼어요.
그러니까 이 LGBT가 뭐냐 하면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상당한 국가들에서 이런 것에 대한 양성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걸 교리상 허용하지 않는데도 프란체스코 교황께서는 ‘이런 분들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가지자’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런 것에 대해서 너무 보수적이고 그렇게 과거의 생각에만 고집해 있을 필요는 없다, 이런 점은 오히려 법원이 우리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그런 영역이기도 하다, 또 대법관 구성과 관련해서 소수자 목소리 대변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이런 목소리도 나오니까 차제에 후보자께서는 그런 역할도 다 맡아서 하겠다 하는 각오를 가져야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 한 말씀 소회가 있으시면 하시지요.
 
대법관후보자 조희대: 그것은 제가 능력이 닿는 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상 퀴어락 등록 일기.

퀴어하고 퀴어하지 않고

나는 나 정도면 엄청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 급진적 혹은 폭력적 퀴어 정치학을 지향하지만 정작 내 삶은 매우 단순하고 또 평이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너무 평범하고 무난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 나 자신은 평범하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 퀴어 정치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내 부족한 부분을 말하고 싶은데 그걸 말하는 순간 내가 부정당하는 기분. 그래서 ‘저는 평범해요'(물론 이것은 또 다른 많은 경우엔 어떤 방식의 말장난이기도 하지만)라는 말을 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동시에 이런 말을 내뱉을 때마다 괴롭다. 하지만 ‘난 완전 퀴어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내가 망상하는 어떤 기준에서 나는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삶엔 퀴어하지 않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버틀러처럼 스스로를 ‘완전 퀴어다’라고 말하지 못 한다.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