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정

어제 기말페이퍼를 마감하며, 영화 [하이힐]의 내용을 분석하다가 울었다. 어떻게 할 수 없게 눈물이 났고 그래서 울면서 장면을 분석했다. 그 장면은 어제 블로깅한 장면이다. 그 장면은 정말로 영화에서 백미와도 같은 순간인데(이토록 못 만든 영화인데도 빼어난 순간이 몇 개 있다는 것도 좀 오묘하지만) 그 장면을 분석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울면서 분석하기.

분석적 글쓰기, 분석적 언어는 대체로 감정과 거리가 있다고 이야기한가. 만약 그렇다면 울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있을 때 내가 사용한 언어는 어떤 언어일까? 나는 울면서, 울음이 작품을 분석하는 힘이었다. 그럴 때 그 언어는 무슨 언어일까? 울 수밖에 없는 감정으로 작품을 조밀하게 분석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언어에 눈물이 맺혀있길 바랐다. 그러니까 분석적 용어란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용어는 지금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길 바랐다. 문학적 글쓰기, 정동적 글쓰기가 아닌 건조할 것만 같은 글에서 강한 감정이 넘실거리길 바라면서.
그러고 보면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조밀하고 치밀하게 텍스트를 분석하면서도 정동이 넘실거리는 논문은 지혜 선생님이 “나는 나의 아내다”를 분석한 글이라고 기억한다.  얼추 다섯 번 정도 읽으며 글에 흘러 넘치는 정동으로 계속해서 감정적 울림을 받았다. 그러며 슬쩍 질투하기를,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분석적 용어와 감정적 용어와 정동적 용어가 별개가 아니란 뜻이다. 어떤 글쓰기에서 매우 건조한 느낌을 주는 글일 때에도 저자에겐 매우 감정적 순간이 깊이 개입했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영어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Gordon이 쓴 Ghostly Matter란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최근 수업 교제로 읽었는데 분석적 글쓰기가 완전하게 문학적이고 문학 작품일 수도 있구나를 배웠다. 부러웠다.

기말 페이퍼 제출!

오랜 시간 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로 살다가 결국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다음, 윤지욱은 야매의사 진박사(김병옥 분)의 소개로 교회에서 해병대 선배이자 mtf/트랜스여성 선배인 바다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바다는 mtf/트랜스여성을 “창세기를 찢어버리고 사는 년”, “지옥 입구 두 발 앞에서” 사는 사람으로 이야기한 다음 둘은 다음의 대화를 나눈다.

윤지욱: 처음엔 못 참겠더라고요, 정말. 자꾸 내가 이상하게 변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토할 것 같고.
바다: 그래서, 그게 싫어서 더 남자로 갔지. 부수고 때리고 욕하고, 그 어느 새끼들보다도 거칠어지고. 그래서 해병대도 가고. 해도 해도 안 되니까는 내 안에 있는 그년 죽여버리고 싶었지.

이 대화는 바다의 얼굴과 윤지욱이 우는 얼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 다음 장면은 집에서 윤지욱이 화장을 하다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씨발년”이라고 말한 뒤 사용하던 화장품을 부수고 칼로 목을 그으며 자해를 하는 모습과 윤지욱이 바다와 대화를 나누며 울고 있는 모습이 교차한다. 둘의 대화와 자해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고 또 가장 소중한 장면 중 하나다.
… 아우 손가락 아파.
간신히 마무리해서, 대충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도 모르게 마무리해서 기말페이퍼 제출… ;ㅅ;
위는 페이퍼에 쓴 부분이지만 내가 무얼 썼는지 실제 알려주는 건 없는 내용. 크.
전에도 얘기했듯 영화 [양들의 침묵], [하이힐]로 mtf/트랜스여성의 폭력성과 남성성을 썼는데.. 쓰다보니 깨닫기를, 세 편의 영화를 ‘mtf/트랜스여성의 폭력성과 남성성’이란 주제로 각각 분석하는 글을 써야 했구나… 물론 안 쓸 가능성이 더 높지만… 크. 이번에 제출한 글은 너무 날림이고 엉망이라(사실상 아이디어 메모 수준…인데 참고문헌 제외하고 14장 분량인 건 함정) 공개를 할지 어떨지 좀 고민이다. 이 글을 정리해서 출판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그냥 블로그에 공개하는 게 고민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더 좋을 것 같지만 어떠려나.. 끙… 엄청 부끄러운데.. ;ㅅ;

내가 무슨 변태건 결국 비건 채식

쓰라는 기말페이퍼는 안 쓰고 잠깐 오스트리아 빈의 퀴어 공간을 검색했다. 역시나 잘 정리해둔 문서와 홍보 팜플릿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충 목록을 보다가 내가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했다. 그러면서 쇼핑 항목만 선택해서 잠깐 살폈다. 퀴어를 상징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카페나 식당, 클럽 같은 곳은 제외했다. 클럽은 한국에서도 안 가는데.. 술도 안 마시는데… 같이 구경갈 일행이 생겨서 들리지 않는 이상 안 갈 듯하다. 카페나 식당은? 퀴어들이 자주 찾거나 퀴어에게 우호적인 식당이 어떤 형태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관심을 가질 사항은 아니다. 왜냐고? 음식과 관련 있는 순간부터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트랜스젠더거나 젠더퀴어거나 변태란 점이 아니다. 그 식당이 퀴어에 우호적이냐 아니냐는 내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비건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퀴어에게 우호적이면서 비건 식당이면 최고겠지만 아무려나 그러하다.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며 내가 퀴어임을 어떻게 드러낼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항은 결국 내가 비건이란 점이다.
그리고 검색을 하며 고민했다. 나는 퀴어 공간(queer place)를 검색했지만 구글은 레즈비언과 게이 공간, 혹은 게이 공간을 찾아주고 있다. 트랜스젠더 공간을 검색하면 여행지 정보는 (별로)안 나오는 듯하다(대충 검색해서 확실하진 않다). 어떤 점이 문제일까? 오스트라이에선 모든 변태를 게이로 통칭하는 것일까? 그럼 레즈비언은 왜? 그리고 홍보 팜플릿엔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들어가 있긴 하다. LGBT를 사용할 때의 딱 그 수준으로. 혹은 내가 검색하는 용어의 문제일까? 나는 어쨌거나 영어로 검색하고 있지만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많은 언어도 사용하지만. 그래서일까? 알 수 없지. 현재로선 뭐라고 판단할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