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클라인펠터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간성(intersex) 영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얼마전 클라인펠터 증후군 혹은 인터섹스인 아이를 둔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마음 복잡하고 무슨 글이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와 장애여성공감에서 논평을 언론에 배포하였더라고요. 내용이 좋아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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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클라인펠터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간성(intersex) 영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다양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존엄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바란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장애여성공감은 클라인펠터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달만에 운명을 달리한 이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23일 광주 광산경찰서는 22일 클라인펠터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먼저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한 어머니의 소식을 전했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은 남성의 염색체 XY보다 X의 염색체가 1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이고, 내부성선이나 외부생식기의 형태로는 보통 드러나지 않는데, 남성호르몬 작용의 부족으로 인해 생식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간성(intersex)라는 집단이라고 부른다. 서구에서는 모든 사람의 신체가 남성 혹은 여성으로 분류되고 남성 혹은 여성의 신체적 조건에 맞는 성적 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 소위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간성을 성소수자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성적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간성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적은 수이지만 <한국 LGBTI 커뮤니티 욕구조사>를 통해서 드러난 간성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태어났을 때 혹은 2차 성징이 발현되었을 때 간성이라는 점을 알게 된 후, 대부분의 부모들은 쉬쉬하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수술을 받게 하거나, 혹은 없는 문제인 것처럼 덮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신체적 상태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었다면 방황과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접했을 때 이 가족에게 클라인펠터증후군이라는 자녀의 신체적 조건에 대해서 두려움을 덜어내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정보나 심리적 지원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간성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에게도 큰 지지가 될 수 있을텐데, 한국사회의 경우 이러한 정보나 경험을 제공하고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부모의 책임만을 탓하기 어렵다.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과 같은 차원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 또한 남성 혹은 여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돌연변이나 비정상이 아니라 이미 유구한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던 인간의 다양성이다. 이러한 조건을 신체적 차이로 부르든, 장애로 부르든 이들은 단순히 교정이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이해하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그대로 살아가거나 자신이 필요한 의료적, 법적, 사회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당사자가 성별정체성을 확립함에 따라 필요한 의료적 조치의 방향은 전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 없이 이루어지는 의료적 개입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태어난 이상 이들의 운명은 부모나 의사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없다.
 
이번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보다 나아지길 바란다. 이는 단지 극소수의 희귀한 장애를 가진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의 신체를 남성 혹은 여성으로 분류해온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성찰과 다른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두려움을 제거하고, 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러한 죽음이 반복되는 사회는 간성을 비롯한 성소수자, 장애인의 삶을 절망스럽게 만든다. 이제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행동을 해나갈 때이다.
 
2014. 12. 23.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장애여성공감
 
 
참고자료: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에서 발행한 “간성(intersex) 조건을 가진 개인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응답”
http://www.apa.org/topics/lgbt/intersex.pdf
 
<단체소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과 관련된 인권 신장 및 차별 시정을 위한 법제도․정책 분석과 대안마련을 위해 2011년 8월 발족한 연구회입니다. 이 연구회는 국내외 변호사와 연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http://sogilaw.org/ 0505-300-0517 (121-846)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0길 26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며,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http://wde.or.kr/ 02-441-2384 서울시 강동구 올림픽로664 대우베네시티 상가 411호

글쓰기의 감정

어제 기말페이퍼를 마감하며, 영화 [하이힐]의 내용을 분석하다가 울었다. 어떻게 할 수 없게 눈물이 났고 그래서 울면서 장면을 분석했다. 그 장면은 어제 블로깅한 장면이다. 그 장면은 정말로 영화에서 백미와도 같은 순간인데(이토록 못 만든 영화인데도 빼어난 순간이 몇 개 있다는 것도 좀 오묘하지만) 그 장면을 분석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울면서 분석하기.

분석적 글쓰기, 분석적 언어는 대체로 감정과 거리가 있다고 이야기한가. 만약 그렇다면 울면서 작품을 분석하고 있을 때 내가 사용한 언어는 어떤 언어일까? 나는 울면서, 울음이 작품을 분석하는 힘이었다. 그럴 때 그 언어는 무슨 언어일까? 울 수밖에 없는 감정으로 작품을 조밀하게 분석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언어에 눈물이 맺혀있길 바랐다. 그러니까 분석적 용어란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용어는 지금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길 바랐다. 문학적 글쓰기, 정동적 글쓰기가 아닌 건조할 것만 같은 글에서 강한 감정이 넘실거리길 바라면서.
그러고 보면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조밀하고 치밀하게 텍스트를 분석하면서도 정동이 넘실거리는 논문은 지혜 선생님이 “나는 나의 아내다”를 분석한 글이라고 기억한다.  얼추 다섯 번 정도 읽으며 글에 흘러 넘치는 정동으로 계속해서 감정적 울림을 받았다. 그러며 슬쩍 질투하기를,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분석적 용어와 감정적 용어와 정동적 용어가 별개가 아니란 뜻이다. 어떤 글쓰기에서 매우 건조한 느낌을 주는 글일 때에도 저자에겐 매우 감정적 순간이 깊이 개입했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영어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Gordon이 쓴 Ghostly Matter란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최근 수업 교제로 읽었는데 분석적 글쓰기가 완전하게 문학적이고 문학 작품일 수도 있구나를 배웠다. 부러웠다.

기말 페이퍼 제출!

오랜 시간 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로 살다가 결국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다음, 윤지욱은 야매의사 진박사(김병옥 분)의 소개로 교회에서 해병대 선배이자 mtf/트랜스여성 선배인 바다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바다는 mtf/트랜스여성을 “창세기를 찢어버리고 사는 년”, “지옥 입구 두 발 앞에서” 사는 사람으로 이야기한 다음 둘은 다음의 대화를 나눈다.

윤지욱: 처음엔 못 참겠더라고요, 정말. 자꾸 내가 이상하게 변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토할 것 같고.
바다: 그래서, 그게 싫어서 더 남자로 갔지. 부수고 때리고 욕하고, 그 어느 새끼들보다도 거칠어지고. 그래서 해병대도 가고. 해도 해도 안 되니까는 내 안에 있는 그년 죽여버리고 싶었지.

이 대화는 바다의 얼굴과 윤지욱이 우는 얼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 다음 장면은 집에서 윤지욱이 화장을 하다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씨발년”이라고 말한 뒤 사용하던 화장품을 부수고 칼로 목을 그으며 자해를 하는 모습과 윤지욱이 바다와 대화를 나누며 울고 있는 모습이 교차한다. 둘의 대화와 자해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고 또 가장 소중한 장면 중 하나다.
… 아우 손가락 아파.
간신히 마무리해서, 대충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도 모르게 마무리해서 기말페이퍼 제출… ;ㅅ;
위는 페이퍼에 쓴 부분이지만 내가 무얼 썼는지 실제 알려주는 건 없는 내용. 크.
전에도 얘기했듯 영화 [양들의 침묵], [하이힐]로 mtf/트랜스여성의 폭력성과 남성성을 썼는데.. 쓰다보니 깨닫기를, 세 편의 영화를 ‘mtf/트랜스여성의 폭력성과 남성성’이란 주제로 각각 분석하는 글을 써야 했구나… 물론 안 쓸 가능성이 더 높지만… 크. 이번에 제출한 글은 너무 날림이고 엉망이라(사실상 아이디어 메모 수준…인데 참고문헌 제외하고 14장 분량인 건 함정) 공개를 할지 어떨지 좀 고민이다. 이 글을 정리해서 출판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그냥 블로그에 공개하는 게 고민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더 좋을 것 같지만 어떠려나.. 끙… 엄청 부끄러운데..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