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목이 아프다

목을 약간 다쳐서 병원에 갔다 왔다.

지금 사는 곳은 일요일 저녁이 쓰레기를 버리는 날로 정해져 있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밤에도 이런저런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정리를 했고 집을 나섰다. 복도식 아파트라 잠깐 복도의 창밖을 바라봤다. 어째서인지 내 집 앞 창문만 열려 있기도 하고, 평소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에 아래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쭈욱 내밀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사이였다. 뭔가 섬뜩하다고 느꼈을 때 무언가가 내 목을 잡았다. 묵직하고 날카롭지만 또한 가벼운 것 같기도 했다. 위층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다가 내 목을 붙잡았다. 스스로 뛰어내린 것 같았지만, 그 짧은 순간, 내 목을 붙잡고 어떻게든 살고 싶어하는 눈과 마주쳤다. 두려움과 체념 사이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는 표정 같기도 했다.

서로의 눈을 길게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지만, 귀엔 바닥에서 올라오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두웠지만 검붉은 색의 액체가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했지만 복도 난간에 기대어 간신히 서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경비실에 연락했다. 얼마 후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왔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였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내가 무엇을 증언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번거로울 듯해서 그냥 우연히 발견했다고만 답했다. 따지고 보면 내겐 알리바이가 없지만 혐의도 없기에 일단은 연락처를 넘기고 넘어갔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한숨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목이 아팠다. 그 짧은 순간에 목을 다친 것인지, 뛰어내리던 사람의 손이 내 목에 남긴 어떤 잔상이 강하게 남은 것인지 모호했다. 왜 뛰어내렸고 그 짧은 순간의 눈빛으로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다행스럽게도 병원에선 목에 별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목에 뭐가 묻은 듯,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목을 잡고 있는 듯 거슬린다.

바람과 보리의 거리

바람과 보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지 다섯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둘의 관계가 매우 친해지진 않았다. 서로를 그루밍해주며 애정애정 행각을 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뭔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하면, 보리가 달려가서 방해하고, 보리가 다가오면 바람은 화를 내며 싫어한다. 그런데도 둘은 종종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정도로 가까이 있곤 한다. 아래 사진처럼. 사진만 보면 매우 친한 것 같기도 한데, 일상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까이 머물곤 한다.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가까워지고 있다.

바람, 보리, 고양이

바람과만 살 때, 그리고 바람의 동생을 들이는 상상만 할 때 나는 바람의 동생은 바람과 같은 성격이길 바랐다. 바람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고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성격이길 바랐다. 뭐든 무서워하고 놀라서 내가 다가가도 후다닥 도망가곤 하는 성격이 가끔은 싫지만 그래도 바람과 같은 동생이 들어오길 바랐다. 이 착한 고양이를 또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보리가 왔다. 보리는 … 바람과 완전 다른 성격이다.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기본이다. 어디 부딪혀도 개의치 않고 우다다 달리고 뭐든 가지고 놀고 호기심 천국이다. 물론 호기심 천국이라 곤란할 때가 많지만. 아무려나 바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이라 내가 처음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런 동생 고양이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다른 둘을 보고 있으면, 성격이 달라서 참 다행이다 싶다.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좋기도 하다. 바람은 보리 덕에 조금은 용감해졌다. 보리가 오기 전엔, 바람이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후다닥 도망갔다. 지금은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내가 조금 움직이면 긴장은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는다. 보리는 바람과 지내며 어쩐지 차분하게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론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어떤 땐 많이 차분하게 행동하는 느낌이다. 귀여운 아이들.
다른 성격 덕에 나도 고양이와 관련해서 많은 걸 배운다. 정말 개묘차야 개묘차. 그리고 다른 성격이라 서로 충돌도 하지만 그런 만큼 서로에게 배우니, 같이 사는 나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