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참 구닥다리 같지만, 난 아직도 혁명의 가능성을 믿고 급진적 정치학의 가능성을 믿는다. 더이상 혁명이 가능하지 않고 급진적 정치학도 부드럽게 풀어야만 하는 시대지만, 아니 이런 시대여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읽거나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이 모두 혁명과 급진적 행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급진적 혁명을 로망처럼 꿈꾼다. 이것은 정말 불가능할까?
하지만 급진적 가능성의 상당 부분은 직접 행동을 밑절미 삼는다. 나는 직접 행동보다는 골방에 틀어박혀 꿍얼거리길 더 좋아한다. 집회에 나가거나 로비를 하기보다 기록물 등록 작업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 난 안 될 거야. 이토록 겁이 많은데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늘 두려움이 바들바들 떨면서 지내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종종 답답하고 때론 이런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쫑알거린다.
직접 행동을 하지 않아도 급진적 혁명의 가능성을 모색할 순 있다. 하지만 20년 전에 쓴 글이 여전히 매우 신선하고 멋질 때, 나는 그럴 깜냥이 안 되는 걸 깨달을 때, 내가 쓴 글은 언제나 한없이 태만하고 진부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 ‘난 안 될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안 될 걸 아니 포기하면 좋으련만 또 그걸 못 한다. 내가 급진적이라고 이해하는 글을 읽으며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다. 이 질투가 나를 끊없는 쾌락과 고통으로 이끌겠지. 그러겠지.
구닥다리 같은 망상이어도 좋은데, 언젠가 급진적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