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보리, 그러니까 고양이

01
얼마 전 3차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다녀왔다. 가는 동안 보리는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지난 번엔 “야!! 왜! 왜 이러는 건데! 기껏 적응해서 좀 살려고 했더니 이젠 또 어딜 데려가는데!!! 야, 이것 놔! 얼른 데려 놓으라고!!!”라고 울부짖는 느낌으로 울었다. 이번엔 그냥 간헐적으로 좀 울긴 해도 별로 안 울었다. 이젠 대충 그 의미를 파악한 것이냐, 아님 이젠 여기서 같이 살 것이란 점을 이해한 것이냐.
물론 주사는 싫었는지 돌아올 땐 좀 울었다.
02
바람과 보리의 관계는 에.. 음… 좀 이상하다. 일단 바람의 경우, 보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가까이만 다가와도 크아앙하며 큰 소리로 위협한다. 그런데 또 가끔은 보리 냄새를 맡으려고 다가가면서 위협한다. -_-; 보리의 경우, 바람이 위협을 하건 말건 신경을 안 쓴다. 때론 바람이 싫어하는 걸 알고도 다가가는 느낌이고 대론 바람과 놀고 싶어서 다가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장 얄미운 건, 바람이 밥을 먹으려고 하면 보리가 바람에게 우다다 달려가선 신경 거슬리게 혹은 신경 쓰이게 하고 이렇게 해서 밥을 못 먹게 하는 경우다. 가끔은 무척 화가 나서 혼을 내기도 하는데 별 소용이 없는 듯. 그래서 내가 같이 있을 때면 보리를 억지로 붙잡는 수준이다. 내가 있을 땐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없을 땐? 걱정만 넘칠 뿐이다.
03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결론이라면 그래도 내가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 둘이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좋은 게 좋은 건 아니라는 식의 결론이라면 아직은 걱정이 많이 된다. 뭐, 어떻게 되겠지만.

‘보수 기독교 대 LGBT’라는 수사를 바꾸기

몇몇을 위한 아이디어 공유.
흔히 ‘보수 기독교 대 LGBT’라는 수사를 자주 사용한다. 나 역시 이런 수식어를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사를 사용할 때면 늘 찜찜하다. 어떤 날은 ‘일부 보수 기독교’라고 표현을 해보지만 찜찜함이 가시진 않는다. 보수 기독교 내에서도 LGBT에 공공연히 적대적인 교회나 모임에 비판적인 경향도 있다. 기독교 신자인 LGBT 혹은 퀴어가 적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보수 기독교대 LGBT’란 식의 수사는 LGBT에겐 엄청난 거대 세력과 대항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고, 반-LGBT를 외치면서 대리 전쟁을 치르는 일부에겐 자신들 뒤에 엄청난 배경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 적어도 이 부분은 끊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임시 방편은, 예를 들어 ‘바성연 등 몇몇 집단 대 LGBT, 그리고 바성연 등 몇몇 집단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거나 ‘길원평과 아이들 대 LGBT’다. 이런 수사의 효과는 거리에서 직접 우리에게 적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믿고 있는 배경을 날리는 것이다. 물론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한 아이디어지만 그건 천천히… 으흐흐

케이트 본스타인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제 퀴어영화제 폐막작 <케이트 본스타인>은 정말 좋았다. 나의 모델 중 한 명이고 좋아하는 연예인 같기도 한 케이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최고였다. 한 개인의 역사가 운동 및 이론의 역사기도 하단 것을 화면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기쁨이란!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 그게 내겐 위로였다. 고마워요, 케이트 이모.


아쉽다면 자막에서 자잘한 수정 사항이 있고(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인데 이건 케이트 본스타인 관련 사전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라 부득이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상영 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더 좋았겠다는 것 정도? 다큐에 케이트 언니가 의료적 조치를 하기 전 사진이 스치듯 나오는데 그런 깨알 같은 부분이라거나,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 같은 걸 다루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폐막작으로 한 번만 상영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부디 추가 상영이 있기를!
아울러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하게 다룬 두 권의 책, 젠더무법자와 헬로 크루얼 월드가 이르면 올해 안으로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다큐를 상영하고 책의 내용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더 좋겠다 싶다. 이것은 혼자만의 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