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머리를 자르지 않은 듯 자른 듯 자르지 않은 듯하게 머리를 잘랐다. 오랜 만에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다. 몇 년 간 한 군데를 다녔는데 너무 불친절했고 머리카락 모양에 일관성이 없었다. 지난 번처럼 잘라주세요, 했는데 지난 번과 다른 모양이다. 더군다나 같은 최근까지 내 머리카락을 잘라 준 미용사는 계속 내 머리카락을 ‘남자’스타일로 바꾸려고 했다. 같은 미용실의 이전 미용사(일이 있어 그만뒀다)는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깔끔하게 잘라줬는데. 그래서 집 근처로 바꿨다. 그리고 만난 미용사는 어쩐지 부치 같은 느낌이지만 부치는 아닌 것 같은 그런 포스로 섬세하게 머리카락을 잘라줬다. 단발머리 느낌으로 잘라달라고 했지만 좀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자른 것 빼면 괜찮았다. 그리고 어제 다시 그곳엘 갔는데, 에? 구성원이 달라서 가게는 두고 주인이 바뀌었나 싶었다. 나중에야 미용사만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미용사에게 단발머리 스타일로 커트를 해달라고 했다. “이미 단발머리인데요?”하더니, 여기 조금 깨작, 저기 조금 깨작 자르더니 다 되었단다. 엥? 앞머리 좀 치고 옆머리랑 뒷머리 조금 친 것 말고 뭘 하셨지? 이런저런 머리모양을 테스트하기에 좋을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 그래봐야 결국 익숙한 루인 머리겠지만. 크. ;ㅅ;

그리고 나는 남자커트가 좋다. 더 싸다. 휴우.. 여자커트와 남자커트에 가격 차이가 있으니 앞으로도 더 남자커트를 할 거다. 머리카락 길이가 아니라 남바와 여자로 구분하다니 웃기지만 일단은 가격이 중요하다. 크.

퀴어를 진부하고 태만하게 전시하기

어제 입은 면티엔 “I AM QUEER. SO WHAT?”이 적혀 있다. 팔엔 “LOVE conquers HATE”이라고 적힌,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판매한 팔찌를 두르고 있다. 보조가방은 작년 퀴어영화제 가방이고, 그 가방엔 무지개를 든 안드로이드 뺏지(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마련한 구글이 나눠준 것)가 달려있다.
하지만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면티는 올해 구매한, 혹은 예전에 구매한 퀴어문화축제의 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아보는 사람은 이 물품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거나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 뿐이다. 아직 길에서 이것을 알아보고 시비를 건다거나 뭐라고 한 사람은 없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의 이런 물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고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해서 꼼꼼하게 읽는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알바하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제까지 이것으로 질문한 사람은 없었다. (아, 태블릿에 끼우고 다니는 무지개는 알바하는 곳에서 한두 명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막 티내려고 애쓴다고 해도 이것은 충분히 의미있게 작용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이 입는 티나 물품에 크게 신경쓰지 않듯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는 면티의 앞부분, 그 광활한 앞부분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매우 좋은 공간이라고 믿는다. 디자인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공공연히 전시하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 나는 늘 개인이 소량으로 티를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입금될 금액이 입금되면 나는 곧 스냅티에서 티셔츠를 주문할 예정이다.) 때론 이런 행동이 참 옛스럽기도 하다. 그냥 좀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느낄 때도 많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고리타분해도 이렇게 진부하고 태만한 방식이 나의 감성인 걸. 뭔가 폼나는 사람처럼 급진적이고 싶고 세련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태만함은 나의 감성이고, 그러니 결국 태만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빈둥거리며

어제는 종일 빈둥거렸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전날 만들어둔 파스타를 데워서 아침으로 먹고 식물과좀비를 잠깐 했다. 일정 레벨로 올라가자 더 이상 쉽게 진행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나는 그냥 게임을 중단했다. 같은 판을 서너 번 이상 하는 수준으로 바뀌면 게임을 중단한다. 그리고 급 흥미가 떨어진다. 아마 다시 안 하거나 다시 한다면 새 이름을 만들어서 1판부터 하겠지? 끝장을 보려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긴장을 풀고 시간을 때우려고 게임을 하는데 애써 머리를 쓰고 싶진 않다. 그리곤 만화책을 읽었다. 일본 만화 라면/라멘(어쩐지 일본 라면은 라멘으로 불러야 할 것 같아, 라면은 한국의 봉지면 이미지가 엄청 강해서 구분하고 싶거든)인데, 아아, 역시 라면은 진리야. 내가 만약 채식을 안 했다면 난 정말 라멘 먹으러 일본에 갔거나 일주일에 두끼 이상은 일본 라멘을 먹었을 거야. E가 그랬지, 내가 채식을 해서 다행이라고. 크크크. 일요일이고 오랜 만에 휴식이라 점심도 면을 먹었다. 어제 점심부터 세 끼 연속 면이지만 괜찮아. 아니, 참 좋아. 내 위가 더 튼튼하다면 난 면을 좀 더 자주 먹겠지? 부가 수입이 생길 듯한데 입금되면 아이허브에서 마누카꿀이라도 사먹을까 하고 있다. 위에 그렇게 좋다는 말이 있어서. 마누카꿀 먹고 라면을 더 열심히 먹어야지. 우후후. 라면 좋아, 라면. 점심을 먹고 두통에 졸음으로 낮잠을 잤다. 얼마만의 낮잠이냐. 달고 또 개운했다. 일어나서 적당히 빈둥거리면서 어제 방영한 무도를 그냥 대충 넘겨만 봤다. 응원편은 재미가 없어서 그냥 대충 넘기고 있다. 그냥 멍때리면서 빈둥거리다가 저녁엔 대청소를 했다.

빈둥빈둥. 무슨 이런 걸 블로깅하나 싶지만 이런 생활이 필요하다. 확 풀어져선 그냥 멍때리며 지내는 삶이 내겐 중요하다. 퀴어 이론보다, 트랜스젠더 정치학보다 때론 멍때리며 빈둥거리고 대충 노닥거리는 시간,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하고 지냈냐고 물으면 어물어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지만 그런 빈둥거림이 중요하다. 이것이 삶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힘이니까. 살면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다면 그건 무척 고단할 거야.

+
처음엔 제목을 ‘빈둥거림이 정치학’으로 썼는데 이게 뭔가 싶다. 그냥 빈둥거리면 그만이지 무슨 의미를 굳이 부여하려고 애쓰나 싶어서. 그저, 어제 하루 빈둥거렸다는 걸 자랑하고 싶다.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멋진 글을 썼다거나 흔히 말하는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것 말고, 그냥 빈둥거렸다는 걸 자랑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무척 슬픈 일이지만 난 이게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