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 대 LGBT’라는 수사를 바꾸기

몇몇을 위한 아이디어 공유.
흔히 ‘보수 기독교 대 LGBT’라는 수사를 자주 사용한다. 나 역시 이런 수식어를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사를 사용할 때면 늘 찜찜하다. 어떤 날은 ‘일부 보수 기독교’라고 표현을 해보지만 찜찜함이 가시진 않는다. 보수 기독교 내에서도 LGBT에 공공연히 적대적인 교회나 모임에 비판적인 경향도 있다. 기독교 신자인 LGBT 혹은 퀴어가 적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보수 기독교대 LGBT’란 식의 수사는 LGBT에겐 엄청난 거대 세력과 대항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고, 반-LGBT를 외치면서 대리 전쟁을 치르는 일부에겐 자신들 뒤에 엄청난 배경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 적어도 이 부분은 끊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임시 방편은, 예를 들어 ‘바성연 등 몇몇 집단 대 LGBT, 그리고 바성연 등 몇몇 집단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거나 ‘길원평과 아이들 대 LGBT’다. 이런 수사의 효과는 거리에서 직접 우리에게 적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믿고 있는 배경을 날리는 것이다. 물론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한 아이디어지만 그건 천천히… 으흐흐

케이트 본스타인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제 퀴어영화제 폐막작 <케이트 본스타인>은 정말 좋았다. 나의 모델 중 한 명이고 좋아하는 연예인 같기도 한 케이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최고였다. 한 개인의 역사가 운동 및 이론의 역사기도 하단 것을 화면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기쁨이란!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 그게 내겐 위로였다. 고마워요, 케이트 이모.


아쉽다면 자막에서 자잘한 수정 사항이 있고(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인데 이건 케이트 본스타인 관련 사전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라 부득이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상영 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더 좋았겠다는 것 정도? 다큐에 케이트 언니가 의료적 조치를 하기 전 사진이 스치듯 나오는데 그런 깨알 같은 부분이라거나,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 같은 걸 다루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폐막작으로 한 번만 상영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부디 추가 상영이 있기를!
아울러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하게 다룬 두 권의 책, 젠더무법자와 헬로 크루얼 월드가 이르면 올해 안으로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다큐를 상영하고 책의 내용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더 좋겠다 싶다. 이것은 혼자만의 망상!

흔들려도 괜찮아.

사회에서 수용되지 않을 논의를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무척 어렵겠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혹은 바로 이런 이유로 사회에서 수용되지 않는 논의를 널리 회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급진적 정치학을 잃지 않는 것은 핵심이고. 이것은 때로 불가능한 일처럼 인식되지만, 벨 훅스가, 오드리 로드가 그들의 글에서 생생하게 보였기에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작업을 하는데엔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어떤 일도 단시간에 성취되지 않는다. 일이 년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일이십 년을 예상하고 이 작업을 진행해야겠지. 그래서 스스로에게 시간의 관대함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늦어도 괜찮다고, 다른 사람보다 성취도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 상황을 무심하게 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시간의 관대함을 베푸는 것, 그리고 이것은 이른바 ‘멘탈 갑’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 혹은 요즘 말로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성격과는 무관하다. 그러니까 성격이 소심하다거나 외향적이다라거나 이런 식의 성격과는 무관하다. 주변의 말에 별로 흔들리지 않고, 주변의 말에 흔들려고 자신이 욕심내는 것 혹은 지향하는 것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그렇게 살아서 뭐하려고 그러냐”라는 말에 상처는 받고 때론 자신의 삶이 의심스러워서 많이 흔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삶을 밀어붙이는 것.
… 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은 이런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퀴어의 어떤 범위에 속한다고 인식하는 분들,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계신 분들 모두 힘내시기를. 흔들려도 그냥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