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우리 만난지 이제 4년이구나. 이미 우리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지만, 안녕 나의 고양이.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얼마 전엔, 오랜 시간 두려워 듣지 못 하던 심성락의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들었단다. 지난 몇 년간 난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어. 어쩐지 고통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다행이라면 고통스럽진 않았어. 그저 그 노래를 들을 때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뿐. 네가 내게 왔고, 나는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을 비울 때가 많았지. 집에 널 혼자 두고 나갈 때면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어. 너의 음악 취향을 잘 몰라 그냥 가장 무난하게 골랐지. 그 당시 종종 듣던 음악이기도 했고. 아코디온의 소리, 혹은 바람의 소리. 혹시나도 네가 심심할까봐 틀어봤던 음악. 그래 심성락의 음악을 들으면 네가 내게 와서 어색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너는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내 무릎 위에 올라왔지. 너는 자주 내 무릎에 올라왔고 너는 여덟 아깽을 품은 상태로 골골거리곤 했지. 너는 밤새 우다다 달렸고 너는 내가 준 맛없는 사료를 잘 먹어줬고 너는 그때 살던 집이 곧 네 영역이란 걸 알았음에도 내 자리를 존중해줬지. 너는 언제나 우아했고 너는 언제나 당당했고 카리스마 넘쳤으며 너는 예뻤지. 그리고 너는, 무수히 많은 너는, 내가 아직 못 잊는 너는…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

캐나다에서 트랜스 아카이브로 학술대회 개최

Moving Trans* History Forward란 행사가 2014년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캐나다의 University of Victoria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키노트 스피커가 무려 수잔 스트라이커!!! 그리고 비비안 나마스테!! 달라스 데니! 기획자는 아론 데버. 하앍.. 하앍..
… 작년에 지원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키노트 스피커 명단을 알고서 무조건 지원할까 했지만 영어가 안 되는 문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프로포절 제출이라도 해볼 걸 그랬어요. ㅠㅠㅠ 발표 주제 등을 확인하는데 정말 가고 싶어요. 못 가면 자료집이라도 구하고 싶어요. 엉엉. 일단 지원이라도 해볼 걸 그랬어요. 엉엉. 정말 가고 싶어요.
혹시 빅토리아대학교 주변에 살고 계시는 분 없겠죠? 하지만 행여나 자료집이라도 있어서 구할 수 있는지 부탁하는 건 정말 민폐니 못 할 일이지요. 자료집이 있다면 자료집도 구하고 싶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곳의 분위기를 보고 싶은 바람이 더 크달까요. 어떤 느낌일지.
+
키노트에 Jennifer Pritzker란 인물이 있어 누군가 했는데 억만 장자(위키에 따르면 2013년 9월 기준으로 1.7 billion이라고)인 mtf 트랜스여성! 가문 자체가 유명한 곳인듯하고요. 1960년대에 수천만 달러의 재산가였던 리드 에릭슨 이후 최대 자산가인가. 뭔가 재단 사업을 하는 듯한데 트랜스젠더 이슈로는 뭐 안 하시려나. 그리고 한국에선 수백억대 자산가가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하는 일은 당분간 없겠죠?

직장의 신, 계약직의 모습

작년 봄이었나 여름이었나. 알바를 하는 곳에서 ㄱ은 사업 기획안을 올렸으나 팀장에게 깨졌다. 자리에 돌아온 ㄱ은 화를 내면서 ㄴ에게 말했다, 요즘 슈퍼 을이 유행이라는데 우리도 슈퍼 을 하면 안 돼? 우리가 일 다 하잖아. ㄱ의 말에 ㄴ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ㄱ이 특별히 더 권력의 눈치를 안 보고, ㄴ은 권력에 눈치를 보고 라인을 잡으려고 애쓰는 성격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둘 다 결제라인의 눈치를 안 보고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다. 다만 ㄱ은 정규직에 특별한 과실만 있지 않다면 정년보장이 된 상황이었고 ㄴ은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이었다. ㄴ은 꽤나 오래 재계약을 해왔지만 작년엔 회사의 판단에 따라 재계약이 안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부서에선 재계약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올해, ㄱ은 정기 인사이동에 따라 다른 부서에 갔고(절대 보복 인사이동이 아니다) ㄴ은 재계약을 못 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서 슈퍼 을이 되자고 하는 기묘하고 웃긴 상황. 슈퍼 을이란 말이 나왔던 그때, 한국 사회에선 <직장의 신>이 화제였다.
뒤늦게 <직장의 신>을 보고 있다. 이제 초반 몇 화를 봤지만 일단 재밌다. 진작 봤으면 더 재밌을 텐데. 처음엔 슈퍼 을인지 슈퍼 갑인지 헷갈리는 미스 김이 좋았다. 내가 슈퍼 을이란 위치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 따위가 무슨 슈퍼 을. 그냥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일개 알바일 뿐인데. 단지 미스 김이 칼출근에 칼퇴근하는 모습이 나와 같고, 근무하는 곳에서 다른 직원과 업무 이외의 관계를 엮지 않는 모습이 같아서 그랬다. 나는 그곳에서 몇 년을 일했지만(해마다 재계약하고 있고 내년에 재계약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다. 다른 많은 정규직이 빈번하게 지각을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그리고 나는 늘 계약한 시간까지만 일한다. 칼 퇴근이다. 1-2분 정도 늦게 퇴근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 더 일한 적은 지금까지 통틀어 다섯이 안 된다. 그리고 몇 년을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나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나를 관리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업무 이외의 일로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초반엔 미스 김에 감정이입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정주리(미스 김과 마찬가지로 3개월 계약직)에게 감정이입한다. 물론 안타깝고 속이 터진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내 삶은 미스 김과 같을 수 없다. 미스 김이 멋져 보일 순 있어도 내 삶은 아니다. 난 미스 김처럼 우아한 집에서 살지 않으며 그렇게 완벽하고 또 못 하는 것 없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서둘러 걷고 복잡한 지하철에서 인파에 시달리고 그날 그날 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가끔은 딴 짓도 한다. 아울러 나는 내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초반까지만의 성격으로, 정주리가 불안하고 속이 터지는 캐릭터라고 해도 그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학생이지만 비정규직 알바 혹은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나는 정주리란 캐릭터에서 내 모습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스 김이 아무리 멋지고 속이 시원한 캐릭터라고 해도 회를 거듭할 수록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미스 김의 속이 후련한 행동에 무척 기뻐했지만 회를 거듭하니 그냥 무덤덤하다. 대신 정주리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모습이 더 신경 쓰인다.
덧붙이면, <직장의 신>에서 내가 일하는 곳의 모습을 많이 발견한다. 단적인 예로 회사 업무의 상당수, 그리고 실질적인 것은 계약직이 한다. 중요한 일을 비롯해서 소프트웨어는 정규직이 담당하고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은 자잘한 업무만 한다는 건 명백한 착각이다. 실질적 업무와 많은 주요 기획을 계약직이 한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계약직이다. 모든 정규직이 그렇진 않겠지만 많은 정규직이 아침에 출근하면 인터넷쇼핑을 하거나 그냥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물론 입으론 바쁘다는 말을 하지만 커피를 마시러 간다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더라.
그리고 내가 계약직이란 위치를 지각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런저런 추가 수당 등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계약을 할 때 상당히 확실하게 느낀다. 일정 기간 계약을 하면서, 만약 내가 중간에 관두면 나는 총 계약금액의 15% 수준에서 배상을 해야 한다. 그럼 회사가 정당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짜르면? 이에 대한 보상 기준은 없다. 이것이 2000년대 노예인 계약직의 지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