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퀴어 이론의 위계

E와 얘기를 나누며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E와의 공동 아이디어고요.
한국에서 퀴어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퀴어이론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한 이른바 위계입니다. 어떤 글을 더 높게 쳐주고 어떤 글을 하대하거나 무시하는지, 혹은 어떤 글을 더 선호하거나 우선적으로 읽고 어떤 글은 읽지 않거나 아예 관심을 안 두는지 나눠봤달까요. 물론 이 분류가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바이-트랜스젠더-인터섹스 이슈의 글은 그냥 무시되죠. 한국어로 쓴 퀴어이론 역시 거의 무시되고요.
물론 농담입니다, 농담.
한국에서 퀴어 이론의 위계
-영어로 쓴 단행본 및 학술지 논문(단, 주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저자의 글)
-영어로 쓴 칼럼(단, 주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저자의 글)
-한국어로 번역한 영어권 단행본(단, 주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저자의 경우)
-한국어로 번역한 영어권 학술 논문(단, 주로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인 저자의 경우며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되지 않은 것)
-영어로 쓴 단행본 및 학술지 논문(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이 저자인 경우)
-한국어로 번역한 영어권 단행본 및 학술 논문(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인 저자의 경우)
-한국어로 쓴 단행본(레즈비언이나 게이 주제)
-한국어로 쓴 등재지, 비등재지 및 학위논문(레즈비언이나 게이 주제)
-한국어로 쓴 단행본(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주제)
-한국어로 쓴 등재지 및 학위논문(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주제)
-한국어로 쓴, 잡지에 실린 논문(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주제)
-한국어로 쓴 칼럼
-영어로 쓴 칼럼(바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이 저자인 경우)
-한국인이 영어로 쓴 학술 논문

소득의 상대적 개념.

최근 몇 년 동안, 1년에 9개월만 생계형 알바를 한다. 그리고 9개월 동안 번 수입으로 12달을 산다. 한 달 수입은 대략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원고료나 강의료 같은 부정기 수입을 포함해도, 연봉은 대략 일천만 원 약간 넘는 수준. 일 년에 벌어들이는 수입만 따면, 하루 8시간, 주 5일, 일 년을 최저임금으로 받을 때의 수익과 대략 비슷하다. 물론 나는 하루 8시간을 일하진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는 날은 오전이나 오후에만 근무한다. 그러니 시간당 소득은 최저임금보다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소득은 낮은 편이다. 그러니 가난하다고 말할 법도 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 단순히 아는 사람말고 좀 친한 수준의 사람 대부분은 나보다 수입이 적은 경우가 많다. 더 정확하게, 소수를 제외하면 나보다 수입이 많은 경우가 잘 없다. 혹은 나랑 비등비등하거나. 그러다보니 종종 내가 상당히 수입이 많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내가 부자인 것 같은, 나의 월수입이 엄청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결코 그렇지 않음에도 그렇다는 착각.
내가 이런 착각에 빠질 때마다 드는 고민은 수입이란 역시 상대적 개념일까와 빈부개념 역시 상대적인 것일까와 내가 엄청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서 이렇게 느끼는걸까다. 악착 같이 돈을 모아서 나중에 편하게 살겠다는 개념이 별로 없다. 그냥 지금 벌어서 지금 쓰는 개념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소득이란 측면에서 참 잘 살구나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날 보며 속이 터지거나 답답하겠지만 난 그냥 좋다. 비록 사고 싶은 책 다 못 사고, 사고 싶은 기기 다 못 사고 지내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 소득이란 측면에선 그러하다.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법외자/젠더 무법자

어떤 분에겐 반가울 소식 하나 전합니다.
케이트 본스타인이라고 아시나요? 아마 트랜스젠더퀴어 이론에 관심이 있거나 젠더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다양한 활동을 했고, 연극배우며 1990년대엔 트랜스/젠더 이론서, 교육서 등을 쓴 저자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케이트 본스타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얻고 많은 배움을 얻었을 거고요.
이런 케이트 본스타인이 처음 쓴 책은 이론적 자서전, 혹은 자전적 이론서입니다. <젠더 법외자> 혹은 <젠더 무법자>로 번역할 수 있는 책, Gender Outlaw: On Men, Women, and the Rest of Us는 본스타인이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삶과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적절하고 절묘하게 엮은 책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자서전을 출판하는 붐이 일었는데 본스타인의 책이 그 붐을 일으켰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삶과 이론이 절묘하게 엮이는 찰나며 삶이 얼마나 치열한 이론인지, 이론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이론을 처음 공부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고 배움을 얻었습니다. 제겐 정말 소중한 책 중 하나죠. 그래서 이 책을 한국의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지만 쉽진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이 책을 번역하자는 얘기를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바로 이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믿기나요? 얼마 전, 이 책 번역과 관련한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판권 계약 및 옮긴이 계약 모두 맺었다고 하고요. 물론 제가 번역하진 않아요. 제가 욕심을 냈던 책이지만 전 다른 책을 번역하고 있거니와 제겐 단독으로 영어책을 번역할 능력이 없거든요. 저에 비하면 번역을 엄청 잘 하는 분이고, 트랜스젠더퀴어 이론도 공부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만.. ^^; (이런 소식을 알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정말정말 기뻐요!
제 글로는 <젠더 법외자>가 어떤 글일지 가늠하기 힘드실 테니.. 모 님을 착취하여(고맙고 죄송합니다..ㅠㅠ) 몇 구절 옮겼습니다.
내 생각에 젠더는 S/M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안전하고, 정상적이고, 합의한 것이어야 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만일 내가 나의 젠더를 바꾼다면 살인, 자살 또는 내 잠재력의 절반이 사라지는 삶이라는 위협을 대면하게 된다.
만일 내가 젠더를 알리는 신호가 섞여 있는 몸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도살될 위험에 처한다- 조정되고, 절단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무지개를 흑 아니면 백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모두가 단 두 개의 범주 중 하나에 맞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으로 분류하고 칭송하기 위해 남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젠더는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면 의사가 젠더를 지정한다. 그 과정은 국가에 의해 문서회되고, 법에 의해 시행되고, 교회에 의해 신성화되고, 미디어에 의해 사고 팔린다.
우리는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젠더를 질문하고, 가지고 놀고, 친구들, 애인들,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없다.
젠더는 합의된 것이 아니다.

안전한 젠더는 비난이나 폭력의 위협 없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어떤 방향이든 바라는 곳으로, 우리나 다른 누구의 건강에도 위험을 끼치지 않고 가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패싱하라는 위협도,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일도, 숨여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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