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기 퀴어 뉴스브리핑]#008

미국 CBS가 반-트랜스 법안에 따른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9살 트랜스여성 아바Ava의 경험을 설명한 뒤, 예일대학교 소아과 교수인 Meredith McNamara 박사는 요즘은 청소년의 약 10% 정도가 다양한 젠더 범주를 구분하고 있으며, 그들은 태어날 때 지정된 젠더로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맥나마라 박사는 18세 이전의 나이에 의료적 조치를 진행하는 것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심각한 고통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며, 고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CBS뉴스는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의료적 조치를 지연할 경우, 발생하는 고통과 심리적 신체적 문제와 관련한 트랜스젠더퀴어와 그 부모의 인터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퀴어 친화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은 응급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의학 뉴스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내분비학회연례회의 ENDO 2023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응급실에 가는 트랜스젠더퀴어는 비트랜스보다 더 아픈 경향이 있으며, 응급실 이용 후 입원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미시간주 앤아버 소재 미시간대학교의 Daphna Stroumsa, MD가 발표한 내용인데요, 트랜스젠더퀴어는 의료 종사자가 행할 지도 모를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심각하게 아플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습니다. 간단한 질병부터 만성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이 제때 치료되지 않기에 응급실 이용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2006년부터 2018년까지의 응급실 이용과 관련한 데이터를 분석한 이 자료는, 2006년에 0.001%가 확인된 트랜스젠더퀴어였다면, 2018년에는 0.016%가 확인된 트랜스젠더퀴어였으며, 상황의 심각성은 비트랜스에 비해 3배 정도 높았습니다.
미국의 연방판사는 젠더경합으로 진단을 받은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의 의료적 조치를 금지하는 인디애나주 법안에 대해 예비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이 없었다면 7월 1일 시행되었을 것입니다. 이 결정은 국가가 사춘기 차단제나 호르몬 투여 등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미국 지방법원 판사인 James Patrick Hanlon은 금지하는 법을 지지했습니다. 반-트랜스 법안을 금지하는 연방법원 판사의 명령은 인디애나에 거주하는 모든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에게도 적용됩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예비 후보 중 한 명인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의 건강 관리에 있어,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24라는 매체에서 파키스탄 트랜스젠더퀴어의 상황을 다룬 기사입니다. 지난 5년 간 트랜스젠더퀴어는 피키스탄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법(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으로 평가되었던 그 법)으로 인해 삶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하지만, 2018년 5월 트랜스젠더퀴어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을 통과시켰고, 이 법을 통해 모든 트랜스젠더퀴어는 동료 시민과 동등한 법적 기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IQNB에서도 소개드렸듯] 2023.05.19.에 연방 샤리아트 법원에 의해 이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지난 해 파키스탄 영화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조이랜드Joyland”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퀴어 무용수와 사람에 빠진 유부남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강경파 이슬람 정당의 압력으로 정부의 검열을 받았지만 결국 작년 11월 16일 개봉이 승인되었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영화관 중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선택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문자 기사는 여기까지라… ;ㅅ; 영상 기사라 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포브스는 직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용하기 위한 전략을 다룬 기사를 냈습니다. 2022년 기업 평등 지수(Corporate Equality Index)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97%가 트랜스젠더퀴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으며, 이는 2002년 5%에 비하면 증가한 것입니다. 또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한 건강 보험을 제공하는 고용주는 2009년에 비해 22배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반-트랜스 법안은 기업의 퀴어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증대시키고 있으며, 실제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의 절반 정도가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합니다. 민간 기업의 고용주가 주에서 제정한 법을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트랜스젠더퀴어 등 퀴어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 취함으로써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기업은 퀴어 청소년을 위한 세계 최대의 자살 예방 및 위기 개입 조직인 The Trevor Project와 협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트랜스젠더퀴어의 공간 이용에 대한 포용적 정책을 채택하고, 인칭대명사나 다양한 퀴어 정체성과 관련한 교육과 인식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성 교육을 개발하고,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호주의 호주 스포츠 위원회(Australian Sports Commission, ASC)는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시키기 위한 지침을 발표하면서, 스포츠 관리 기관이 포용 정신을 고취하고 호주의 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 세계육상연맹, 세계수영연맹, 세계럭비연맹 등은 트랜스여성의 여성 스포츠 경기 참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지침을 위반하는 것인데요. 호주 스포츠 위원회가 새롭게 발표한 지침은 세계연맹의 방침과 충돌하지만, 세계연맹의 지침을 따르면 호주의 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호주 스포츠 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 부문에서 공정하고 의미 있는 경쟁 유지
-가능한 경우 선수가 선호하는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기회 제공
-성평등을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고성능(high performance) 스포츠의 여성 부문에서 트랜스여성이 경쟁하려면 다음을 권장합니다.
-선수는 국가 대표팀 선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관리 기구와 국제 관리 기구 간의 차이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스포츠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로 선수를 제외시킬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측정, 호르몬 억제 및 문제 제기를 위한 명확한 방법을 포함하도록 정의된 적격성 및 공정성 요소(트랜스젠더 선수 및 포함 또는 배제의 영향을 받는 다른 선수 모두)
그리고 이런 조건으로 인해 배제된 선수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뭔가 애매하네요…]
네이처가 트랜스젠더퀴어 과학자의 이야기를 기사화했습니다. 트랜스여성 지구화학자인 리사Lisa 교수는 2002년 대학에서 커밍아웃을 고민했고 동료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자 학과장은 모든 학생 및 교수, 직원 등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길 제안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트랜스젠더퀴어를 공공연히 조롱했고, 많은 트랜스 연구자가 박사 학위가 있음에도 교수로 취직하지 못하거나,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이유로 교수 임용이 취소되었습니다. 리사는 당황했지만 결국 학과장의 제안대로 했고, 모든 사람이 이를 아는 것은 리사의 생활에 중요했습니다. 현재 60세인 리사는 현재 매사추세츠의 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극 지의류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식물학자 엘케 맥켄지는 60세 나이인 1971년 트랜스젠더퀴어로 커밍아웃했습니다. 선구적인 컴퓨터 엔지니어 린 콘웨이는 성전환 뒤 1968년 IBM에서 해고되었습니다(2020년 IBM은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한국에서 자서전이 번역된 벤 바레스의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우주학 박사 과정생인 베스 굴드Beth Gould는 세 명의 논바이너리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 그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네이처는 트랜스젠더퀴어를 범죄로 규정한 국가의 과학자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로 살아가는 다른 국가의 과학자가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에서 열리는 중요 학술대회나 행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은, 한 국가의 위협이 지식 교류와 정보 공유, 새로운 배움의 기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법적 안정이 보장되었다고 해도, 브라질은 트랜스젠더퀴어 살해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특히 비백인이라면 이런 차별과 억압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 기사는 과학 커뮤니티 내부, 사회적 조건, 법의 변화 등을 같이 다루고 있어서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보셔요.]
당노병이  있는 트랜스젠더퀴어 관련 기사입니다. 기사 속 주인공인 클레어 힝클Claire Hinkle는 1형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10년을 사귄 아내에게(아내도 같은 당뇨병 환자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로 커밍아웃을 햇습니다. 그들은 Camp Sweeney라는 당뇨병 캠프에서 만났습니다. 둘은 13년을 함께 했고 두 딸이 있기에 커밍아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가족과 아내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호르몬 투여를 시작하며 당뇨병은 롤러코스트를 타듯 변했고, 인슐린 수치는 HRT를 시작한 첫 8개월 동안 거의 2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생 호르몬을 투여해야 하고, 또한 당뇨병도 관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의료 전문가와 적극 상담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족의 지원이 없거나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다면 Ingersoll Gender Center와 같은 온라인 지원팀도 있다고 합니다. 관련 고민을 하시는 분은 이 기사를 참고해보시고, 살림의원이나 무지개의원 같은 곳에서 상담하면 좋을 듯합니다.
영국 총리 리시 수낙이 트랜스젠더퀴어를 조롱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leak) 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퀴어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팁을 담은 글입니다. 한국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있고 단행본 작업 등 자료가 많지만, 겸사겸사 참고하시면 됩니다. 짦은 글이라 간단합니다. 다만 저자는 현재 미국의 반-트랜스 법안이 제정된 주에서 거주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불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트랜스 법안이 제정되면서 이와 관련한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 당사자 및 양육자의 기사가 꾸준히 나오고 있네요.

(무)성애의 병리화를 통해 역사를 다시 추정하기

존재의 역사, 논의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새로운 퀴어 논의를 생산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언제나 매우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퀴어 이론의 역사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퀴어 이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은 그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위치, 이론적 배경 등을 말해준다. 어떤 이들은 게일 루빈의 1984년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그 출발점으로 삼으며, 또 어떤 이들은 1980년대 에이즈 활동을 언급한다. 혹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 프로이트나 데리다, 라깡을 불러오기도 한다. 혹은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나 페미니스트의 1970-80년대 이론적 성취를 그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이 모든 기원은 퀴어 이론의 역사가 그 자체로 해석과 해석이 경합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의미하며, 이러한 경합이 역사적 기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퀴어 이론의 역사는 이미 다양한 해석 경합 속에서 구축되는 과정에 있다.
그럼 무성애 이론의 역사, 존재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무성애와 관련한 많은 논의를 충분히 읽지 못했고 그래서 이와 관련한 공부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이미 무성애를 전공 삼아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있으니 나의 이 글은 부끄러운 메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공유라는 측면일 것이다.
무성애의 역사를 다루는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병리화의 역사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다. 병리화의 역사를 요약하면, 1980년 DSM-III판에 억제된 성욕(Inhibited Sexual Desire)이라는 진단명으로 등재되었고, 1984년에는 성욕감퇴장애(Hypoactive Sexual Desire)으로 재명명 되었다. 그러다 2013년 무성애 정치를 수용하며 DSM은 성욕감퇴장애는 여성 성흥분장애(Female Sexual Interest/Arousal Disorder)와 남성 성흥분장애(Male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로 구분되었고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경우는 제외시키도록 했다(조윤희 2022, 128-129). DSM은 익히 잘 알려져 있듯, 동성애를 병리화했었고, DSM-III판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정신병리화했던 바로 그 진단 규범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역사는 커뮤니티의 역사인데, 이 역사는 대체로 1990년대 소규모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2001년 AVEN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고 논의된다. 이것이 무성애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다(무성애와 관련한 상당수의 문헌에서 대체로 이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이런 방식의 역사 쓰기가 무성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하려 한다.
무성애자 존재의 역사, 운동의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AVEN과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AVEN은 무성애 운동사, 이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무성애 온라인 커뮤니티이며, 무성애를 개념화하고 범주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토론의 장을 형성하며 무성애를 논의 가능한 장으로 위치지었다. 또한 초반의 무성애 연구는 상당수가 AVEN의 내용, AVEN의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것은 AVEN의 역할이 갖는 무게이자 의미이며, 성과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의는 무성애 운동과 연구가 진행되는 한 계속해서 언급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AVEN의 잘못이 아니라, AVEN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은 AVEN을 무성애자 존재, 무성애 운동, 무성애 연구의 시작처럼 인식하도록 하는 착오를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무성애 운동을 말할 때 AVEN부터 언급하는 것은 대체로 큰 무리가 없는 방식이다. AVEN 이전에 존재했던 활동이나 논의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AVEN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작업은 대체로 무난한 일이며, 이것이 상당히 불편할 때에도 딱히 뭐라고 문제삼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AVEN 이전을 상상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의 단체가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하고 유명세를 떨칠 때, 또한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강력해질 때, 어떻게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지의 예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AVEN의 잘못이 아니니 AVEN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AVEN을 언급하는 이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AVEN 이전의 역사는 어떻게 탐색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DSM-III판에 무성적 실천(혹은 억제된 성욕)이 등재된 그 사건에 주목하고 싶다. 어떤 증상이나 현상, 태도, 상황이 DSM에 등재된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나온 DSM-I판에 동성애가 등재되었고, 1980년 DSM-III판에 트랜스젠더퀴어가 등재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860년대 처음 주조되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갖는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최소한 1900년대 초반에 동성애와는 구분되는 명명을 가진다. 이들 범주가 DSM에 등재될 때까지, 존재와 관련한 논의는 상당히 많았고, 특히 이들을 범죄화할 것이냐 신의 저주이자 천벌로 취급할 것이냐 병리화할 것이냐는 논쟁은 나름 빈번했다. 그러다 사회적 의료화 과정에서 이들 범주는 모두 의료 진단 범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역사를 상기하면서, DSM-III판에 무성애와 관련한 범주가 추가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거나 약하게 느끼거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을 문제가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논하는 장이 꽤나 오래 펼쳐졌다는 뜻이다. 혹은 성적 욕망이 있음을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삼고자 하는 사회적 기획이 작동했고, 이 기획에서 무성적 존재를 문제삼으며 치료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상당히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논의가 축적되면서 1980년 DSM에 처음 등재되고, 1984년 다시 명칭이 수정되는 일련의 과정이 발생한다. 만약 무성적 삶을 문제 삼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이고 의료적인 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DSM에 추가되었겠는가. 혹은 무성적 실천이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행태라면 왜 DSM-I판에서부터 등재되지 않고 나중에 추가되었겠는가. 이와 관련한 한 근거라면 한국의 1970년대 후반 정신병리화와 관련한 논의에서 무성애로 해석할 ‘억제된 성욕’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흔적은 무성애자 정체화의 역사로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무성적 실천을 문제 삼고자 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읽으면 1980-1990년대 퀴어 이론이나 섹슈얼리티 이론과 관련해서 다시 독해할 수 있는 문헌이 상당히 많다. 로쓰블럼의 『보스턴 결혼』, 혹은 로쓰블럼이 2000년에 출간한 논문, 혹은 1994년에 나온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 이후 성적 지향이 변하는 경험 등을 다룬 논문 등은 모두 무성애 실천을 언급한다(이것 말고도 여럿 있다). 이들 문헌은 무성애 실천을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무성애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록해둔다. 예를 들어 아론 데버가 1994년 트랜스젠더퀴어의 성적지향과 관련해서 다룬 논문은, 의료적 조치를 경험하며 누구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변한 사람을 기록해둔다. 이 답변을 한 사람은 무성애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별도의 항목으로 기록하겠다는 연구자의 태도는, 당시 학제에서 무성애를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커뮤니티에서 혹은 친구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하도록 한다.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나의 글이 가정과 가설과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이라는 점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가설과 가정,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은 모든 새로운 논의와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역사적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표적으로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다루는 작업이 그러하다. 당연히 동성애가 가장 먼저일 것이라고 믿으면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는 언제나 가장 최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정과 가설에 근거한 추론으로 접근하면 새롭게 해석할 단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추론과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지금 이 말이, 무성애는 상상력의 추론에만 존재하는 범주라는 말이 아니라, 훨씬 많은 곳에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흔적이 충분히 독해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를 다시 질문할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병리화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병리화, 진단 범주로의 등재는 그 시기가 존재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작업을 위해 훨씬 오래된 논쟁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병리화와 관련한 논쟁은 부정적 기표, 낙인의 근거일 수도 있지만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초기 언어의 등장으로 독해할 수도 있다.
+ 이 글에는 2023년 1학기 수업 시간에 무성애를 다루며 진행한 토론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다. 이 글에 쓴 내용 자체는 나의 아이디어겠지만, 수업에 함께 하며 무성애와 관련한 아이디어와 고민과 질문을 공유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50H50 칼럼🍯)

단행본 젠더퀴어 북토크 홍보

풀무질: https://poolmoojil.com/product/detail

마이아 코베이브가 쓰고 이현이 번역하고 학이시습에서 출판한 책 [젠더퀴어]의 북토크를 합니다. 위 링크로 가시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홍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제 블로그가 홍보가 되는 곳이 아님에도 이렇게 글 올립니다. 누가 SNS 사용하시는 분이 계시면 홍보 좀… ;ㅅ; 홍보하고 제게 자랑해주시면 제가 각종 굿즈를 선물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ㅅ;
일시: 2023년 6월 23일 (금) 저녁 7시 30분
장소: 책방 풀무질
참가비: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