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은 일: 퀴어락 이사, 2013년 한국의 풍경

01
기말페이퍼를 제출하고 토요일엔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을 듣고 어젠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이모임에 잠깐 갔다가(행사엔 참여 못했지만;;) 퀴어락에 가서 책 정리를 했다. 바이모임은 준비하는 분들이 엄청 고생했음에도 참가 인원이 기대보단 적어 아쉬웠다. 며칠 전 홍대 근처에서 망원역 근처로 KSCRC(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이사하면서 퀴어락도 같이 움직였다. 아직은 퀴어락이 센터 소속이라 늘 같이 움직인다. 포장이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포장이사를 한다고 해서 짐 정리가 쉽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책장의 책은 모두 엉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사를 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무언가가 늘 있기에 정리하는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책을 비롯한 기록물이 많은 퀴어락은 이 작업이 더 오래 걸린다. 각 기록물을 등록번호대로 다시 정리해야 하고, 각 기록물의 세부 분류에 따라 새롭게 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등록할 공간과 방문자가 열람할 수 있는 곳도 새롭게 정해야 하니.. 연말이나 내년 초 정도면 다시 퀴어락에 방문해서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무리.. 아니 그 전에 센터의 기본 정리도 아직 다 안 끝났으니 활동가들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02
어제 두 개의 일정을 하는 동안 다른 곳에선 성명서가 공중에 흩날렸다. 지금의 풍경을 상징한다. 경찰이 불법을 자행하고 시민에게 최루액을 살포하고 살수차를 동원하고 있다. 지금의 풍경이다. 이런 이슈를 정교하게 말할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답답하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지금 상황을 3공의 부활, 1970년대 혹은 1980년대로의 역행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과거의 어떤 사건을 상징으로 말하는 것은 지금 시간을 살피고 지금 상황을 꼼꼼하게 살필 수 없도록 한다. 과거의 프레임으로 현재를 읽도록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과거의 부활, 시대 역행이 아니다. 그냥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013년 지금 한국에서 부정한 과정과 (아직은)합법적(이라고 얘기하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의 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가능한 일이라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은유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지금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정말 갑갑하고 무서운 정국이다. 무서우니 더 열심히 참여하고 글을 쓰고 저항해야겠지. 적어도 나는, 무서워서 저항한다.

시간아 멈추어라, 그리하여 흘러라: 글을 쓰는 시간

가급적 새로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오늘 수업과 뒷풀이로 늦게 귀가하기도 했고, 머리를 잠깐 비우고 싶기도 해서 수업 쪽글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주제로 쓴 글입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라는 순간은 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찰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궁금한데 여러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언제 내가 시간적 존재라는 걸 느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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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화. 15:00-18:00
시간아 멈추어라, 그리하여 흘러라: 글을 쓰는 시간
-루인
며칠 전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카페에 머물렀다. 비는 시간이 길었기에 책을 읽었다. 한 뼘 남짓의 광활한 페이지 어느 한 문장에서 나는 오랜 시간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고민의 실마리를 잡았다. ‘아, 그래, 이거였어.. 그렇지, 그래..’ 이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나는 그 찰나에 그대로 멈춘 느낌을 받았다.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는 그 찰나(비단 그날 뿐만 아니라) 나는 시공간에서 붕 떴다고 느꼈다. 이 찰나에 나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고 느끼고, 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상태가 지속되길 바란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에(사실 이런 순간은 매우 잦다) 나는 내가 시간을 사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 “시간아, 멈추어라!” 외마디 비명 같기도 하고, 환희의 순간 같기도 한 이 말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가장 예민하게 인식하는 찰나에서 나온다. 불가능하단 걸 알기에 간절하게 혹은 음미하듯 욕망한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언어와 글쓰기는 내 삶을 구원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이 문장은 두 가지 다른 시제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삶을 나 자신에게 설명하고자 했고 내가 처한 ‘현재’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이 문장은 현재시제로 바꿔 써도 무방하단 점에서 과거시제 형식을 취한 현재시제다). 또한 나는 설명과 해명을 요구 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 관해, 혹은 나와 결코 같지 않지만 비슷한 점은 있는 이들에 관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설명과 해명을 요구받지만 그렇다고 써야 하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글을 쓴다. 책을 읽고 고민의 실마리를 잡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글쓰기는 내 삶의 행복이다.
내게 글쓰기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 순간으로 불러들이며 ‘현재’와 과거가 조우하는 찰나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내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말하기는 뒤늦게 느끼는 분함, 때늦은 따짐을 용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며칠 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일을 여러 날 지난 뒤 갑자기 화내며 따진다면 그건 대체로 황당한 일로 이해된다. 아니, ‘그때 제대로 따질 걸 왜 그냥 넘어갔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라며 뒤늦게 분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자책할 뿐이다. 분함의 대상이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서 나로 전환되는 찰나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에선 언제나 과거 시간을 마치 현재 사건인 것처럼 기술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글쓰기는 거의 언제나 과거 사건을 기술하는 작업이며 매우 가치지향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특징은 글쓰기를 매우 중요한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 글쓰기의 특징이라고 얘기하는 비동시성은 지배규범이 비규범적 존재를 타자화하고 박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이런 특징으로 비규범적 존재, 사회적 타자는 지배 규범에 문제제기하고 ‘역사적’ 잘못을 따질 수 있다. 누군가는 이미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말해 무엇하냐고 말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이미 지난 일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자 과거로 흘러간 시간을 직면할 수 있고 또 직면하도록 하는 순간이다.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글을 쓰는 시간은 책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 시간과 함께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구원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이 쉽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날은 글이 도저히 안 풀려서 온 종일 서성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어려운 순간 조차 내겐 행복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기에, 글을 쓰면서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행복과 구원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방학이다!

01
방학이다! 오늘 수업은 있지만 그래도 어제 기말페이퍼 제출했으니 방학했다. 이히히히히히 방학이다, 방학이다, 방학이다! 크리스마스까지 한숨 돌리며 쉬고 그 다음부터 다시 열심히 글 써야지! 이히히히히히히
…어쩐지 이번 방학은 전에 없이 좋네요..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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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애슐리 X와 관련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번 기말페이퍼에서 드디어 시도했습니다. 이 글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떻게 될는지.. 흠.. 아무려나 장애-인터섹스-트랜스젠더의 상호교차성을 고민한 글이란 점에서, 제겐 무척 의미가 큽니다. 제게만 의미가 크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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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계속 미세하게 두통이네요..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