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위험성에 대하여: 수능 논란이 만드는 규범성

한국의 정치적 감각에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상당히 무서운 말 중 하나다. 비록 이 말에 조롱의 의미를 담아서 사용할 때가 더 많다고 해도, 그 말에는 위험과 두려움을 내재한다. 그 이유는 실제 능력이 없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때에도,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통해 필요한 모든 토론과 논의, 복잡한 쟁점에 대한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경험 본질론은 한국의 오래된 속담 ‘백문이 불여일견’처럼 시각에 기반해서 경험하면 곧 알 수 있다는 심각한 오만과 오해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경험은 곧 알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과 재해석이라는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된다.
이것은 페미니스트 이론가이자 역사학자들이 오랜 세월 논쟁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경험하면 곧 알 수 있다는 말은 중요한 쟁점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첫째, 가부장제 사회에서 특권적 권력을 누리는 이들에게 억압받는 이들의 폭력 피해와 같은 일은 인지 불가능한 사건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에 가부장제의 폭력적 작동 양상은 경험한 적 없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사건으로 취급되었고, 이는 억압과 피해를 계속해서 투쟁하며 입증해야 하는 사건으로 만들었다. 이럴 때, 경험은 자연스러운 것, 자명하게 모두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어떤 위치,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가 경험 인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다.
둘째, 경험한 피해나 억압이 그 자체로 자명하게 알 수 있는 사건인가를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그렇지 않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여성학 강의나 강좌를 처음 듣고 나면, 그동안 자신이 겪은 그 많은 사건이 성폭력이나 성차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다. 퀴어와 관련한 인터뷰 문헌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서는 억압과 피해가 당연한 것으로 인지했다가, 유학이나 어학연수 등을 이유로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억압과 피해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다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서사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억압과 피해의 경험 역시 자명하기보다 해석과 지식의 영역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페미니즘 정치가 경험을 자명한 것으로, 경험했으면 알 수 있는 것으로 논했던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경우 페미니즘은 경험을 자명한 사건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정치적 장을 마련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경험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경험의 의미, 경험을 인지하는 방식을 본질화하지 않는 것이며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언어를 모색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셋째, 경험이 본질화되면 유사한 범주의 속한 사람은 같은 사건에 대해 동일한 해석을 한다고 가정된다. 이것은 성희롱 피해와 같은 폭력의 피해에 모든 여성은 동일한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며, 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은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느낄 것이며, 모든 퀴어는 동일한 정체성이면 그 경험과 생애사도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미 익숙하겠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비규범적 질서를 규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한 지배 규범적 상상력이다. 폭력이나 차별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그 차별과 폭력을 덜 심각한 것으로 수용한다고 해서, 폭력이나 차별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실 이 논의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경험이 본질화되면 이성애규범성을 뒤트는 퀴어의 등장은 불가능하고 가부장제 질서를 문제 삼는 페미니스트의 등장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경험 본질론에서 이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우발적인 오류다. 교육 제도에서, 가족 제도에서 누구도 퀴어한 실천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퀴어로 고민하고, 페미니스트로 고민할 수 있겠는가? 반-퀴어 혐오 세력이 퀴어를 오류로 주장하는 이유도 인간의 경험을 동질화, 본질화하는 경향과 연관된다. 경험은 본질적이기보다 엄청나게 많은 편차와 우발성이 중첩되고 여기서 해석과 새로운 인식론이 다시 겹쳐지면서 변주와 변형이 발생하며 그렇기에 언제나 해석과 재해석의 장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구 방법 중 인터뷰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도 일정 부분 이 고민에 위치한다. 경험에 대한 해석은 동일하지 않고 그렇기에 세상을 이해할 새로운 언어는 갱신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인터뷰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경험에 대한 이런 (매우 축약된) 논의는 경험을 말할 때 언제나 가장 첨예한 논쟁의 장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 당사자주의를 알게 모르게 지지하는 발언이나 행동은 언제나 경험을 본질화하는 위험을 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유사한 경험을 할 것이라는 가정은 내부 구성원을 동질화하고, 동질화나는 내적 다양성을 논의할 수 없게 만들고, 이것은 규범성을 생산하는 위험한 촉매가 된다. 그렇기에 한 공간에, 친밀한 공동체에 있는 이들이 경험을 공유할 것이라는 믿음은, 때때로 안전함과 편안함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가장 폭력적인 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누군가가 자신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질문을 하는 순간이 매우 고맙고, 또 반성한다. 그 질문은 나 역시 익숙한 그리하여 동질적인 폭력적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대화 요청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관련한 여기까지의 논의는 사실 여기저기서 여러 번 쓴 적이 있는 기분이고, 변주되지만 대체로 유사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경험과 관련한 논의를 반복하는 이유는, 경험을 본질화하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너무도 많은 곳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마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수능과 관련한 최근 논의와 연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고민이 많았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이와 관련해서 발언을 하는데, 나까지 여기에 말을 보태야 할 것인가. 그럼에도 이 주제에 말을 보태기로 한 이유는 경험과 관련한 질문 없음이 모든 논의를 망치고, 단순히 논의를 망치는 문제를 넘어 그 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을 가장 빨리 배제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에서 모든 성인은 아동 청소년 시기를 겪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겪었기에 그 시기와 관련해서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발언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교육 문제가 겹치고, 수능이나 대학 입시와 관련한 주제가 겹치는 그 논쟁은 더욱 뜨겁고 복잡하고 지저분해진다. 많은 성인이 대학 입시 공부를 했고, 방송에 출연하는 상당수의 패널이 대학에 입학했거나, 졸업한 이들이기에 입시와 관련해서는 더욱더 가볍게 말을 얻는다. 하지만 그래서 또 안다. 요즘의 십대는 어떤 모습인지 성인은 잘 모른다는 사실을. 그래서 또 안다. 그래도 십대 시절을 경험했으니 그 시절과 관련해서 말을 보탤 수 있다. 요즘 십대가 어떤 지는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십대 시절을 겪었으니 그 시기와 관련해서 말을 보탤 수 있다는 믿음. 마찬가지로 요즘 입시 제도가 어떤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교육 과정을 거쳐서 입시를 경험했기에 입시와 관련해서는 말을 보탤 수 있다는 믿음. 이 모든 믿음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겪었으니 알 수 있다는 오만함 혹은 위험성을 내재한다.
 
오만함 혹은 위험성은 단순히 경험했으니 알고, 경험했으니 그 주제에 대해 떠들 수 있다는 믿음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논의 전개는 아동 청소년의 삶을 입시와 연결짓고, 이 연결은 입시를 준비하고 정규 학교 과정에 참여하는 청소년을 보편으로 삼는다. 더 정확하게, 이 논의에서 학교밖 청소년이나 대학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 청소년은 아예 청소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으며, 이와 관련한 논의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 중심의 학교 제도가 청소년의 삶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킬러문항으로 촉발된 모든 논쟁은 단순히 수능의 문제가 어려우냐, 쉬우냐의 문제, 모든 학생을 등급제로 나눠서 위계를 만드는 문제 뿐만 아니라 누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느냐의 문제,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반드시 같이 질문토록 한다. 이것이 누락되는 현재의 많은 논의나 발언은 한편으로 의제에 집중하는 발언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누락과 배제를 아예 사유하지 않는 문제의식이 된다.
이런 질문을 경험 논의와 연결지으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단순히 반지성주의나 오만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경험 자체가 배제와 추방, 누락의 실천 속에서 구축되는 상상력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경험은 내 삶의 일부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논쟁되지 않으면, 배제의 본질주의, 추방의 규범 생성을 전제한다. 이것의 가장 익숙한 판본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배제하며 여성을 생물학적 본질주의로 만들고자 했던 일군의 주장이다. 그러니 경험은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경험을 말할 때 그 경험이 전제하는 규범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진부하지만, 익숙하지만, 꼭 기억할 필요가 있는 쟁점이라고 믿는다. (50H50 칼럼🍯)

[부정기 퀴어 뉴스브리핑]#008

미국 CBS가 반-트랜스 법안에 따른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9살 트랜스여성 아바Ava의 경험을 설명한 뒤, 예일대학교 소아과 교수인 Meredith McNamara 박사는 요즘은 청소년의 약 10% 정도가 다양한 젠더 범주를 구분하고 있으며, 그들은 태어날 때 지정된 젠더로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맥나마라 박사는 18세 이전의 나이에 의료적 조치를 진행하는 것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심각한 고통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며, 고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CBS뉴스는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의료적 조치를 지연할 경우, 발생하는 고통과 심리적 신체적 문제와 관련한 트랜스젠더퀴어와 그 부모의 인터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퀴어 친화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은 응급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의학 뉴스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내분비학회연례회의 ENDO 2023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응급실에 가는 트랜스젠더퀴어는 비트랜스보다 더 아픈 경향이 있으며, 응급실 이용 후 입원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미시간주 앤아버 소재 미시간대학교의 Daphna Stroumsa, MD가 발표한 내용인데요, 트랜스젠더퀴어는 의료 종사자가 행할 지도 모를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심각하게 아플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습니다. 간단한 질병부터 만성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이 제때 치료되지 않기에 응급실 이용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2006년부터 2018년까지의 응급실 이용과 관련한 데이터를 분석한 이 자료는, 2006년에 0.001%가 확인된 트랜스젠더퀴어였다면, 2018년에는 0.016%가 확인된 트랜스젠더퀴어였으며, 상황의 심각성은 비트랜스에 비해 3배 정도 높았습니다.
미국의 연방판사는 젠더경합으로 진단을 받은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의 의료적 조치를 금지하는 인디애나주 법안에 대해 예비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이 없었다면 7월 1일 시행되었을 것입니다. 이 결정은 국가가 사춘기 차단제나 호르몬 투여 등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미국 지방법원 판사인 James Patrick Hanlon은 금지하는 법을 지지했습니다. 반-트랜스 법안을 금지하는 연방법원 판사의 명령은 인디애나에 거주하는 모든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에게도 적용됩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예비 후보 중 한 명인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의 건강 관리에 있어,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24라는 매체에서 파키스탄 트랜스젠더퀴어의 상황을 다룬 기사입니다. 지난 5년 간 트랜스젠더퀴어는 피키스탄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법(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으로 평가되었던 그 법)으로 인해 삶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은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하지만, 2018년 5월 트랜스젠더퀴어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을 통과시켰고, 이 법을 통해 모든 트랜스젠더퀴어는 동료 시민과 동등한 법적 기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IQNB에서도 소개드렸듯] 2023.05.19.에 연방 샤리아트 법원에 의해 이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지난 해 파키스탄 영화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조이랜드Joyland”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퀴어 무용수와 사람에 빠진 유부남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강경파 이슬람 정당의 압력으로 정부의 검열을 받았지만 결국 작년 11월 16일 개봉이 승인되었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영화관 중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선택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문자 기사는 여기까지라… ;ㅅ; 영상 기사라 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포브스는 직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용하기 위한 전략을 다룬 기사를 냈습니다. 2022년 기업 평등 지수(Corporate Equality Index)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97%가 트랜스젠더퀴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으며, 이는 2002년 5%에 비하면 증가한 것입니다. 또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한 건강 보험을 제공하는 고용주는 2009년에 비해 22배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반-트랜스 법안은 기업의 퀴어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증대시키고 있으며, 실제 트랜스젠더퀴어 청소년의 절반 정도가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합니다. 민간 기업의 고용주가 주에서 제정한 법을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트랜스젠더퀴어 등 퀴어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 취함으로써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기업은 퀴어 청소년을 위한 세계 최대의 자살 예방 및 위기 개입 조직인 The Trevor Project와 협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트랜스젠더퀴어의 공간 이용에 대한 포용적 정책을 채택하고, 인칭대명사나 다양한 퀴어 정체성과 관련한 교육과 인식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성 교육을 개발하고,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호주의 호주 스포츠 위원회(Australian Sports Commission, ASC)는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함시키기 위한 지침을 발표하면서, 스포츠 관리 기관이 포용 정신을 고취하고 호주의 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 세계육상연맹, 세계수영연맹, 세계럭비연맹 등은 트랜스여성의 여성 스포츠 경기 참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지침을 위반하는 것인데요. 호주 스포츠 위원회가 새롭게 발표한 지침은 세계연맹의 방침과 충돌하지만, 세계연맹의 지침을 따르면 호주의 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호주 스포츠 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 부문에서 공정하고 의미 있는 경쟁 유지
-가능한 경우 선수가 선호하는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기회 제공
-성평등을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고성능(high performance) 스포츠의 여성 부문에서 트랜스여성이 경쟁하려면 다음을 권장합니다.
-선수는 국가 대표팀 선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관리 기구와 국제 관리 기구 간의 차이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스포츠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로 선수를 제외시킬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측정, 호르몬 억제 및 문제 제기를 위한 명확한 방법을 포함하도록 정의된 적격성 및 공정성 요소(트랜스젠더 선수 및 포함 또는 배제의 영향을 받는 다른 선수 모두)
그리고 이런 조건으로 인해 배제된 선수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뭔가 애매하네요…]
네이처가 트랜스젠더퀴어 과학자의 이야기를 기사화했습니다. 트랜스여성 지구화학자인 리사Lisa 교수는 2002년 대학에서 커밍아웃을 고민했고 동료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자 학과장은 모든 학생 및 교수, 직원 등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길 제안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트랜스젠더퀴어를 공공연히 조롱했고, 많은 트랜스 연구자가 박사 학위가 있음에도 교수로 취직하지 못하거나,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이유로 교수 임용이 취소되었습니다. 리사는 당황했지만 결국 학과장의 제안대로 했고, 모든 사람이 이를 아는 것은 리사의 생활에 중요했습니다. 현재 60세인 리사는 현재 매사추세츠의 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극 지의류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식물학자 엘케 맥켄지는 60세 나이인 1971년 트랜스젠더퀴어로 커밍아웃했습니다. 선구적인 컴퓨터 엔지니어 린 콘웨이는 성전환 뒤 1968년 IBM에서 해고되었습니다(2020년 IBM은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한국에서 자서전이 번역된 벤 바레스의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우주학 박사 과정생인 베스 굴드Beth Gould는 세 명의 논바이너리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 그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네이처는 트랜스젠더퀴어를 범죄로 규정한 국가의 과학자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로 살아가는 다른 국가의 과학자가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에서 열리는 중요 학술대회나 행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은, 한 국가의 위협이 지식 교류와 정보 공유, 새로운 배움의 기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법적 안정이 보장되었다고 해도, 브라질은 트랜스젠더퀴어 살해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특히 비백인이라면 이런 차별과 억압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 기사는 과학 커뮤니티 내부, 사회적 조건, 법의 변화 등을 같이 다루고 있어서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보셔요.]
당노병이  있는 트랜스젠더퀴어 관련 기사입니다. 기사 속 주인공인 클레어 힝클Claire Hinkle는 1형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10년을 사귄 아내에게(아내도 같은 당뇨병 환자입니다) 트랜스젠더퀴어로 커밍아웃을 햇습니다. 그들은 Camp Sweeney라는 당뇨병 캠프에서 만났습니다. 둘은 13년을 함께 했고 두 딸이 있기에 커밍아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가족과 아내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호르몬 투여를 시작하며 당뇨병은 롤러코스트를 타듯 변했고, 인슐린 수치는 HRT를 시작한 첫 8개월 동안 거의 2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생 호르몬을 투여해야 하고, 또한 당뇨병도 관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의료 전문가와 적극 상담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족의 지원이 없거나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다면 Ingersoll Gender Center와 같은 온라인 지원팀도 있다고 합니다. 관련 고민을 하시는 분은 이 기사를 참고해보시고, 살림의원이나 무지개의원 같은 곳에서 상담하면 좋을 듯합니다.
영국 총리 리시 수낙이 트랜스젠더퀴어를 조롱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leak) 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퀴어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팁을 담은 글입니다. 한국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있고 단행본 작업 등 자료가 많지만, 겸사겸사 참고하시면 됩니다. 짦은 글이라 간단합니다. 다만 저자는 현재 미국의 반-트랜스 법안이 제정된 주에서 거주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불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트랜스 법안이 제정되면서 이와 관련한 트랜스젠더퀴어 아동 청소년 당사자 및 양육자의 기사가 꾸준히 나오고 있네요.

(무)성애의 병리화를 통해 역사를 다시 추정하기

존재의 역사, 논의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새로운 퀴어 논의를 생산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언제나 매우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퀴어 이론의 역사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퀴어 이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은 그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위치, 이론적 배경 등을 말해준다. 어떤 이들은 게일 루빈의 1984년 논문 “성을 사유하기”를 그 출발점으로 삼으며, 또 어떤 이들은 1980년대 에이즈 활동을 언급한다. 혹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의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 프로이트나 데리다, 라깡을 불러오기도 한다. 혹은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나 페미니스트의 1970-80년대 이론적 성취를 그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이 모든 기원은 퀴어 이론의 역사가 그 자체로 해석과 해석이 경합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의미하며, 이러한 경합이 역사적 기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퀴어 이론의 역사는 이미 다양한 해석 경합 속에서 구축되는 과정에 있다.
그럼 무성애 이론의 역사, 존재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무성애와 관련한 많은 논의를 충분히 읽지 못했고 그래서 이와 관련한 공부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이미 무성애를 전공 삼아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있으니 나의 이 글은 부끄러운 메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공유라는 측면일 것이다.
무성애의 역사를 다루는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병리화의 역사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다. 병리화의 역사를 요약하면, 1980년 DSM-III판에 억제된 성욕(Inhibited Sexual Desire)이라는 진단명으로 등재되었고, 1984년에는 성욕감퇴장애(Hypoactive Sexual Desire)으로 재명명 되었다. 그러다 2013년 무성애 정치를 수용하며 DSM은 성욕감퇴장애는 여성 성흥분장애(Female Sexual Interest/Arousal Disorder)와 남성 성흥분장애(Male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로 구분되었고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경우는 제외시키도록 했다(조윤희 2022, 128-129). DSM은 익히 잘 알려져 있듯, 동성애를 병리화했었고, DSM-III판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정신병리화했던 바로 그 진단 규범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역사는 커뮤니티의 역사인데, 이 역사는 대체로 1990년대 소규모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2001년 AVEN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고 논의된다. 이것이 무성애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다(무성애와 관련한 상당수의 문헌에서 대체로 이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이런 방식의 역사 쓰기가 무성애의 역사를 쓰는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하려 한다.
무성애자 존재의 역사, 운동의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AVEN과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AVEN은 무성애 운동사, 이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무성애 온라인 커뮤니티이며, 무성애를 개념화하고 범주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토론의 장을 형성하며 무성애를 논의 가능한 장으로 위치지었다. 또한 초반의 무성애 연구는 상당수가 AVEN의 내용, AVEN의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것은 AVEN의 역할이 갖는 무게이자 의미이며, 성과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의는 무성애 운동과 연구가 진행되는 한 계속해서 언급되고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AVEN의 잘못이 아니라, AVEN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은 AVEN을 무성애자 존재, 무성애 운동, 무성애 연구의 시작처럼 인식하도록 하는 착오를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무성애 운동을 말할 때 AVEN부터 언급하는 것은 대체로 큰 무리가 없는 방식이다. AVEN 이전에 존재했던 활동이나 논의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AVEN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작업은 대체로 무난한 일이며, 이것이 상당히 불편할 때에도 딱히 뭐라고 문제삼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AVEN 이전을 상상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의 단체가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하고 유명세를 떨칠 때, 또한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강력해질 때, 어떻게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지의 예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AVEN의 잘못이 아니니 AVEN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AVEN을 언급하는 이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AVEN 이전의 역사는 어떻게 탐색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DSM-III판에 무성적 실천(혹은 억제된 성욕)이 등재된 그 사건에 주목하고 싶다. 어떤 증상이나 현상, 태도, 상황이 DSM에 등재된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나온 DSM-I판에 동성애가 등재되었고, 1980년 DSM-III판에 트랜스젠더퀴어가 등재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860년대 처음 주조되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갖는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최소한 1900년대 초반에 동성애와는 구분되는 명명을 가진다. 이들 범주가 DSM에 등재될 때까지, 존재와 관련한 논의는 상당히 많았고, 특히 이들을 범죄화할 것이냐 신의 저주이자 천벌로 취급할 것이냐 병리화할 것이냐는 논쟁은 나름 빈번했다. 그러다 사회적 의료화 과정에서 이들 범주는 모두 의료 진단 범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역사를 상기하면서, DSM-III판에 무성애와 관련한 범주가 추가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거나 약하게 느끼거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을 문제가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논하는 장이 꽤나 오래 펼쳐졌다는 뜻이다. 혹은 성적 욕망이 있음을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삼고자 하는 사회적 기획이 작동했고, 이 기획에서 무성적 존재를 문제삼으며 치료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상당히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논의가 축적되면서 1980년 DSM에 처음 등재되고, 1984년 다시 명칭이 수정되는 일련의 과정이 발생한다. 만약 무성적 삶을 문제 삼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이고 의료적인 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DSM에 추가되었겠는가. 혹은 무성적 실천이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행태라면 왜 DSM-I판에서부터 등재되지 않고 나중에 추가되었겠는가. 이와 관련한 한 근거라면 한국의 1970년대 후반 정신병리화와 관련한 논의에서 무성애로 해석할 ‘억제된 성욕’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흔적은 무성애자 정체화의 역사로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무성적 실천을 문제 삼고자 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이런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읽으면 1980-1990년대 퀴어 이론이나 섹슈얼리티 이론과 관련해서 다시 독해할 수 있는 문헌이 상당히 많다. 로쓰블럼의 『보스턴 결혼』, 혹은 로쓰블럼이 2000년에 출간한 논문, 혹은 1994년에 나온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조치 이후 성적 지향이 변하는 경험 등을 다룬 논문 등은 모두 무성애 실천을 언급한다(이것 말고도 여럿 있다). 이들 문헌은 무성애 실천을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무성애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록해둔다. 예를 들어 아론 데버가 1994년 트랜스젠더퀴어의 성적지향과 관련해서 다룬 논문은, 의료적 조치를 경험하며 누구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변한 사람을 기록해둔다. 이 답변을 한 사람은 무성애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별도의 항목으로 기록하겠다는 연구자의 태도는, 당시 학제에서 무성애를 본격적으로 논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커뮤니티에서 혹은 친구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하도록 한다.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나의 글이 가정과 가설과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이라는 점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가설과 가정, 상상력에 근거한 추론은 모든 새로운 논의와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역사적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표적으로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다루는 작업이 그러하다. 당연히 동성애가 가장 먼저일 것이라고 믿으면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는 언제나 가장 최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정과 가설에 근거한 추론으로 접근하면 새롭게 해석할 단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추론과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지금 이 말이, 무성애는 상상력의 추론에만 존재하는 범주라는 말이 아니라, 훨씬 많은 곳에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흔적이 충분히 독해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를 다시 질문할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병리화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병리화, 진단 범주로의 등재는 그 시기가 존재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작업을 위해 훨씬 오래된 논쟁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병리화와 관련한 논쟁은 부정적 기표, 낙인의 근거일 수도 있지만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초기 언어의 등장으로 독해할 수도 있다.
+ 이 글에는 2023년 1학기 수업 시간에 무성애를 다루며 진행한 토론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다. 이 글에 쓴 내용 자체는 나의 아이디어겠지만, 수업에 함께 하며 무성애와 관련한 아이디어와 고민과 질문을 공유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50H50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