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젠더

이번 학기에 듣는 과목 중 하나는 시간과 젠더의 관계를 주제 삼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수업의 쪽글입니다. 논문 두 개를 읽고 대충 요약 정리한 것이랄까요..;; 뭐, 그렇습니다.
2013.09.24.화. 15:00- ‘여성의 시간, 젠더화된 시간’
-루인
시간은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경험인가? 아니 시간은 경험 혹은 인식의 대상일 수 있는가? 시간이 경험이라면, 조안 스콧이 지적했듯, 시간은 자연스럽고 투명한 무언가가 아니라 사후 해석을 통해 재구성되는 사건이다. 시간이 해석을 통해 구성되는 사건이라면 시간은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 없다. 아울러 시간이 인식의 대상이라면 린다 알코프와 니키 설리반 등이 지적했듯, 이것은 곧 해석과 경합의 영역이다. 만약 시간이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어떻게 경험이자 인식의 대상일 수 있겠는가? 또한 만약 시간이 경험도 아니고 인식의 대상도 아니라면 나는 시간을 어떻게 지각하거나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지각하는 것이 시간인가란 질문은 차후로 남겨두자.)
시간이 경험이자 인식의 대상이라면, 모든 사람이 시간을 동일하게 의미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시간의 속도, 시간의 의미 등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포만과 펠스키의 글은 시간의 젠더화된 의미를 탐문한다.
여성의 시간은 남성의 시간과 다른가, 혹은 여성적 시간은 있는가란 질문에 포만은 긍정적이다. 남성 지배적 세계에서 여성은 이방인이자 집이 없다는 표현처럼,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된 시간 체계에서 여성은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식으로 시간을 겪는다. 남성이 성취 중심에 평가 단위가 분명한 시간을 겪는다면 여성은 분절된 평가 단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겪는다. 남성의 시간이 우울과 죽음을 향한다면 여성의 시간은 미래와 희망을 향하고 출생으로 얘기된다. 그리하여 포만에게 여성의 시간은 남성의 시간과 다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간 개념을 논하는 펠스키는 포만과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비록 여성이 남성과는 다른 시간을 겪는다고 해도 그것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별개의 경험은 아니란 것이 펠스키의 지적이다. 남성은 직선의 시간을, 여성은 나선형 시간을 겪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성도 여성도 모두 직선의 시간과 나선형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동시에 겪고 있다. 즉 누구는 특정 시간을, 다른 누구는 또 다른 특정 시간을 겪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이질적 시간을 동시에 하지만 마치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겪는다. 그리하여 비록 이원젠더화된 시간 경험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이 각 젠더에게 대당으로 할당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포만과 펠스키의 논의는 시간 경험과 시간 인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일하지도 않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특정 해석체계가 유일하게 옳은 해석 방법이란 뜻이 아니다. ‘철지난’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석하는 것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란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삶과 시간 경험을 다양하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체계가 필요하단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 삶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매일매일의 삶, 알바를 위해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의 삶은 이 시대 많은 사람과 유사하며 불혹과 질풍노도를 같이 겪을 가능성은 상당한 차이를 야기한다. 차이와 공통점을 동시에 겪는데 ‘직선 시간 아니면 선형적 시간’이란 식의 어느 한가지 방법론으로 삶을 해석할 수는 없다.

영화, 역사를 그리다: 트랜스내셔널 한국의 퀴어 영화와 그 맥락

재밌는 행사가 있어 홍보합니다…
대학교에 있는 연구소에서 퀴어-영화 관련 행사를 주최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오랜 만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암튼, 퀴어-역사-영화를 연결한 내용이니 흥미로울 거예요… 흥미롭겠죠? 끄응..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사업단에서는 <영화, 역사를 그리다: 트랜스내셔널 한국의 퀴어 영화와 그 맥락>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상영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이 행사는 1990년대 이후 지난 25년 간, 제한적이지만 한국사회의 공공영역에 드러나기 시작한 “퀴어”라는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젠더 다양성의 모습을 역사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다학제적 시도입니다. 이에 한국 퀴어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던 학자, 활동가, 영화가, 예술가들이 모여, 역사가 그 동안  간과해왔던 한국 퀴어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조망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예술과 학술의 경계를 허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역사를 쓰는 하나의 방식임을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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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를 그리다: 트랜스내셔널 한국의 퀴어 영화와 그 맥락
Film Making as History Making: Transnational Korea in Queer Contexts
일시: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오전10시-오후 6시)
장소g: 한양대학교 박물관 2층 세미나실
주최: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사업단
(문의: 02-2220-0545)
후원: 한국연구재단
 
 
I.   퀴어의 삶 드러내기, 그 트랜스내셔널 계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From Subjectlessness to Subjecthood: A Transnational History of Queer Visibility in Contemporary Korea, 1990s-Present
10:00-10:10   영화로 퀴어 역사를 그린다는 것
                          토드 헨리 (University of California, San-Diego/한양대/이화여대)
10:10-10:50   강연: 한국 퀴어 커뮤니티의 역사  한채윤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10:50-11:30   토론 및 질의 응답   사회: 정연보 (한양대)
11:30-1:00     점심
 
II.   남자 없는 세상: 1950-60년대 여성 국극
A World without Men: Yosŏng Kukgŭk of the 1950s and 1960s
1:00-2:30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상영 (2011/79m; 김혜정 감독)
2:30-3:30     감독과의 대화 및 토론   사회: 박정미 (한양대)
                       김혜정 감독
                       토론: 지혜 (연세대), 김청강 (한양대)
3:30-3:50      휴식
III.   가부장제의 그늘: 1970-80년대 퀴어의 삶
The Margins of Hetero-Patriarchy: Queer Life during the 1970s and 1980s
3:50-4:40      영화 “이발소 이씨” 상영 (2000/21m; 권종관 감독)
                        영화  “올드랭 사인” 상영 (2007/26m; 소준문 감독)
4:40-6:00      감독과의 대화 및 토론   사회: 토드 헨리 (UCSD/한양대/이화여대)
                        권종관 감독, 소준문 감독
                        토론: 루인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소), 김경태 (중앙대)
6:00-8:00      와인파티

묘한 이해: 영어

대학원 수업을 듣다보면 영어 논문이나 단행본을 읽는 일이 많다. 이때 읽을 분량을 정해주는 선생님은, 이번엔 영어가 쉬우니까 좀 많이 읽어도 괜찮겠지…라며 분량을 좀 많이 내주곤 한다. 하지만 영어가 쉽건 어렵건 이건 중요하지 않다. 영어라는 게 중요하다. 이미 영어인 이상 쉽건 어렵건 별 차이가 없다. 그건 그냥 영어다. ㅠㅠㅠ

물론 읽기 수월한 영어가 있고, 읽기 어려운 영어가 있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어차피 영어일 뿐이다. 쉬운 영어라고 부담이 덜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어제 밤 이런 생각을 하며 청소하다가 문득…
비이성애적 실천은 매우 다양해서 단순히 몇 가지 나열하는 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범주 용어를 사용하고 그 용어의 해석과 용례에서 상당한 논쟁이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관련 있는 사람이나 신경 쓸 법한 일. 단적으로 이성애자에겐 세밀한 구분 다 필요없고 그냥 동성애자다. 이성애자가 아니면 그냥 모두 동성애자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냥 동성애자다.
쉽건 어렵건 상관없이 영어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성애자가 아니면 그냥 다 동성애자라고 이해해는 태도를 어쩐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이것이 납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태도가 적절하거나 용납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아.. 그렇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려나 중요한 건 섬세하게 사유해야 하는 삶을 대충 얼렁뚱땅 이해하는 걸 납득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영어는 쉬우나 어려우나 그냥 영어란 점이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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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시절, 엄마 님이 취직하려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학원비를 주겠다고 했었다. 그때 난 호기롭게 사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호기롭게 학원비를 거절했다. 내가 잘못했다. 일단 받는 건데.. 학원비 줄 때 영어 좀 배워두는 건데..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