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세미나

다음주에 (반드시 학과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학과 사람 뿐일 거라)학과 사람과 함께 하는 글쓰기 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학과 사람들과 무엇을 나눌까 고민하다가(여기엔 많은 다른 배경이 있지만, 훈훈한 에피소드로 조작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글쓰기와 자료찾기’를 키워드로 2시간 가량의 세미나 자리를 열겠다고 했다. 이 세미나를 기획했을 때 내가 떠올린 집단은 이제 1학기이거나 2학기인 분들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어떻게 기말페이퍼/논문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한 팁을 제공하는 자리랄까. 딱 이 정도 상상으로 자리를 기획했는데.. 논문학기생이 더 좋아한다. 지금 논문 쓰는 분들이 더 열렬하게 반응한다. 흠…
하지만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닌데, 글쓰기 문제에서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사람은 학위논문을 쓰면서 헤매는 사람이다. 나는 글쓰기의 어려움이, 이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가장 크게 겪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더 크게 겪는 문제란 걸 잊고 있었다. 즉 글쓰기가 지금 당면한 문제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란 걸, 나는 왜 깜빡했을까…
단지 다음주에 할 글쓰기와 자료찾기 세미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구나,라고 느낀 건 지난 9월이었다. 학과에 글쓰기 수업이 개설되었는데(결국은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사유하기 수업이지만) 수업 첫날 29명이 들어왔다. 대학원 수업에서 29명이면, 수업이 불가능한 인원. 이때 정말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어려워한다는 걸 체감했달까. 그러고 보면 대학원에 입학하면 글쓰기와 강의하기는 거의 필수인데도, 이를 가르쳐주는 수업은 거의 없다. 글쓰기와 강의는 그냥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느낌이다. 혹은 글쓰기 수업을 통해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고 싶은데 인식론만 말한다거나(인식론 없이 글쓰기가 불가능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정말 기술적인 부분에서 막힐 때가 있다)…
그나저나 내가 할 얘기는 논문 쓰기의 기술적인 부분이라, 사람들의 기대가 어떤지에 따라 많이 실망하겠지.. 물론 출판하면서 야매로 배운 기술이나 노하우를 약간 공유하긴 하겠지만 이건 워낙 개인차가 심해서 마냥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더 큰 문제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실제 내가 공유하는 정보가 좋은 정보는 아닐 수 있다.
암튼 완전 비공개 세미나는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알아서 정보를 찾아서 오셔요.. 설마 쫓아내겠어요.. ^^; 그럼에도 학과 사람을 우선 대상으로 하기에 자리가 부족하다면 못 들으실 수도.. ^^;;;;;;
+그리고 여러 번 강조하지만, 내가 글쓰기를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야매로 알려드립니다.

트랜스젠더 인식론을 위하여


트랜스젠더를 설명의 대상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트랜스젠더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론의 토대다. 또한 트랜스젠더는 인식론의 토대여야 한다. 어떤 얘기를 할 때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겪는다란 얘기도 중요하지만,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기존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니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이것은 나의 강렬한 믿음이다. 그러니 트랜스젠더 인식론을 써야겠다.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얘기하고 글을 써야한다.


잡담

내년엔 트랜스젠더 관련 번역서를 여러 권 접할 수 있을까? 현재 기획하고 있는 것, 이미 계약이 끝나서 출판이 확실시 된 것만 2~3권이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집중하거나 트랜스/젠더/퀴어 이슈를 논하는 책이 한 해에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이 있을까 싶다. 단행본 출판이란 맥락에서, 내년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시기겠지..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를 읽었는데.. (수업 시간을 계기로 다시 읽은 것) 돌이켜 고민하자면, 내가 소위 ‘이 바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지금까지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은 단지 이론의 쾌락이 아니다. 내가 받은 과분하지만 충만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순히 이론만의 쾌락이라면, 이렇게 지내진 못 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사랑이 혁명이다. 많은 사람이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를 읽으면 좋겠다.
오늘 강의가 있는데…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다.. 퀴어 동아리에서 기획한 강연(?)인데 퀴어 이슈를 잘 모르는 분들도 들을 수 있는 내용을 해야 한달까.. 흠… 어느 지점을 접점으로 만들지가 관건인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는 과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