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어쩐지 할 말이 없어 이것저것 중얼거립니다.

어쩐지 할 말이 없는데 무엇을 중얼거릴 수 있는 건지.. 하하 ;;;
여름은 끝나 가지만 많이 지치고 기운도 많이 빠진 상황입니다. 몸이 쉽게 지쳐요. 농담으로 홍삼이라도 사먹어야 하나,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나라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유난히 기운이 빠지고 기력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청탁 받은 원고를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22일 마감이면 벌써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아이디어도 없어요.. 어쩌자는 거지… ;ㅅ;
보통은 뭔가를 쓰겠다고 결정하고 확실한 소재가 있으면 시작은 할 수 있는데 시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떡하지…
22일 마감인 원고를 벌써 시작하느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중간에 추석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며칠 뒤 또 다른 마감이 있거든요. 그러고 나면 마감의 연속! 짜잔! ㅠㅠㅠ
암튼 이번 하반기도 무사히 보내야죠. 아무렴요.. 무사히 보내야죠.
이 정도면 트위터를 해도 괜찮겠어요.. 하하. 농담입니다. 트위터는 다시 할 의사가 없습니다. 그쪽 세계는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오묘하고 복잡한 곳이에요. 전 그냥 조용한 구글플러스에서 놀겠어요.
구글플러스는 정말 괜찮은 SNS인데 한국에선 거의 안 쓰네요.. SNS로 귀찮으면 사진앱으로도 괜찮습니다. 끝내주는 사진앱이죠.
그럼 이런 쓸데 없는 일기도 이제 마무리를…해야겠죠? 이렇게 또 하루 바이트를 낭비하네요.. 끄응..
하지만 인터넷 세계에선 넘치는 게 바이트니까요. 바이트 낭비가 인터넷을 구축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외국의 신문이나 학술지에 실린 글을 검색하는 건 참 쉬워요. 며칠 전엔 1970년대 바이 관련 논문, 트랜스젠더 관련 글을 여럿 찾았습니다. 그냥 웹을 대충 뒤적거리면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한국 자료를 찾기는 참 어려워요.. 검색사이트가 아니라 특정 홈페이지를 찾아가야 하고 때론 인터넷익스플로러만 지원합니다. 한국은 자료 구축은 참 잘하고 있는데 그걸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은 정말 부실해요. 사람을 참 번거롭게 하는 시스템은 어째서인지 의문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도 잉여롭게 보내야요.. 히히히.

LGBT 단체는 여성단체와 연대하는가?

폭력 단체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실제 염두에 둔 어떤 정황 판단이 있었다. 차마 쓸 수는 없지만.. 쓸 수 없는 건 자기 검열이라기보다 아직은 짐작이라 선뜻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어떤 질문을 공유하자면, 제목과 같다. LGBT 단체 혹은 한국의 동성애 단체는 여성운동/여성주의 단체와 연대하는가? LGBT 혹은 동성애 단체는 여성주의단체에 연대를 종용하기도 한다. 그럼 여성주의단체의 의제나 활동에 동성애 혹은 LGBT 단체는 연대를 종용하는 만큼 참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이게 고민이다. 각 단체의 활동은 페미니즘과 퀴어정치, 이 두 정치학을 주요 정치적 밑절미 삼아 활동하고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은 바로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두 정치학의 자장에서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찔림: 복잡다단한 트랜스젠더의 삶을 복잡하게 사유할 수 있는가

내가 쓰는 트랜스젠더는 어떤 트랜스젠더인가? 의료적 조치 경험/선택 여부만으로도 트랜스젠더의 삶은 상당히 다르고 복잡한 양상을 띈다. 하지만 의료 경험만으로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건, 출신지역이나 계급, 장애 등으로 겪는 지점을 누락하기 쉽다. 흔히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의료 조치에 모든 트랜스젠더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상당한 고비용이기에 의료 조치에 참여하기 위해 상당한 다짐을 해야 한다(단순히 의료 조치에 참여해서가 아니라 의료 조치가 야기하는 경제적 부담으로). 의료 조치를 시작한 이후에도 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여타의 삶을 일정 정도 유예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수를 제외하면 의료적 조치를 한다는 건 많은 경우 계급 문제다. 이것은 트랜스젠더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로 언급하고 끝날 부분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트랜스젠더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트랜스젠더의 계급 이슈를 말한다는 건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계급이란 단순히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익힌 습관, 몸의 관습이기도 하니까. 이를 테면 나는 식당에서 친절한 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는데 내가 받을 서비스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부당한 서비스를 받으면 분개하지만(내가 이 모양 이꼴이라고 무시하냐!!) 그럼에도 항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성격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온 원가족의 계급적 분위기기도 하다. 혹은 나는 어지간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진통제로 해결하는데, 병원은 내가 가기에 부담스러운 곳이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의 경우, 건강하단 결과가 나오면 괜한 비용이 아깝고, 건강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차피 치료비도 없는데 괜한 걱정만 생겨서 아깝다. 계급은 삶의 양식, 삶의 선택에 있어 많은 지점에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에게 계급은 어떤 의미일까? 계급은 예시일 뿐이다. 미등록/이주, 장애 등은 트랜스젠더 경험에 복잡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이 복잡함을 어떻게 복잡하게 만들 것인가? 여기서 나는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다. 아는 것이 없고 고민이 없어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 트랜스젠더만 말할 뿐이다. 물론 많은 경우엔 내 이야기만 팔고 있지만 추상적 트랜스젠더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할 일이다. 반성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