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라, 수술은 그 다음이다

얼마전 KSCRC와 변날에서 주최한 2013 LGBT 상담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로 김비 님이 나왔다. 무척 반가웠고 좋았다. 김비 님의 강의를 또 듣는구나… 헤헤. 그리고 그날 꽤나 논쟁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와닿는 얘길 하셨다.

일단 살라, 성전환수술은 그 다음이다.
이 말은 오해받기 딱 좋은 내용이긴 하다. 성전환 수술은 너무 위험하니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며, 트랜스젠더를 다소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할 법한 내용과 닮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한 맥락에선 그런 내용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든 살아 남고 또 삶을 지속하는 것,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타인과 삶을 공유할 수 있기를 간S절히 바라는 태도로 읽었다. 가끔씩 트랜스젠더의 자살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만 같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을 버티며 나이들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 나는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나쁘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은 자로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안타깝다. 트랜스젠더 노년을 같이 모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일단 살라,라는 말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일단 살고 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중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트랜스젠더들이 그만 죽고, 어떻게든 살면 좋겠다.

타자/퀴어의 역사쓰기

지난 주 수업 때 제출한 쪽글입니다. 매주 제출이라 매주 쓰고 있는데 일주일에 하나 씩 공개할지 꿍쳐 뒀다가 새로 블로깅하기 귀찮을 때 할까 고민이지만요.. 으하하. ;;;
암튼.. 고민이 얕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저도 수긍할 수밖에 없고요. 상상력이 얼어버려서 고민을 밀고 나가지 못 했거든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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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화. 15:00-
타자/퀴어의 역사쓰기
-루인
타자가 처해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337)라는 건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336)는 뜻이기도 할 터다. 타자의 역사, 야만의 기록은 지배 규범적 역사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배 규범적 역사는 타자(의 역사)를 억압하며, 그럼에도 타자를 그 자신의 토대 삼으며 구성한 시간이다. 문화의 역사는 지배자의 감성으로 구성한 역사이자(336) 타자를 예외 취급하며 구성한 시간이다. 그러니 타자는 별개의 존재 같지만 이 사회 질서에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는 이 사회의 규범을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지만 마치 예외처럼 취급되어 별도로 인지될 뿐이다.
소위 여성이나 퀴어에겐 종종 “예전에 비하면 지금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는 말을 한다. 예전에 비하면 좋아졌다는 식의 언설은 진화론적, 단선적 시간, 그리하여 열악한 과거, 현재와 단절된 과거를 상정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소위 얘기하는 남성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남성은 늘 예전보다 지금이 ‘열악’하거나(“예전엔 남편의 말이 하늘 같..”) 남성의 현재는 과거의 남성이 아니라 다른 남성의 현재와 비교된다. 소위 여성이나 퀴어의 단절된 과거가 현재보다 열악하다고 가정하지만, 그때가 정말 지금보다 열악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미 기록이/역사가 없(다고 여기)는 존재기에 현재의 재현이 전부다. 그 과거는 구체성 없이 막연한 형태로 존재한다. 혹은 지배적 역사/문화의 기록에 누락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리하여 그저 지금 이 순간 뿐이라서 “인용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존재…
물론 타자도 ‘역사’가 있다. 퀴어가 늘 듣는 질문 “넌 언제부터 네가 퀴어란 걸 깨달았니?”는 퀴어의 기원, 개인의 역사를 묻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비-퀴어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질문의 대답은 대체로 어떤 규정에 따라 평가받는다. 규정된 서사로 구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 자체를 의심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퀴어에게 혹은 타자에게 부여된 역사는 동적이고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것, 박제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지금시간의 구성 대상이고(345), “역사적 인식 주체가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343)이라면 역사는 타자의 맥락에서 재구성되어야 하거나 재구성될 수 있다. 비록 현재의 지배 규범으로 유통되는 역사가 지배자의 통치를 돕고 지지하는 역사, 지배하는 자에게 감정이입해서 기술된 역사라지만, 이 역사는 또한 타자의 역사란 점에서 그러하다(336). 그리하여 타자/퀴어의 역사를 인용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면, 퀴어/타자의 역사를 “성좌구조”(349)에 배치할 수 있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인다. 1980년대 출판된 책을 지나 1970년대 출판된 책의 목차를 훑는다. 없고, 없고, 없다. 없는 와중에 드물게 있다. 드물게 불쑥 튀어나와 지금의 나와 조우한다. 1970년대에 출판된 퀴어 관련 기록이 2013년의 나와 불쑥 조우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 과거가 지금 이 찰나에 ‘현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옛시간과 만난다.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시간에 존재하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기록은 지금 이 순간 다시 숨쉰다. 물론 이 기록은 단절 없이 지금과 매끈하게  접합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기록은 타자의 역사, 혹은 역사를 ‘인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낸다. ‘구원’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역사의 흔적은 기존의 역사를 다시 인식하도록 하고 다시 쓰도록 한다. 그 한두 구절 속에 역사의 새로운 국면이 움트고 있다. 어쩌면 나는 역사에서, 과거에서 구원 혹은 희망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상상하기: 영화 <이발소 이씨>를 중심으로

지난 금요일에 진행한 행사의 토론문 writing 메뉴에 올렸습니다~ 뭐, 굳이 이곳에까지 올릴 것은 없지만, 오늘자 블로깅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삼아 적어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요. 흐흐흐.
내용의 절반은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흔적을 개괄하고 나머지 절반은 영화와 관련한 얘기입니다만.. 영화 관련 얘기에서도 기록물 관련 얘기가 나오긴 합니다. 하하. ;;;
이 토론문은 앞으로 해야 할 역사쓰기의 메모 정도가 되겠지요.. 그냥 가볍게 정리하는 기분으로 적었습니다. 1980년대 혹은 1970-80년대 역사를 다시! 본격 쓰려면 훨씬 많은 공력과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니까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아래엔 맛보기를 잠시…
1980년대는 퀴어 역사에서, 혹은 젠더-섹슈얼리티 역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시기다. 박정희가 죽은 뒤 ‘서울의 봄’이 왔(다고 하)고, 이후 소위 3S(screen, sex, sports) 정책으로 섹슈얼리티의 표현에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또한 젠더-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양상을 가시화함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구성하는데 일조했다. 물론 ‘퀴어’의 부상이 1980년대에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이태원 등지에서 트랜스젠더 업소 및 공동체, 그리고 레즈비언/바이여성과 게이/바이남성이 자주 가는 공간이 형성되면서 그 시기 퀴어는 소위 하위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많은 트랜스젠더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모였고 1976년엔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진 기록이 남아 있는 트랜스젠더/‘게이’ 업소가 문을 열었다. 물론 다른 기록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부터 트랜스젠더만 일하는 업소(정확한 업소명은 더 발굴해야 한다)가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1971년 즈음이면 비이성애를 다룬 글이, 번역서지만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되고, 1974년이면 한국인이 쓴 게이와 레즈비언 관련 글이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되었다. 1980년의 정치적, 시대적 정황은 어쩌면 이런 흐름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과 우연히 일치한 건지도 모른다.
1980년대는, 현재 ‘발굴’한 수준에서,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실천을 상당히 활발하게 출판한 시기기도 하다.
.. 더 읽으시려면… http://goo.gl/AOXdf
암튼 타자의 역사, 상상력으로 역사쓰기를 고민하는 꼼지락 거림의 하나로 관대하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