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상상하기: 영화 <이발소 이씨>를 중심으로

지난 금요일에 진행한 행사의 토론문 writing 메뉴에 올렸습니다~ 뭐, 굳이 이곳에까지 올릴 것은 없지만, 오늘자 블로깅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삼아 적어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요. 흐흐흐.
내용의 절반은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흔적을 개괄하고 나머지 절반은 영화와 관련한 얘기입니다만.. 영화 관련 얘기에서도 기록물 관련 얘기가 나오긴 합니다. 하하. ;;;
이 토론문은 앞으로 해야 할 역사쓰기의 메모 정도가 되겠지요.. 그냥 가볍게 정리하는 기분으로 적었습니다. 1980년대 혹은 1970-80년대 역사를 다시! 본격 쓰려면 훨씬 많은 공력과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니까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아래엔 맛보기를 잠시…
1980년대는 퀴어 역사에서, 혹은 젠더-섹슈얼리티 역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시기다. 박정희가 죽은 뒤 ‘서울의 봄’이 왔(다고 하)고, 이후 소위 3S(screen, sex, sports) 정책으로 섹슈얼리티의 표현에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또한 젠더-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양상을 가시화함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구성하는데 일조했다. 물론 ‘퀴어’의 부상이 1980년대에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이태원 등지에서 트랜스젠더 업소 및 공동체, 그리고 레즈비언/바이여성과 게이/바이남성이 자주 가는 공간이 형성되면서 그 시기 퀴어는 소위 하위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많은 트랜스젠더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모였고 1976년엔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진 기록이 남아 있는 트랜스젠더/‘게이’ 업소가 문을 열었다. 물론 다른 기록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부터 트랜스젠더만 일하는 업소(정확한 업소명은 더 발굴해야 한다)가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1971년 즈음이면 비이성애를 다룬 글이, 번역서지만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되고, 1974년이면 한국인이 쓴 게이와 레즈비언 관련 글이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되었다. 1980년의 정치적, 시대적 정황은 어쩌면 이런 흐름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과 우연히 일치한 건지도 모른다.
1980년대는, 현재 ‘발굴’한 수준에서,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실천을 상당히 활발하게 출판한 시기기도 하다.
.. 더 읽으시려면… http://goo.gl/AOXdf
암튼 타자의 역사, 상상력으로 역사쓰기를 고민하는 꼼지락 거림의 하나로 관대하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트랜스/젠더/퀴어 역사 쓰기, 시간적 존재로서 타자: 사람책

지난 토요일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 팀)과 이화여자대학교 변태소녀하늘을날다, 두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3 LGBT 상담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그냥 참가만 한 건 아니고, 사람책 세션에서 사람책으로도 참가했다. 10여 분 정도가 책으로 참가했고, 각자 자신만의 주제를 정했는데 나는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채식하는 트랜스젠더”였다. 무척 재미 없는 주제라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는데(대출률 0을 기대했는데!!!) 이 목표는 실패했고.. 관련 더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고..

40분씩 총 두 번을 했는데, 두 번째 대출 말미에 한 분이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잉여롭게 사는 거요”라고 답했다. 사실 이건 앞으로 꼭 살고 싶은 방법이다. 난 잉여롭고 빈둥빈둥거리며 살길 바란다. 특히 이 날 점심 때 햇살 좋은 나무 아래 앉아 있으니 그저 이런 여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간절했다. 그랬기에 잉여롭게 사는 건 나의 꿈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하고 싶은 것도 여럿 있으니 그것 중 하나를 얘기했는데, 트랜스/젠더/퀴어 역사 쓰기다.
트랜스/젠더/퀴어 역사 쓰기는 트랜스젠더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원하는 작업이었고 박사과정에 진학할 때 학업계획서의 주제 중 하나로 제출한 이슈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나 두근거리면서 작업하는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기록물을 발굴하면 혼자 좋아서 덩실덩실했다가, 그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했다가, 다시 읽으니 괜찮아서 또 좋아했다가.. 과거 흔적과 기록물을 발굴하고 역사를 쓰는 작업은 늘 즐겁고 좋은 일이라 박사학위논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작업 중 하나기도 하다. 특히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행사를 계기로 간단한 원고를 쓰면서 요즘 역사쓰기엔 좀 더 버닝하고 있는 상황인데…

나는 역사쓰기가 트랜스/젠더/퀴어가 마치 근래에 등장한 존재로 독해되는 지점에 문제제기하며 그 역사를 복원하고, 기존의 역사를 재구성/상대화하는 작업이라고 믿고 있다. 즉, 퀴어의 역사화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퀴어화다. 늘 여기까지만 고민했는데..

적어도 9월부터 이곳을 방문하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번 학기에 “여성과시간” 수업을 들으면서 시간과 관련한 고민을 자주 한다. 그러며 나는 늘 시간을 말해왔지만 그럼에도 시간적 사유를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등 고민을 확장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고민이 역사쓰기와 결합하자 역사 쓰기의 또 다른 의미가 떠올랐다. 다름 아니라 시간적 존재로 타자를 이해함이다.

많은 경우, 타자는 시간이 없는 존재로 독해된다. 예를 들어 오랜 만에 만난 지인이 트랜스젠더나 바이/양성애자, 동성애자 등에게 “넌 아직도 그렇게 사니?”라고 말하며 철없는 존재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퀴어를 비롯한 타자를 과거에 고착된 존재로 여김과 같다. 혹은 케냐의 어느 부족의 삶을 TV 다큐멘터리로 본 다음, 그 다큐멘터리가 언제 제작되었는지와 상관없이 그 부족에 대해 혹은 케냐에 대해 안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것은 그 부족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다큐멘터리에서 재현한 모습과 같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으며 그 부족을 시간 없는 존재로 박제함과 같다.

역사를 쓴다는 건 타자를 시간적 존재로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역사 쓰기의 중요한 의미기도 하단 걸, 깨달았다.

뭐.. 대충 이런 얘길, 사람책 말미에 했다. 이렇게 정리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하하. ;;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쓰는 재미

10월에 마감해야 하는 두 편의 원고 중 가벼운 축에 속하는 원고 한 편을 마무리했는데, 어쩐지 이 원고가 재밌어서 계속 퇴고했다. 수시로 확인하며 고치고 또 고치면서 내용을 다듬었다. 어쩐지 내가 쓴 내용인데 내용이 재밌어서;;;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다.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_-;; 내 글이 재밌는 게 아니라 해당 내용이 재밌어서 그런 거다! 이건 분명하게 하자.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를 짧게 기술하고 있는데 아직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내용이다(내가 아는 수준에서 정식 출판된 적 없다는 뜻이다). 물론 딱 맛보기 수준으로만 쓰고 있다. 정식 발표문이 아니라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말해야 하는 토론문이라서 자세하게 쓸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자세하게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서 그렇다. 자료를 좀 더 모아서 제대로 된 글을 써야 할텐데.. 흠.. 문제는 당장은 기록물을 더 모을 경제적 여건이 안 된다는 게 함정. ;ㅅ;
암튼 과거 기록물을 읽으며 역사를 상상하는 작업은 확실히 재밌다. 언제나 두근두근하고 설레고.. 그래서 쓰는 작업 자체가 무척 즐겁다. 아울러 새로운 기록물을 다시 발굴하고 찾으면 혼자 흥분하는 시간이 무척 좋다. 이런 재미로 기록물을 찾고 글을 쓰는 거겠지. 어쩌면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고 역사학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전공 삼았다면 어땠으려나?
참고로 이 글은 https://www.runtoruin.com/2331 에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