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단체는 여성단체와 연대하는가?

폭력 단체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실제 염두에 둔 어떤 정황 판단이 있었다. 차마 쓸 수는 없지만.. 쓸 수 없는 건 자기 검열이라기보다 아직은 짐작이라 선뜻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어떤 질문을 공유하자면, 제목과 같다. LGBT 단체 혹은 한국의 동성애 단체는 여성운동/여성주의 단체와 연대하는가? LGBT 혹은 동성애 단체는 여성주의단체에 연대를 종용하기도 한다. 그럼 여성주의단체의 의제나 활동에 동성애 혹은 LGBT 단체는 연대를 종용하는 만큼 참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이게 고민이다. 각 단체의 활동은 페미니즘과 퀴어정치, 이 두 정치학을 주요 정치적 밑절미 삼아 활동하고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은 바로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두 정치학의 자장에서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찔림: 복잡다단한 트랜스젠더의 삶을 복잡하게 사유할 수 있는가

내가 쓰는 트랜스젠더는 어떤 트랜스젠더인가? 의료적 조치 경험/선택 여부만으로도 트랜스젠더의 삶은 상당히 다르고 복잡한 양상을 띈다. 하지만 의료 경험만으로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건, 출신지역이나 계급, 장애 등으로 겪는 지점을 누락하기 쉽다. 흔히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의료 조치에 모든 트랜스젠더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상당한 고비용이기에 의료 조치에 참여하기 위해 상당한 다짐을 해야 한다(단순히 의료 조치에 참여해서가 아니라 의료 조치가 야기하는 경제적 부담으로). 의료 조치를 시작한 이후에도 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여타의 삶을 일정 정도 유예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수를 제외하면 의료적 조치를 한다는 건 많은 경우 계급 문제다. 이것은 트랜스젠더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로 언급하고 끝날 부분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트랜스젠더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트랜스젠더의 계급 이슈를 말한다는 건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계급이란 단순히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익힌 습관, 몸의 관습이기도 하니까. 이를 테면 나는 식당에서 친절한 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는데 내가 받을 서비스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부당한 서비스를 받으면 분개하지만(내가 이 모양 이꼴이라고 무시하냐!!) 그럼에도 항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성격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온 원가족의 계급적 분위기기도 하다. 혹은 나는 어지간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진통제로 해결하는데, 병원은 내가 가기에 부담스러운 곳이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의 경우, 건강하단 결과가 나오면 괜한 비용이 아깝고, 건강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차피 치료비도 없는데 괜한 걱정만 생겨서 아깝다. 계급은 삶의 양식, 삶의 선택에 있어 많은 지점에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에게 계급은 어떤 의미일까? 계급은 예시일 뿐이다. 미등록/이주, 장애 등은 트랜스젠더 경험에 복잡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이 복잡함을 어떻게 복잡하게 만들 것인가? 여기서 나는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다. 아는 것이 없고 고민이 없어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 트랜스젠더만 말할 뿐이다. 물론 많은 경우엔 내 이야기만 팔고 있지만 추상적 트랜스젠더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할 일이다. 반성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섹스/젠더, 아니 그냥 젠더

아이디어 메모.
케이트 본스타인은 “섹스는 성행위고 나머지는 모두 젠더다”라고 말한 적 있다. 얼마전 수업교제를 읽다가 이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고민해도 탁월한 성찰이야.. 하지만 이렇게 사유하고 실천하기란 참 어렵겠지.
섹스는 성행위고 나머지는 모두 젠더라는 성찰은, 소위 생물학과 사회문화의 이분법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구분 공식으로는 인간의 삶을 설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섹스라는 생물학적이고 물질적 몸, 젠더라는 사회문화적 양육과 해석이라는 구분은 차별과 억압의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비판하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젠더를 강조하면 그럼에도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섹스를 놓치게 되고, 섹스를 강조하면 섹스 자체가 해석이란 점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섹스-젠더를 구분하는 것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냥 모든 게 젠더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면 된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소위 물질이라는 어떤 몸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담론-물질 구분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죽었다 깨어나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한 성찰이다. 그냥 모든 게 젠더다.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