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는 아니지만,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라고 소개하기

ㅈㅎㅈ선생님은 자신을 연구자로 정체화한 적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예전엔 지식노동자)로 정체화 한다고 했던가.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아무려나 자신을 연구자로 정체화한 적 없고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나를 연구자로 동일시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부하는 학생으로 정체화 하는 경우는 있지만 연구자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매우 자주 나를 연구활동가로 소개한다. 연구자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란 얘기기도 하고, 활동으로 연구를 한다는 얘기기도 하고, 연구자면서 활동가이기도 하단 뜻이기도 할 텐데. 나로선 연구자에도 못 미치고 활동가에도 못 미치는 부족한 인간이란 뜻에 더 가깝지만…  아무려나 이런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이것은 매우 전략적 표현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연예기사로는 다뤄도, 특이 사례나 사건으로는 다뤄도 지식 체계로 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한국에 극소수고 트랜스젠더를 논하는 대다수의 글은 그저 연구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 연구자/연구활동가라는 명명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곤 여기지 않는다. 내가 의도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인 연구자로 독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를 연구하는 비트랜스젠더 연구자로 이해할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트랜스젠더 이슈가 연예기사로 소비되고 말 주제가 아니란 사실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지금 내겐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끊임없이 환기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란 용어, 연구자란 용어를 계속해서 얘기해야 한다. 이 두 용어의 접합을 조금이라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더 많은 트랜스젠더 연구자가 등장하길 바라면서.
사실 고작 나 같은 사람이 연구자랍시고 떠드는 것,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냥 ‘트랜스젠더 학생’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방학, 혐오 폭력과 이성애 구성 강의안


수업은 아직 한 번 더 남았지만 기말페이퍼를 제출했으니.. 드디어 방학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일정의 시작이다. 그 전에 6월 말까지는 좀 느긋하게 지내야지. 히히. 7월부턴 또 빠듯하겠지만.
어제 저녁부터 방학이지만 20일까지는 여전히 일정이 빠듯하다. 뭐, 언제는 안 그랬냐고.. 흐흐.
혐오 폭력과 이성애 범주의 구성으로 강의해드립니다.. 불러만 주셔요… oTL.. 흐흐흐
기말페이퍼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트랜스혐오, 젠더혐오, 퀴어혐오와 이에 따른 폭력이 단순히 피해경험자의 젠더 실천을 규제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이성애-이원 젠더 범주를 구성하는 과정이라는 내용입니다. 당장 글로 출판할 계획은 없습니다. 좀 묵히려고요(라기보단 나중에 뭔가를 급하게 써야 할 때를 위해 쟁여두.. 아. 아닙니다;; ). 대신 강의를 할 수 있다면 이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트랜스젠더란, 동성애란..과 같이 기초 강의 말고 이성애 범주를 탐문하는 강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속에서 이성애 범주 형성과 퀴어 범주 규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궁금하신 분들, 망설이지 말고 불러주세요.. 굽신굽신…

잡담: 규범, 공부, 결과, 글

규범을 균열 내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규범에 내재하는 균열을 놓치는 건 곤란하다. 규범은 솔기 없이 단단한 것이 아니라 허술한 형태다. 규범은 혼종이다. 그래서 규범의 균열을 읽는 작업이 중요하다. 적어도 내겐 이런 작업이 내 삶에 숨통을 틔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바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택배가 와 있었다. 주문한 게 없는데? 이런저런 생활비에 돈 나갈 일이 많아 책 지름을 못 하고 있다. 그리하여 택배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최근 무언가를 주문한 일도 없고. 그런데 뭐지? 주소를 확인하니 출판사였다. 4월 말 주로 지하철에서 쓴 원고가 이제 출판되었나보다. 소리 소문 없이 글이 나온 느낌이다. 글을 쓸 때만 해도 언제 나오나 싶었는데 나오고 보니 나오긴 나오는구나 싶다. 아울러 글을 쓸 당시만 해도 6월이 언제 오나 했는데 벌써 6월 중순이다. 오늘 오후에 하나 마무리하고 이제 한두 편만 더 쓰면 상반기 마감이다. (4월부터 6월까지 총 6편이라고 했는데… 7~8으로 수정해야.. ;ㅅ; 1월부터 기준으로 하면 오늘까지 8편을 썼구나.. 끄응…)
암튼 이렇게 잡지에 출판된 글을 보니, 그래도 좀 뿌듯하다. 그동안 뭔가 하긴 했는데 그 형태가 안 보여서 ‘나 지금 뭐하고 있나’싶을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계속 바쁜 일상인데 그 결과는 확인할 수 없는 시간. 특히 글을 썼으면 지금까지 쓴 글 목록에 등록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빈둥거리며 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바쁘다고 흰소리만 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책의 형태로 글이 나오니 조금은 뿌듯하다. 얼마나 잘 썼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어쨌거나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좋다. 뭐, 이 정도의 자기만족이라도 있어야지… ;;;
그러고 보니 지난 6월 8일에 또 다른 글이 하나 출간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왜 소식이 없지? 2월 경 급하게 마무리한 글인데…;;; 물론 글 자체는 초고부터 완성까지 거의 10달 걸렸지만…
뭔가 계속 생산하고 있는데, 생산만 하고 있으니 깊이는 없고 다들 얄팍하구나.. 훌쩍..
과거 어떤 학자는 10년에 한 편, 책을 냈다. 근데 가만 고민하면 10년에 한 편이 아니라 10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쓴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나도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지금처럼 돌려막는 느낌으로 쓰지 않고 좀 진득하게 작업할 수 있을까? 역시나 박사학위 논문이 유일한 희망일까… 아아…
그래도 지금 상황은 내게 과분한 복이다. 지금 상황이 고마울 따름이다. 글을 요청하는 곳이 있고 읽어주는 분이 계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