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적 조치 시작[본문 추가]

지난 주부터 호르몬투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의료적 조치를 아예 안 하겠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란 걸 아실테니 그렇게 안 놀랄 듯합니다. 온라인으로만 아는 분은 좀 놀라려나요? 근데 블로그에서도 종종 언젠간 할 수 있다는 암시는 했으니 별로 안 놀라실 듯 합니다. (아쉬워라… 흐)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호르몬 투여를 모르는 상태에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블로그에 호르몬일기를 써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밝히기로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아마도 정기적으로 호르몬일기를 쓰도록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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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 추가할까 했지만 오늘 일은 오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서…
자세한 내용은 태그를 참고하시고..
사실 처음 몇 개의 댓글만 읽었을 때도 오늘 날짜에 맞춰 공모해주신 거라 여겼는데.. 조금 전 전화를 받고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호호호.
어쨌거나 축하해주신 분들껜 고마움을 전하고 오늘 기획에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해요…
다음에 정말 어떤 결정을 한다면 여러분들과 그 시간을 함께 하도록 할게요. 🙂
2013.04.01.21:01.

참고로 제가 호르몬투여를 시작한다면 그 한달 정도 전부터 전신사진과 변화를 기록하는 블로그를 따로 개설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블로그를 정말 만든다면, 그리고 호르몬투여를 결정한다면 오늘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은 꼭 초대할게요!
2013.04.01.21:13.

트랜스젠더 기록물 수집하기 01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기 싫어요…
KSCRC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료수집을 하기로 했다. 기록물의 종류가 다양하니 몇 사람이서 종류를 나눴고 난 단행본과 논문 중 일부를 담당했다. 단행본은 ㄱ. 단행본 자체로 의미 있는 경우, ㄴ. 단행본의 일부만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루지만 단행본 형태로 의미 있는 경우, ㄷ. 단행본의 일부며 굳이 수집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중 ㄱ과 ㄴ만 수집할 예정이다.
단행본과 논문을 한 번에 다 정리할 수는 없으니 부담없을 듯한 단행본부터 시작했다. 수집 작업을 시작하기 전 회의자리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문헌은 한 2~30권 정도겠거니 했다(오해하는 분이 있는 듯한데 한국어만 모읍니다, 물론 영문판을 기증해주시면 기꺼이 받지만.. 흐흐).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니까.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퀴어락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 중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 있을 법한 기록물만 대충 정리했는데 서른 종을 가볍게 넘었다. 응? 어리석은 나는 트랜스젠더 관련 도서가 적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은지는 가늠을 못 하고 있었다. 이후 며칠 동안 대충 정리한 1차 목록에만 80여 권이었다. 헉… 80여 권이 많다곤 할 수 없지만 적은 것도 아니라 좀 놀랐다. 이렇게 모아서 정리하면 늘 의외로 많구나라고 느낀다.
근데 80여 권으로 끝난 게 아니다. 실물을 확인한 다음 수집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기록물 100여 권의 목록이 따로 있고, 검토도 못 한 기록물이 200여 권이다. 아, 정말 시작이 미약했다면 그 끝도 미약하고 싶은데.. 언제 다 검토하지? ㅠㅠㅠ 실물을 확인했기에 확실한 1차 정리 기록물 80여 권을 제외하면 모두 방학 때나 검토할 수 있는데.. ㅠㅠ
그나저나 태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이슈에 한 마디씩 하는구나. 굳이 안 해도 괜찮은데요.. 그냥 신기한 트랜스젠더가 있더라는 얘기를 하실 거면 참아주세요.. 크롤러 입장에선 모두 다 수집해야 한다고요.. ㅠㅠ 아키비스트 입장에선 일일이 다 검토하고 수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요.. ㅠㅠ
목록으로 만든 기록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복사하는 과정을 예상하니 꼬박 사흘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서 떠올린 망상이 있으니, 공돈으로 딱 천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 기록물 원 없이 구입하게. 도서관에 가서 복사하지 않고 그냥 단행본으로 다 구매하게. 천만 원어치 구매하고 나면 추가로 구매할 기록물이 이천만 원어치 생길 거라는 건 함정. 크.

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의 윤리: 무지로 무지를 얘기하기 혹은 트랜스-바이 맥락으로 읽기 시도

참고글
ㄱ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 https://www.runtoruin.com/2138
ㄴ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 https://www.runtoruin.com/2139
ㄷ 이것저것 잡담: 읽은 거, SNS, 구글플러스, 모두에게 완자가(모완), 무한도전-노홍철 https://www.runtoruin.com/2140
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을 논하는 글을 썼을 때, ‘이 삐리리한 삐리리한 삐리리야’라고 쓸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모완을 읽으며 너무 싫어서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욕을 하며 비판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르며 각자의 맥락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니까요.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82화와 83화에 문제가 있은 표현이 상당하단 점에서 저 역시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 판단에 저는 그럴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완자 작가보다 낫다고 얘기할 부분이 없거든요.
자신이 모르는 이슈, 열심히 고민하지 않은 이슈에 있어선 ‘누구나’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수준으로 얘기한다고 정희진 선생님께서 지적한 적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모든 이슈에 아무런 문제 없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럴리가요. 어떤 이슈에서 저는, 저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로 논쟁적이고 혐오발화일 수도 있는 말을 했을 겁니다. 제가 주로 염두에 두는 맥락에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제가 염두에 두지 않은 맥락에선 문제가 될 발언이 상당합니다. 장애이슈에 있어선 어떤 ‘사건’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제가 주로 글을 쓰고 제 전공이라고 얘기하는 트랜스젠더 이슈라고 예외일까요? 오히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훨씬 더 논쟁적인 얘길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고작해야 제가 경험한 방식의 일부만 떠들 수 있을 뿐인 걸요. 저는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표하지 않으며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리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경험과 역사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의 논의가 다른 트랜스젠더에겐 문제가 많고 혐오로 독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완에 관한 논평을 쓸 때, 그 잣대를 저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자신없어요. 모완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식으로, 타인을 비평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비평할 것인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이 세상의 최대 약자, 최대 피해자라서 모든 언설을 판단하는 기준도 아닌데, 트랜스젠더 역시 다양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혐오발화를 하는데 감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각자의 맥락에서 얘기하자는 건, ‘나는 이게 싫어’라는 식으로 그냥 툭 내뱉자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맥락화하자는 거죠. 밑도 끝도 없이 ‘그건 혐오야’, ‘그 말이 난 불편해’라고 말하는 건, 적어도 비평적 글쓰기엔 … [그냥 생략할 게요.]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른 윤리가 있기에 제 글쓰기 윤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저 저는 이런 고민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거죠. 제 기준에 제가 잘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제가 모완을 1화부터 계속 읽었기에 이렇게 판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82화만 읽었다면 또 한 편의 트랜스혐오 텍스트가 나왔다며 “이 삐리리한”이라고 비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라면 1화부터 읽었고 모완이란 작품의 흐름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무지를 통해 무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군가 어떤 낯선 이슈를 얘기할 때면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부 <성과 사회>란 수업 조별 발표 자리에서, “저희 조는 트랜스젠더라는 (신기한)존재를 만났는데..” 운운할 수도 있죠. 혹은 “너네들 트랜스젠더 잘 모르지? 내가 어제 트랜스포머 아니 트랜스젠더를 만났는데 내가 가르쳐 줄게”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발언의 수위는 달라도 많은 경우 타인을 얘기할 때 이런 형식입니다. 말투만 조금 순화되었냐 아니냐의 차이지 내용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그런 타자화 혹은 우아하지도 않은 혐오일 때가 많죠.
모완은 어떤가요? 조금만 세심하게 읽으면 완자 작가는 윤리적으로 그리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한 걸 짐직할 수 있습니다. 글에 나타난 문제적 표현을 잠시 덮어둘 수 있다면, 트랜스젠더 이슈에 접근하는 태도, 트랜스젠더 이슈를 얘기하려는 태도가 그러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자신에게 어떤 무지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작가의 바이 범주가 만든 성찰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합니다.
완자 작가는 야부와 7년 정도 파트너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 시간이라면 자신을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편이 설명하기 더 편할테고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니까요. 완자 작가가 자신을 바이라고 밝혔음에도 모완이 동성애 웹툰으로 이해되는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개별 관계에선 자신을 바이라고 얘기하면서 공적 자리에선 레즈비언이라고 밝히기도 했고요. 이것이 현재 바이 범주가 갖는 위치를 상징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특강에서 얘기할 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그래도 참조할 대상이 있어서인지 고개라도 주억거리지만, 바이나 무성애 이슈에선 다들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완자 작가는 자신을 바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럴 작가가 아니죠. 완자 작가는 자신이 바이란 점을 분명하게 밝혔고 바이 범주를 설명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느 화에서 바이에 관한 오해를 설명한 적도 있는 듯하고요(다시 정주행을 하지 않고 쓰는 글의 문제;;). 자신을 바이로 설명하면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범주 및 삶과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겠죠. 바이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상관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범주를 설명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감수성과 성찰이 있을 테고요. 그렇기에 타인의 삶에 대해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고 함부로 아는 척 얘기 할 수 없다는 걸 정말 잘 아는 듯하단 인상입니다. 이제 완자 작가가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얘기를 할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웹에서 자료 좀 검색해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서 듣고 그 얘기를 전하는 것, 그렇게 들은 얘기로 아는 척하기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먼저 밝히며 무지를 통해 무지를 얘기하는 것이죠.
물론 저는 어떤 글을 비판할 땐 “야이 삐리리야”를 글쓰기 언어로 바꿔서 쓸 때도 있습니다. 이경이나 김정란의 글을 비판할 때 그렇습니다. 비트랜스젠더는 무조건 옹호하고 트랜스젠더는 비난부터하는 글에 저는 지금까지 적은 글쓰기 기준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자는 제가 판단하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 글에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의 비판을 할 순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제가 모르는 이슈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 완자 작가 수준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며 글을 쓸 용기가 있느냐면 아니요, 제겐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저는 완자 작가보다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완자 작가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만 비판하라(“너희 중에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가 아닙니다. 그냥 저는 이런 판단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랬기에 트위터에 제 글이 유통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만약 둘 다 유통된다면,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보다는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가 더 많이 유통되길 바랐습니다. 지금이라면, 앞의 두 글보다 지금 이 글이 더 많이 유통되길 바라고요. 하지만 글의 소비와 유통은 제가 판단하고 바랄 수 있는 게 아니죠. 제가 원한다고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도 않고요. 이를테면 지금까지 출판한 글 중에서 ‘다른 어떤 글보다 지금 이 글을 사람들이 더 많이 읽으면 좋겠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은 다른 글입니다. 제가 기대하는 글보다는 다른 글을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 그 글 말고 이 글을 읽어주세요, 이 글을 유통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읽은 분이 판단할 사항이니까요. 제가 고민하는 부분과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다르단 뜻이겠지요. 그러니 지금까지 쓴 글은 당연하게도 저 한 사람의 사소한 주절거림에 불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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