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 용어의 역사, 메모

“게이가 호모고 트랜스젠더가 게이던 시절..”이란 표현은 어느 시기까지로 유효한 것일까? 일테면 1990년대 초반엔 확실히 이런 식으로 구분한 듯하다. 그 시기 나온 (일전에 언급하기도 한)기록물엔 mtf 트랜스젠더를 지칭하며 게이로, 남성동성애자(바이남성은 어떤 위치일까?)를 지칭하며 호모를 사용하고 있다. mtf 트랜스젠더를 묘사하며 게이로 지칭한 시집도 나왔다. 조금 더 추적할 때 1986년에 원고를 쓰고 1987년에 나온 어느 책에서도 mtf 트랜스젠더를 게이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1985년 즈음이나 그 직전에 쓴 기록물에선 분명하지 않다. 그 즈음 글에서 호모는 오늘날의 게이와 mtf 트랜스젠더를 모두 지칭한다. 둘을 아예 구분하지 않는다. mtf 트랜스젠더를 여장한 남자로 이해하며, 게이와 mtf 모두 태어날 때 남자로 지정받았지만 여성성을 실천하는 존재로 묶는다. 그래서 호모와 게이란 용어 역시 분명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진 않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순 없고, 그저 내가 찾은 몇 편의 기록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록물이 늘어날 수록 과거는 더 흥미롭고 또 복잡하다. 그래서 좋다.
레즈비언과 관련한 용어는 최소한 1980년대 초반부터 분명하게 쓰인다. 여성 간의 성애적 실천(두 동성애자여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두 바이여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성애자여성과 바이여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성애자여성과 이성애자여성의 관계일 수도 있고 등등)은 레즈비언으로 표현한다. 1970년대 명동 문화에서도 레즈비언이란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했다고 하고 신문기사에도 1970년대 초반부터 레즈비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레즈비언의 용어 역사를 살피고 그 의미가 미묘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살피는 작업도 꽤나 흥미로우리라.
가장 어려운 건 바이/양성애란 용어 사용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일텐데 ‘양성애’로는 신문기록이 별로 없어서 의외다 싶다. 대신 ‘양성’(ex. 국력양성)이나 ‘바이’(ex. 알리바이, 케이스-바이-케이스)는 관련 없는 기록도 같이 검색되기에 걸러내는 것부터 일이다. 무엇보다 바이를 레즈비언과 호모/게이로 묶어서 일괄 설명했을 가능성가 상당하기 때문에(가능성 97%에 한 표) 이 지점을 섬세하게 가르는 작업이 필요할 텐데.. 이건 단순히 기록물을 발굴하는 것 이상의 어떤 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바이로 설명할 수 있는 mtf 트랜스여성의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재밌는 기록물이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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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네이션(동성연애국민)”
1992년 기사에서…
읽고 빵 터졌다. 크크크.

삼재

올 해부터 삼재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농담으로 ‘삼 년간 재수가 없어서 삼재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번 삼재가 정말 안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 번 삼재 때,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부모님 몰래 도장 파서 휴학을 하기도 했고 얼결에 안 좋은 일에 얽히기도 했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일로 어떤 처벌을 받기도 했다. 죽을 뻔한 일도 많았다. 암담했고 암울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삼재였음을, 그 시기가 끝난 뒤에야 깨달았다. 다시는 삼재를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고 싶지 않다고 안 겪을 수 있는 게 삼재라면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의 주기처럼 돌고 돌아 다시 삼재다.
올해부터 삼재란 걸 몇 년 전부터 계산했고 그래서 올해는 조금 준비하는 기분으로 삼재를 맞았다. 삼 년의 시간이니 앞으로 삼 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존에 하던 일만 무난하게 유지하면서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일은 시작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인간의 삶이 또 그렇게 다짐처럼 흐르진 않더라. 이를테면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올해, 무려 올해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를 만들었다. 연구소를 만들 때, 향후 몇 년은 특별한 활동 없이 현상 유지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는 논문 쓸 때까진 바쁠 듯해서만이 아니었다. 삼재여서 삼 년의 시간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바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자칫 일을 크게 벌였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연구소가 사라지는 것보다 첫 삼 년은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조용히 보낼 계획을 세웠다. 물론 현재 분위기는 이런 다짐과 무관하게 흐르고 있지만.
아무려나 조용하고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태도는 내게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지난 번과 같은 사고가 없길 바라기 위해서 자중하고 조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삼재인데 일거리가 잔뜩 늘어난데다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어서 걱정이 더 크기도 하지만. 이것이 이번 삼재의 징후라면 어떻게 되지…
한편으론 삼재가 지금이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이건 순전히 박사학위논문 일정과 관련있다. 학위논문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가 삼재라면 아마 무척 힘들거나 삼재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마무리를 못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일정에서 삼재는 학위 논문을 본격 쓰기 시작하는 시간 직전에 끝난다. 논문을 준비하는 시기가 삼재다. 딱히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정말 이런 것이 위로가 될 정도의 그런 상태랄까.
며칠 전 삼재와 관련해서 또 다른 해석을 들었다. 삼재는 농사로 치면 겨울에 해당한다고 했다. 겨울이라 추운 날 아무 것도 없이 조용히 지내는 시기가 아니라, 지난 세 계절 동안의 성과를 거두는 시기라고 했다. 그 성과를 거두며 조용히 지내는 시기라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난 삼재 이후 내가 했던 일의 결과를 거두며 삼 년을 버텨야 한다는 소린데… 덜덜덜. 여러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농담이라도 복수는 삼재가 끝난 뒤에…
앞으로 삼 년이다.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사히 살아 남을지 어떨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다. 부디 삼 년 뒤에도 이곳에 글을 쓰고 있기를. 앞으로 삼 년에 안부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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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가 별자리에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은 시기가 있는데.. 삼재였을 때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그리고 신내림을 받은 트랜스젠더로 업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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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농담을 덧붙이면 앞으로 삼 년 동안 제가 무슨 사고를 쳐도 ‘삼재라서 그렇구나’라고 넘어가주세요…
(뭔가, 완벽한 핑계거리를 획득한 느낌이 든다면, 오햅니다..)

매실액

커피를 끊기 전부터 마셨고 커피를 끊은 이후로는 더 자주 마시는 음료가 있으니 매실액이다. 몸에 열이 많아 밀가루로 만든 면식(찬 기운의 음식)을 좋아하는데 위가 약해서 면 종류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매실액으로 이를 보완한다. 매일 물 대신 마시고 있기도 하고.
이런 연유로 집에 매실액이 몇 병 있다. 여기저기서 얻은 것이다보니 매실액마다 출처가 서로 다르다. 대충 너댓 곳에서 만들었는데 매실액을 만드는 시기, 장소에 따라 맛과 색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에 처음 배웠다. 문제는 양도 다 다른데…
두 번째로 양이 많은 매실액은, 초반엔 약하게 비누맛이 나서 난감하여 먼저 먹으려고 했다. 맛은 있지만 뒷맛이 비누맛이니 빨리 처리해야지… 근데 먹는 시간 동안 숙성해서인지 맛이 입에 익어서인지 비누맛도 사라졌고 맛있더라. 그래서 다시 쟁여두고 가장 양이 많은 매실액을 먹기 시작했다. 양을 조금만 많이 섞으면 마실 때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매실액은 달콤새콤한 맛이었는데, 이건 새콤함이 팔 할이다. 아직 덜 숙성해서 센 맛이 남은 것이려나… 좀 더 숙성하거나 입에 익으면 맛있으려나..(반통을 먹었는데 여전히 새콤하고 몸을 떤다는..) 가장 양이 많고 새콤함이 가장 강하니 일단 이것부터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양은 가장 적고 가장 오래되었다고 추정하는 매실액이 한 병 있다. 병을 기울이면 점성이 약해 술로 발효될 것만 같다. 이 매실액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 살짝 걱정도 된다. 암튼 맛을 보면 매우 부드럽고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새콤하다. 좀 더 아껴서 먹고 싶은데, 일전에 술처럼 변한 매실액을 먹은 적 있는 나로선 서둘러 먹어야겠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다.
매실액은 3년은 묵혀야 제맛이라는데 가장 양이 많은 것도 좀 더 묵히면 달콤새콤하고 부드럽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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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쓴 글을 몇 편 읽었더니 지금 이 글에도 그 시절의 글냄새가 난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