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액

커피를 끊기 전부터 마셨고 커피를 끊은 이후로는 더 자주 마시는 음료가 있으니 매실액이다. 몸에 열이 많아 밀가루로 만든 면식(찬 기운의 음식)을 좋아하는데 위가 약해서 면 종류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매실액으로 이를 보완한다. 매일 물 대신 마시고 있기도 하고.
이런 연유로 집에 매실액이 몇 병 있다. 여기저기서 얻은 것이다보니 매실액마다 출처가 서로 다르다. 대충 너댓 곳에서 만들었는데 매실액을 만드는 시기, 장소에 따라 맛과 색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에 처음 배웠다. 문제는 양도 다 다른데…
두 번째로 양이 많은 매실액은, 초반엔 약하게 비누맛이 나서 난감하여 먼저 먹으려고 했다. 맛은 있지만 뒷맛이 비누맛이니 빨리 처리해야지… 근데 먹는 시간 동안 숙성해서인지 맛이 입에 익어서인지 비누맛도 사라졌고 맛있더라. 그래서 다시 쟁여두고 가장 양이 많은 매실액을 먹기 시작했다. 양을 조금만 많이 섞으면 마실 때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매실액은 달콤새콤한 맛이었는데, 이건 새콤함이 팔 할이다. 아직 덜 숙성해서 센 맛이 남은 것이려나… 좀 더 숙성하거나 입에 익으면 맛있으려나..(반통을 먹었는데 여전히 새콤하고 몸을 떤다는..) 가장 양이 많고 새콤함이 가장 강하니 일단 이것부터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양은 가장 적고 가장 오래되었다고 추정하는 매실액이 한 병 있다. 병을 기울이면 점성이 약해 술로 발효될 것만 같다. 이 매실액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 살짝 걱정도 된다. 암튼 맛을 보면 매우 부드럽고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새콤하다. 좀 더 아껴서 먹고 싶은데, 일전에 술처럼 변한 매실액을 먹은 적 있는 나로선 서둘러 먹어야겠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다.
매실액은 3년은 묵혀야 제맛이라는데 가장 양이 많은 것도 좀 더 묵히면 달콤새콤하고 부드럽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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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쓴 글을 몇 편 읽었더니 지금 이 글에도 그 시절의 글냄새가 난다.. ;ㅅ;

내가 쓴 글, 선언문

[어쩐지 미리 써둔 글이 이것 뿐이라… 다른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흠.. 흠…]
현재 이 블로그의 writing 메뉴 ‘루인의 글’ 목록엔 첫 번째 글로 “트랜스젠더 선언문 1/2”을 올려뒀다. 하지만 루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쓴 글은 선언문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첫 번째 글 역시 선언문이 아니다. 이랑 시절 쓴 글 중 트랜스젠더 이슈와 직간접 관련 있는 글이 몇 편 있다. 루인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쓴 글도 몇 편 있고(글을 읽는 순간, 이건 ‘루인이 썼구나’ 하겠지만… 하하 ;; ). 그 글을 목록에 올릴지, 선언문 이전 시대의 글로 그냥 덮어 둘지 고민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고민이고 관심 있는 분은 거의 없을 듯;;
고작 나 따위에게 00시대 이전, 이후란 구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구분을 하는 건 “선언문”이 나 자신에겐 상당히 의미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작정하고 쓴 첫 번째 글이기도 하고, 석사 지도교수와 사제의 연을 확정해준 글이기도 하고, 지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맺어준 글이기도 하다. 그 글 한 편에만 다양한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다. 다들 그런 글 한 편 정도는 있지 않나? 잘 쓴 글은 아닌데, 잘 쓴 글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을 수도 있는데, 그 글에 다양한 사연이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글. 실체는 파묻어 없애버리고 싶다고 해도 그 글이 존재했다는 기록만은 꼭 남겨두고 싶은 글. “선언문”이 내게 그렇다.
언제 용기를 내서 한 번은 다시 읽어봐야 할텐데… 용기가 안 나네.. ㅠㅠ
뭐, 이렇게 말해봐야 현재 비공개로 묶여 있고 실제 읽은 분이 몇 안 되니 이곳에 오시는 분들껜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하겠지만..
다른 한편, 이랑 시절의 글은 이랑에서 운영한 웹진에 올렸고, 웹진은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고, 웹진에 올린 글 중 몇 편만 인쇄 형태로 남아 있다. 인쇄 형태로 남은 것 중 일부는 전문이 아니라 발췌 판본이다. 찾아봐야겠지만 내게도 최종본이 없을 가능성이 크달까. 물론 다행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으하하. ;;; 역사 조차 지우고 싶은 건 아니지만 흔적은 없애고 싶은 글 하나 정도는 다들 있지 않나요… 전 지금까지 출판한 모든 글을 회수하고, 사람들 기억에서 소거하고 싶어요.. 그래서 루인이란 사람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글은 썼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아는 사람은 없으면 좋겠어요… ㅠㅠㅠ

두서 없는 잡담

ㄱ.
화제였던 것 같은 김혜나의 <정크>를 일전에 읽었다. 한줄 평가하면, 일단 소설부터 좀 잘[제대로] 쓰고… 소설부터 잘 쓰면 그때 그 소설로 다시 논평하겠습니다…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ㄴ.
어쨌거나 <정크>는 게이가 주인공이니 퀴어락에 등록해야 할까? 한 권 더 구매해야 하는데 그 돈이 아까워… 헌책방에서 구하는 것도 아까워… 어떡하지… 이 책 구매해서 읽고 내놓으실 분 계시면 퀴어락으로 버려주세요… 히히.
ㄷ.
-성적소수자를 지지하면 곧 성적소수자의 입양권도 지지해야 하는가?
-동성결혼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호모포비아인가?
… 이것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이슈인가요? 퀴어 공동체 및 퀴어 학제에서도 각자의 다양한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말 그대로 여전히 논쟁적 이슈 아닌가요?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ㄹ.
혐오와 인권감수성 돋는 표현을 가르는 분명한 대답 혹은 정답이 있다면, 저는 그 정답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슈를 공부하겠습니다. 혐오와 지지를 분명하게 가르는 정답이 있다는 인식,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문제의식이 있어 공부를 하기도 하는 저로선 때때로 난감해요.
며칠 전 교황선출과 관련해서 추기경 중 여성이 없음을 두고 MBC 기자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던가, 구시대적이라고 했던가. 이런 논평은 명백히 박근혜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큰데, 여성이 참여하면 곧 성차별 없고 (적당히) 진보인 걸까? 다른 한편 ‘동성’을 성추행했다고 고소당한 추기경도 많은데, 그럼 비(규범적)이성애자 추기경이 꽤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은 왜 평가를 안 하지?
어느 한두 가지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그 특유의 폐쇄성을 좀 더 복잡하게 사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사유하기란 정말 어렵구나… ㅠㅠㅠ
ㅂ.
며칠 전 수업 교제로 벨 훅스를 (다시)읽었다. 읽고 좌절했는데 나는 벨 훅스처럼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안 될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벨 훅스의 대중적 글쓰기와 관련해서 지혜 선생님의 깔끔한 요약은, “벨 훅스는 대중적으로 쉽게 쓰기 위해 내용을 희생하지 않고, 내용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형식을 바꾼다.”
대중적 글쓰기, 쉬운 글쓰기는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전달함이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복잡하게 다루되 이것을 전달할 형식을 바꿈이다.
ㅅ.
벨 훅스의 책은 정말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빼어난 성찰이 많은데도, 신기할 정도로 한국에 번역도 많이 되어 있는데도 의외로 안 읽히는 경향이 미스테리. 내가 벨 훅스의 초기 4부작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해서 이러는 건 아니고.. 흠.. 흠.. ;;; 물론 종종 오드르 로드(오드리 로드)로 처음 공부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고민을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