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얘기: 몸살, 알바, 퀴어락

01

10년 만에 앓았다는 몸살은 이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방심을 하긴 이르지만, 많이 심할 때에 비하면 움직이는데 큰 무리가 없네요. 어제부턴 말을 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고요.
수요일 오전, 몸살이 너무 심해서 뻗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대로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일까?’가 아니었습니다. ‘앗싸, 블로깅 할 거리 생겼다!’였습니다. ㅋㄷ는 아파도 “살 빠지는 거 생각하며 좋아할 인간”이라고 했지만 이런 고민보다 블로깅 할 거리가 생겨서 더 좋았습니다. 크. 암튼 정말로 관련 내용으로 블로깅을 했으니 생산적 아픔이었습니다…. 응?
02
올해 알바 일정을 조율하는데… 작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급여가 좀 더 늘어나는 것보다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일하는 시간을 늘이는데 동의한 건, 박사논문을 쓸 시기를 대비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죠.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언제 쓸지 모르는 박사 논문을 벌써부터 걱정하다니요… 그럼에도 조금씩 준비를 해야겠다고 고민했습니다. 그래봐야 알바 인생,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싶지만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딱 2년, 논문만 쓸 수 있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할까요? 생활비+자료비 등을 감안하면… 흠… 알바를 하면서 논문을 쓰고 싶진 않은데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네요.
03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일을 하며 아키비스트가 제 적성에 맞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조금은 진지하게 했지요. 현실이 아니니 약간의 로망도 생겼습니다. 어제 이 말을 했더니 마침 그 자리에서 있던 현직 아키비스트,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분이, 단박에 말렸습니다. … 전 퀴어락을 더 잘 운영하고 싶어 아키비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퀴어락을 더 잘 운영하는데 필요한 건 돈이라고 일갈. 그래서 로또를 사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할까 봅니다.
: 매우 적절한 결론. 음하하. ;;;;;;;;;;;;;;
04
5~10년 이내에 이루고 싶은 로망 중엔 퀴어락 사무실 한 곳에 책상을 마련한 다음 온 종일 책 읽고 글 쓰고 아카데미를 여는 것. ‘가능할까?’라고 묻지 않고 그냥 가능하게 해야죠.
05
아, 그나저나 퀴어아카데미 강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동동… ㅠㅠㅠ

나에게 하는 말: 모순적 상황

특정 분야의 전공자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다는 이유로 전문가라고 부를 수 없다. 아울러 우연히 남들보다 하나 더 아는 것이 있어 이를 말함은 그 정보를 나누려 함이지 그런 언설이 어떤 전문성 혹은 깊이를 담보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내게 하는 말이다.

나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전공 삼지만 내가 트랜스젠더 이슈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산하는 글의 90%는 트랜스젠더 이슈거나 트랜스젠더 인식론을 밑절미 삼지만, 난 더 많은 시간을 그저 빈둥거린다. 나는 성실하게 연구하지도 않고 깊이 있게 공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소개하며 트랜스젠더 이슈 전문가라는 식으로 얘기할 때, 트랜스젠더 이슈를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할 때 어떻게 반응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소개 언설에 내가 충분히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겐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나의 평가와 타인의 평가가 엇갈릴 때, 많은 경우 타인의 평가를 믿어야 하지만, 이 경우는 나의 평가를 믿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트랜스젠더 이슈를 꾸준히 연구하지 않았고 충분히 알고 있지도 않다. 나는 트랜스젠더 이슈 중 극히 일부, 오만하게 말해도 1/100,000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말까다. 나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나보다 더 잘 얘기하고 잘 아는 사람을, 한국에서만도 몇 명은 말할 수 있다. 그들에 비해 내 앎은 비천하여 언제나 부끄러울 뿐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내가 야기한 잘못이다. 상대가 나를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판단 기준이 달라 발생한 문제도 아니다. 내가 과도하게 겉멋에 빠져 있거나 허세를 떨어서 발생한 문제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마치 많은 것을 아는 체 떠들고 다녀서 발생한, 순전히 내가 자초한 문제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이 불편하다. 이 간극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옳다고 믿는 앎을, 고민을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난 앞으로도 계속 강하게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것은 내 무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자 내 목소리를 상대화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앎은 발화를 통해서만 상대화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발화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앎을 상대화하며 빼어난 성찰을 드러낸다. 난 발화하고 문제를 일으키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 인간이라서 더 많이 더 열심히 떠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가 고민이지만, 때론 이 고민 조차도 너무 늦게 찾아와서 사고만 친다.
… 그리고 이 글이 다소 모순적이란 것 안다. 모순적 상황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일상이겠지.

[개인적 기록] 바이 이슈 논쟁에 덧붙여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인간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힘을 잃는다는 사실을 어제 절감했다. 요즘 몸이 안 좋아 목이 꽉 막혔다. 간단한 대화만 짧게 할 수 있어 토론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못 하는 상황이 무척 답답했다.

어제 진정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바이 이슈가 나왔고 그때 말하고 싶었지만 못 한 얘기가 있어 개인적 기록 차원에서 남기는 글. 어제 논의 자리에 있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란 점에서 일기장에 쓰면 좋을 법한 글이지만 블로그가 (공개적으로 쓰는)일기기도 하단 점에서 그냥 여기에 쓰기로 한다.
바이를 둘러싼 논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기혼이반 이슈, 여성과 만나다가 남성과 결혼하는 여성의 이슈를 주로 다루며 바이와 기혼이반을 등치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이 이슈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 토론 시간에도 적잖게 나왔고 강사는 자신은 바이보다는 기혼이반 이슈를 좀 더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제목을 “바이”가 아니라 “기혼이반”으로 바꿨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이 이슈를 다루기 전까지는 매우 흥미롭고 탁월한 분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강숙자 논쟁을 이원젠더 규범에 대한 문제제기로 재구성하려한 부분은 참 좋았다. 그런데 이런 통찰이 바이-기혼이반 이슈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이와 기혼이반 이슈를 혼재하면서, 이전의 통찰이 사라지고 바이 이슈를 또 다른 이분법으로 환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것은 직관적 판단이다). 이런 의심은 나의 참조점에서 출발한다. 다른 많은 이슈에선 이분법 자체를 문제 삼으며 탁월한 성찰을 보이는 많은 비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가 트랜스젠더 이슈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이원젠더 규범을 강화하는 존재란 식으로 독해할 때가 있다. 심한 경우, 트랜스혐오 문헌을 적절한 참고문헌을 인용하며 트랜스젠더를 비난할 때도 있다. 다른 많은 이슈에서는 반짝거리는 성찰을 표현하면서 왜 트랜스젠더 이슈에선 그 성찰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어제 강의에선 바로 이 지점이 아쉬웠다. 앞 부분의 논점을 바이-기혼이반 이슈에 적용했다면 전혀 다른 글과 논의를 전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울러 남자에게 가는 것,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문제라면, 남자에서 여자로 혹은 여자에서 여자로 떠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면, 이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것이 레즈비언 범주, 레즈비언의 진정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니끄 위띠(Monique Wittig)는 레즈비언이 남성과 관계를 맺지 않는 존재로서 이성애 관계 외부, 여성과 남성 범주 외부에 있는 존재(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레즈비언은 남성과 관계를 맺지 않으니 여성이 아니라는 위띠의 주장은 매우 중요하지만, 위띠의 주장에서 레즈비언은 여전히 이성애주의 맥락에 위치한다.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관계의 외부’라는 또 다른 남성과의 관계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위띠 식의 논의는 바이와 트랜스젠더를 완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위띠 논의에서 바이는 이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매우 위태롭고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파트너가 혹은 나 자신이 남자 혹은 남성에게 가는 것이 레즈비언 범주 형성에 어떤 의미인지를 살폈을 때 레즈비언 범주 논쟁, 바이 논쟁, 트랜스젠더 논쟁을 더 복잡하고 흥미롭게 살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어제 강의에선 위띠 얘기가 안 나왔습니다. 위띠 얘기는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덧붙여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맥락에서 글을 쓰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핵심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이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맥락에서 논의를 전개한 강사에겐 무척 고마웠다…라고 쓰면 너무 수습하는 느낌이려나? ;;; 근데 바이 이슈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이슈였어도 나는 똑같이 고마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