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화하기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성애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굳이 동성애자가 결혼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다면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할까요? 라고 답하겠습니다.
이 얘기가 동성결혼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것은 아니고요. 주어진 조건 자체가 다른데, 이를 누락하고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지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애도, 애도를 애도함

어떤 의미에서 블로그를 잠시 비웠습니다. 한동안 제 블로그가 아닌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방치할 순 없으니까요. 다시 새로운 글을 채워야지요.
ㄱ.
지난 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영정사진을 향해, “밉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짐작했지만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한무지의 추모 자리를 마련했을 때 혼자 가장 많이 중얼거린 말은 “밉다”였습니다.
남은 것은 고인을 어떻게 회고하느냐겠지요. 이 세상에 살았음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ㄴ.
슬슬 기말페이퍼 기간이 다가옵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기에 설레기도 하고, 빠듯한 일정이겠구나 싶어 살짝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기쁨이 가장 크네요. 아마 이번 기말페이퍼는, 슬프고 또 조금은 고통스러운 기쁨이지 않을까 하고요. 기말페이퍼 주제 중 하나가 애도와 트랜스젠더/퀴어기 때문입니다.
ㄷ.
처음으로 캣베드를 주문했습니다. 다음주부터 사용할 예정인데 바람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괜한 소비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제가 사는 여건이 좀 바뀌면서 캣베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ㄹ.
동료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리고 죽음 의례를 또 한 번 겪으며 제 죽음을 상상했습니다. 역시나 가장 걱정하는 건 제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이더라고요. 바람은 누군가가 데려다 함께 잘 살겠거니 합니다. 지금은 저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적응하다보면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니까요. 제가 없으면 바람도 살 수 없다고 상상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 되거니와 제 착각일 뿐입니다. 제가 잘못 산 거기도 하고요. 바람에게 큰 죄를 짓는 거죠. 그래서 걱정은 제가 소장한 기록물입니다. 헌책방 혹은 폐지 모은 곳이 아니라 퀴어아카이브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는지…
ㅁ.
고인의 죽음 의례를 주관할 권리는 왜 원가족 혹은 혈연가족이 독점하는 것일까요?

조문 오신 분들과 함께 애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삼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故한무지를 추모하는 자리에 오신 분들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염려해주시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
아침 일찍 모여서 故한무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유족분들께서 경황없이 급히 해외 현지에 가셔야 했고 빈소도 마련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저희들은 고민 끝에 ‘한무지’라는 이름으로서의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를 월요일에 마련하였습니다.
활동가로서 ‘한무지’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한무지를 알고 지냈던 다양한 분들이 와주신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저희도 급작스러운 일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추모식을 충분히 잘 준비하지 못 하였음에도
많은 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고, 함께 격려해주셨고, 함께 눈물 흘려주셨고, 함께 그를 추억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에 대한 추억과 그의 고민과 의지가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찾아오신 분과 연락주신 분들이 보내주신 추모와 애도의 모든 마음을 유족분들께 최대한 고스란히 전달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지인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얘기에,
그리고 백여 분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을 보시며, 또 이름을 적지 않으신 분도 많이 오셔서 명복을 빌어주었다는 소식에
유족분들도 매우 감사해하셨고 많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모아주신 조의금 역시 소요 경비를 제외한 전액을 유족들께 전해드렸습니다. 당혹스런 일을 겪은 유족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고인은 유족분들의 뜻에 따라 아버님 산소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무지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