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선생님, 시간성과 위계

01

아… 갑자기 선생님이 보고 싶다.
안부를 물을 겸 겸사겸사 메일을 쓰는데, 내가 정말 석사과정을 공부한 학교와는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못 만나는 관계도 아니고, 먼 거리도 아닌데 이 복잡한 감정은 뭔지…
02
십대 이반에게 한때의 감정이라고 말하는 일군의 반응에 통상의 대응은 ‘그렇지 않다’, ‘그럼 이성애는 한때의 감정 아니냐’로 요약할 수 있으려나. 비이성애는 한때의 감정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이성애를 규범으로 삼는 인식 자체를 문제삼거나.
근데 문득, 십대의 동성애가 한때의 감정이라고 쳐도 그것이 무의미한 감정인가란 의문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는 어떤 감정이 일시적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여러 논쟁과 별도로, 일시적 감정은 무의미하니 연구할 가치가 없거나 고민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란 고민이다. 일시적이어서 연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가 연구할 주제는 무엇이지? 경제학 개념으로 ‘장기’는 우리가 죽고 난 다음의 시간이다. 그럼 일시적이지 않은 것, 즉 영구불변의 것만 연구하자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그리하여 무엇을 ‘일시적’이란 수식어로 폄하하는지, 시간성은 어떤 식으로 위계를 가지는지, 규범적 가치와 시간성은 어떻게 위계적 가치를 재생산하는지…
아.. 공부할 거리만 늘어가는구나.. 흐흐.

고양이 소식

01
봄이 오고 있다. 싫고 또 좋다. 집 근처 고양이에겐 그나마 괜찮은 시간이겠지. 여름이 오면 또 힘들까? 그래도 추위보단 괜찮겠지?
02
융은 아직도 밥을 먹으러 온다. 지난 겨울을 무사히 넘겨 다행이다. 하지만 처음 밥을 먹으러 왔을 때 만큼 자주는 아닌 듯하다. 가끔 만나기에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며칠 전엔 이틀 연속 융을 만났다. 융을 처음 만났을 땐 이틀 연속 만남이 새로울 것 없었지만 요즘은 드문 일이다. 더구나 그날 저녁엔 날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루스가 아니면 그렇게 울지 않으니 루스인가 했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계단을 올라가니 융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웅… 배가 많이 고팠구나…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만, 내가 주는 밥으로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여섯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현재 내가 주는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양이 두셋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양이겠지만. 그러니 다른 곳에서 밥을 찾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집 앞으로 오는 듯하다. 혹은 배 고플 때 저 집에 가면 사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03
루스는 여전히 활기차다. 한땐 아침 저녁으로 내가 밥을 줄 때면 몇 집 건너에 있는 옥상에서 자다가도 일어나 내게 다가오곤 했다. 물론 우리 사이의 거리는 50센티미터에서 1미터 사이. 나만 만나면 밥 내놓으라고, 혹은 캔사료 달라고 울기 바쁜 이 녀석은 자주 보이다가도 가끔은 한동안 안 나타나곤 한다. 뭐, 잘 지내고 있겠지.
04
융과 루스의 복잡한 관계란 뭐랄까, 묘하게 내가 당하는 기분이랄까?
집에 있을 때면 가끔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면 루스는 꼭 있고, 상대는 대부분 융. 융과 루스가 영역싸움을 한 것이겠지. 루스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려는 느낌이랄까. 이런 싸움이 먹히는 고양이도 있겠지만 융에겐 통하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융은 밥그릇 가까이에 있고 루스는 계단 근처에 있으니까.
그리고 난 이 둘이 싸우는 소리에 밖에 나갔다가 융을 만나면, 거의 항상 캔 사료를 준다. 오랜 만에 융을 만난 반가움도 있고, 처음으로 밥을 먹으러 온 고양이기도 해서 유난히 정이 더 간달까.
첨엔 그냥 반가워서, 그리고 여전히 융에게 애정이 있어 캔사료를 주는데… 최근엔 내가 당했다는 느낌이랄까. 둘이 싸우는 것처럼 일부러 소리를 지르면 내가 확인하러 밖으로 나가고 그리하여 캔사료를 획득하는 전략. 진실은 과연…
05
집 근처 고양이 중, 늘 붙어다니는 흰둥이 둘이 있다. 정확히는 등부분에 깜장 얼룩이 있는 흰둥이1과 얼굴만 젖소 얼룩 무늬인 흰둥이2. 이 둘은 다른 고양이와 달리 내가 밖으로만 나가면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선 얼굴을 확인하지만 사료 근처에선 얼굴 확인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재밌는 일이 있었다.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집에 왔다. 밥그릇이 비어 있기도 했고, 원래 저녁을 주는 시간이라 밥그릇을 채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야옹, 우는 소리가 들었다. 어딜까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서 흰둥이 둘이 달려오고 있었다. 흰둥이1은 조용히, 흰둥이2는 나를 보곤 야옹 울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집 근처, 이웃집 담장 근처까지 와선 흰둥이2는 얼굴을 내밀곤 조용히 야옹 울었고, 흰둥이1은 눈만 조금 보일 정도로 날 살폈다. 집에 들어갔다가 5분인가 10분 정도 지나 귀를 기울이니 사료를 먹는 소리가 들렸다.
아웅… 배가 많이 고팠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도망가면서도 내가 밥을 주는 인간인 건 아는구나 싶기도 했다.
06
내가 부자가 아니어서 안타깝고 부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사료를 많이 줄 수 없다는 건, 허기를 채울 정도 밖에 못 준다는 의미이자 다른 곳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못 찾으면 집으로 온다는 의미다. 아울러 내가 사료를 주지 않아도 살아 남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그래도 미안하고 다행이다.
07
며칠 전 저녁. 집 근처 골목을 도는데 발 아래서 뭔가 후다닥 숨었다. 동네 슈퍼마켓 앞이었고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아래를 보니 작은 고양이가 바르르 떨고 있었다. 덩치는 기껏해야 두어 달 되었을까? 비쩍 마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아… 이 험한 세상 무사히 살아 남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