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어제까지 이것저것 마무리하고 오늘은 쉬는 날. 아침부터 빈둥거리고 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쉴 예정. 통증에 관한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느긋하게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으히히. 이런 휴식도 내일까지. 물론 내일 오후엔 세미나가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월요일부턴 또 바쁘게 움직이겠지만 항상 바쁜 것은 아니고 이렇게 잠시 잠깐 시간이 나니 좋다.

잡담: 구금시설 결과보고서, 인생, 인건비

01
작년에 진행한 구금시설 인문강좌 프로젝트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하며 좀 괴롭다. 올해도 이 사업을 진행했다면 아마 즐거운 몸이겠지? 하지만 연속사업으로 지원했음에도, 섹슈얼리티가 왜 인문학인지 모르겠으며 인문학 확산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떨어졌다. 할 말은 많지만 그냥 생략하자. 인문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상당히 논쟁적인 이슈니까.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니, 누가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무척 아쉽다. 학생들의 반응이 고무적일 정도로 좋았기에 더 아쉽다.
02
난 내 인생이 느긋하고 여유롭길 바랐다. 그냥 프리터로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며 살길 바랐다. 물론 2006년 이전까진 대충 그랬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대충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인생이 변했다. 다 활동판에 얼쩡거리면서 생긴 일이다. 아아.. 그때 그 모임에만 안 나갔어도.. 흑흑. 하지만 그 모임이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지금처럼 살고 있겠지?
아무려나 1월 말, 사업공모 프로포절을 작성해서 제출했고,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이 끝나면 연구논문을 공저로 하나 써야 하고, 2월 중으로 새로운 프로포절을 하나 써야 한다. 2월에 있을 강의 준비를 해야 한다. 2월 말에서 3월 초에 또 다른 뭔가를 준비해야 하고(이것은 보조라 부담이 덜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ㅠ), 제출한 프로포절의 결과에 따라 또 다른 프로포절을 준비해야 한다. 퀴어락 일도 해야 한다. 여기에 생계형 알바도 해야 한다. ㅠㅠ
내 인생, 어디로 가나요? 크크크. ㅠㅠㅠ
03
프로포절을 쓸 때마다 불만스러운 점은 도대체 왜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는 것이냐!! 모든 사업은 사람이 직접 움직여야 하고, 그래서 전담 활동가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도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_-;; 생계는 알아서 알바로 해결하고 일은 열심히 하라는 건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떤 갈등의 순간: 생존과 확장

만약 조선일보에서 내게 원고청탁을 한다면 글을 쓸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글쎄… 고민이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몇 해 전 인기가 상당했던 첨바왐바의 텁덤핑이란 곡. 한국이라면 민중가요 혹은 운동권가요라 부를 법한 노래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멜로디만 좋으면 가사와 정치적 함의를 개의치 않는 시대, 이 노래의 인기가 신기할 것 없다. 그런데 이 노래와 관련한 고민은 위 영상의 후반에 나온다. 몇몇 대기업이 이 노래를 광고에 사용하겠다고 제안했고, 첨바왐바는 받아들인다. 물론 그렇게 받은 금액은 모두 해당 기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단체에 전액 기부했다.
“이런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몇 해 전 누군가가 내게 이 이슈를 질문했다. 그 시절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계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첨바왐바의 결정도 나쁘지 않다는 말도 못 했다. 지금이라면? 나도 첨바왐바처럼 할 거 같다.
다시 첫 번째 문단에서 던진 질문. 조선일보 같은 신문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원고청탁을 한다면 글을 쓸까? 쉽지 않은 문제다. 해당 신문의 논조를 비판하는, 아니, 아예 무관심한 나이기에 거절할 가능성이 클까? 세상 일이 이렇게 간단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를 애독하면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만 구독하는 집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울러 한겨레로 대표하는 어떤 정치성과 조선일보로 대표하는 어떤 정치성이,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 둘 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감수성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민한다. 평생가야 내게 원고청탁을 할 일 없을 어떤 지면에서 내게 원고청탁을 하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까를 고민한다.
고민은 많겠지만 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느낀다. 이런 판단엔 현재 트랜스젠더 이슈를 둘러싼 논쟁의 판이 너무 좁다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현재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논하는 판이 있기는 할까? 어떤 판이라고, 일군의 무리라고 말할 만한 규모가 있긴 할까? 사실상 없다. 트랜스젠더 이슈란 몰라도 무방한 그런 이슈일 뿐이다. 판이 너무 좁아서, 아직도 세상에 트랜스젠더란 존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라서, 종종 갑갑하다. 판이 좀 커졌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는 사람이 더 많길 바라는데,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적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말하는 지면이 한 곳이라도 더 늘기를 바라는 몸으로(비록 그 지면이 단발성이겠지만) 글을 쓰겠지?
아울러 어차피 트랜스젠더 이슈로 누군가가 글을 쓴다면 내가 쓰자는 심정이기도 하리라. 물론 내가 최선은 아니다. 나보다 관련 이슈를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을 나는 몇 명 알고 있다. 하지만 해당 언론에서 내가 추천하는 사람에게 원고를 청탁하리란 보장은 없다. 어정쩡한 사람에게 청탁하여 병리현상으로 설명하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혹은 불쌍한 존재에게 동정을 베풀자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글을 읽느니, 차라리 내가 쓰자는 심정도 있으리라.
2009년 인권위 사업을 반환했을 때,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이 장으로 있는 단체의 기금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고민을 조금 달리한다. 그 돈이 어쨌거나 누군가를 통해 쓰일 거라면, 가장 혹은 조금이라도 더 잘 할 수 있는 곳이 실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어떤 기관에서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어떤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사업자를 공모한다고 치자. 어차피 사업기금은 누군가가 수주하여 사용하리라. 그렇다면 누가 그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 단체에서 해당 사업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현 정부의 기금사업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은 걸까? 아님, 비록 현 정권은 너무 싫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과 함께 팀을 꾸려 해당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은 걸까? 내가 일을 잘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최선이나 차선이란 말도 아니다. 그럴리가. 그저 어떤 재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활용할 것인가와 관련한 고민이다. 그저 나의 블로그라, ‘나’를 앞세운 것뿐이다.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