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실내에 있다는 전제 하에. 흐흐.
나는 비 오는 날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비가 아주 조금 내린다는 전제 하에. ㅡ_ㅡ;;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한다, 비가 많이 오는데 밖에 있다면.

빗줄기가 내리는 날 바람이라도 불면, 정말 싫다.
바람이 꽤나 세게 불면 슬슬 짜증이 치민다.
오늘처럼 강풍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데 밖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몸에서 짜증이 넘쳐 흐를 것만 같다. 옷이 비에 젖은 게 아니라 짜증에 젖은 기분이 들 정도다.
강풍에 빗줄기로 골이 난 상태인데, 물이 가득 고인 도로를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면…. 애도.
위의 문장은 오늘 있었던 일. ㅡ_ㅡ^

너무도 진부한 감정이라,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감정

이제는 정년퇴임했지만, 수업이 어렵고 힘들기로 유명한 어느 교수는 박사학위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박사학위가 있어도 전임교수가 되기 어렵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 할 필요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연구성과의 측도라는 발표논문도 몇 편 안 된다고 한다.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그의 수업은 내용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하며, 대학원생이라도 어지간히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가기도 힘들다고 했으니까. 그가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이유, 그가 발표한 논문이 거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한다.

그의 제자가 진행한 수업을 들었을 때, 그와 관련한 또 다른 일화를 전해 들었다. (이 말은, 내 주변에 그의 수업을 따라다니는 팬이 있었다는 뜻이다.) 어느 날 어느 잡지에서 그에게 논문을 청탁했다고 한다. 그는 수락했다고 한다. 원고 마감 날 편집자가 그에게 찾아가니 사무실에 없더란다. 찾아 보니, 그는 소각장에서 그의 원고를 태우고 있었다고. 이유는 간단했다. 발표할 만한 논문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라면 어느 선에서 타협하고 발표 했을 테니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니, 현재의 부족함은 나중에 보충하리라 위안하며. 그런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난 지금 내가 쓴 학위논문을 잊으려고 아등바등이다. 마치 내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리고 누군가가 내 논문을 얘기하면 어떻게든 외면하고, 달라는 얘길 하면 회피한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작년 11월 정도만 해도, 난 논문을 좀 많이 찍어 널리 배포하리라, 다짐했다. 내용이 엉망이라 해도 누군가에겐 쓸모가 있을 테니까. 몇 가지 정보를 수정한 후, PDF로 변환한 파일을 이곳에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근데 그게 쉽지 않았다. 참 이상하지. 심사위원에게 제출할 원고를 완성하고 링제본하여 제출한 이후로, 나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동안 너무 몰입하여 거리를 두지 못 했기에 깨닫지 못 한 문제점들이 팝업창처럼 불시에 튀어나왔다.

내가 무슨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다. 시작은 창대했다. 시작할 때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기획은 과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 글은, 글쓴이의 의견이란 조금도 없는 허접한 발제문이지만 새로운 논의를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근데, 아니었다. 내 글은 내용 요약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뭔가 엉망진창이란 느낌만 남기 시작했다. 그냥, 그런 느낌 뿐이었다.

학제에서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몇몇 선생님들은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난 그 말을 관용어구로 이해했다. 내게 하는 칭찬은 모두 관용어구로 이해하는 나의 고질이 발동했다. 배배 꼬인 거다. 그 선생님들의 말은 믿지만, 그것이 내게 해당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널리 배포하겠다는 만용은 간 곳 없고, 숨고 싶은 몸으로 변했다. 논문제본을 최소한으로 했고 그 마저도 도서관을 제외하면 심사위원을 포함해도 극히 적은 부수만 배포했다. 심지어 웹 공개도 동의하지 않았다. 웹 비공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정보는 공유할 수록 좋다고 믿지만, 청탁 받아 쓴 매우 부족한 글도 이곳에 곧잘 공개하는 나지만, 논문만은 차마 공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이런 나의 태도는 논문후유증에 따른 진부한 반응이란 것을 안다. 적잖은 이들이 논문을 쓰고 난 후 우울증에 빠진다고 했으니, 나의 상태 역시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 걸까? 시간이 지나면 다 우스운 일이리라.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어 부끄러우리라. 하지만 이건 시간이 지난 후의 상황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래는 미래고 현재는 현재.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

오랫 동안 이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있었다. 써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논문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분들에게 정황을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하니까. 다른 한편으론 현재의 내 상황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으니까. 이 글을 시작하며 언급한 어느 교수처럼 내가 완벽주의라서가 아니다. 그가 느꼈을 어떤 부끄러움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발표한 적 없는 그의 글은 무척 빼어났겠지만, 나의 글은 그 누구에게도 부족하다는 데 있다.

+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첨언하면, 논문때문에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부끄러운 글이라 차마 공개할 수가 없다는 의미랍니다. 흐흐 ;;;

유튜브, 민족국가 (혹은 청탁?)

4월 9일부터 유튜브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하고 사용자의 지역을 한국으로 설정할 경우 게시판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는 소식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요. 많은 블로그와 주류 언론이 이를 다루고 있는데요. 진보연 하거나, 2MB와 한나라를 비판하면 진보라고 믿는 이들 중 일부는 구글과 유튜브를 찬양하기 바쁘더군요. 한겨레는 유튜브를 표현의 자유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전 ‘정말 한겨레다운 기사’란 조롱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요. 또 다른 일부는 인터넷 실명제를 비판하지만, 구글의 이번 행보가 자사 이익을 위한 것이며 표현의 자유는 명분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고요.

몇몇 블로거들은 유튜브에서 지역설정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것을 자신의 국적이 바뀌는 것으로 표현했죠(유튜브를 사용하는 동안은 ‘한국사람이 아니다’는 식으로). 청와대에서 유튜브를 사용하며 한국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글로벌’로 설정하면 미국서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고요)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매국이란 뉘앙스로 비난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 이 사안을 민족국가, 국경, 국적, 사이버공간, 서버가 있는 지역과 사용자가 있는 지역 간의 간극, 사이버시공간과 같은 주제어로 상당히 흥미로운 논의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관련 블로그 글, 신문기사들을 모으고 있는데요. 혹시 이 주제로 글을 쓰실 의향이 있으신 분 없으세요? 자료는 제공할 게요. ㅠ_ㅠ

제가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 역량을 벗어나는 주제라서요. ㅠ_ㅠ 어떤 글을 쓰기 위해선 아이디어와 함께 그 논의를 전개할 내공이 필요한데, 제게 아이디어는 있다 해도 내공은 없거든요. 일례로 민족국가/민족주의와 관련해서 제가 무슨 고민을 했겠으며, 했다고 해도 얼마나 했겠어요? 그래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제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 거죠. 제가 쓸 수 없으면 다른 누군가라도 써줬으면 하는 욕심이랄까요? 흐흐. 공동작업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염치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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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보너스(본문과는 상관없음).
http://www.youtube.com/watch?eurl=http%3A%2F%2Fkldp.org%2Fnode%2F104658&feature=player_embedded&v=rmkLlVzUBn4&gl=US
(트래픽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링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