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거의) 완료

기억하기로 현재 사는 방의 계약서상 평수는 10평 정도란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이럴 때의 평수는 올림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실 평수는 8~9평 정도일 듯. 아울러 옥탑방의 뒤쪽엔 주인집에서 사용하는 창고가 붙어있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이 10평 정도라는 건지, 작은 빌라의 옥상에 지은 건물의 전체 넓이가 10평 정도란 건지는 잘 모른다. 방을 계약할 때 이런 걸 따져 물은 적이 없어서.

방은 나름 부엌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 선심 써서 각각 1평 정도라고 치자. 그럼 내가 사는 옥탑방에서 방의 크기는 올림해서 5평 정도일 듯하다. 5평 정도의 방에, 15년은 되었을 법한 옷장이 하나있다. MDF 책장 서른 개와 매트리스가 하나 있다. 책장으로선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공간배치엔 효과적인 MDF 책장엔 책과 CD가 들어가 있고, 방바닥엔 책이 세 겹으로 쌓여있다.

얼추 열흘 전부터 학과 사무실에 두고 사용했던 책장과 책을 옮기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 바짝 옮기면 가능할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 MDF 박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박스를 3개 붙인 것 같은 책장 세 개와 그와 같은 4단 책장 하나를 옮겼다. 추가로 4단 책장을 하나 더 사고 180cm 정도 높이의 책장을 추가로 하나 더 샀다. 그리고 중형 크기의 여행용 가방에 책을 담아, 학과 사무실에서 玄牝까지 왕복 30분 거리를 오갔다.

첨엔 몇 번을 오갔는지 세었지만 이젠 기억도 안 난다. 그냥 20번은 더 옮긴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아니다. 꾸역꾸역 옮기다보니 이제 오늘 저녁에 포장이 끝난 짐만 옮기면 과사에서 玄牝으로 이사는 끝난다.

이틀 바짝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혼자서 짜증도 냈다. 옮겨도, 옮겨도 끝이 안 날 것 같았다. 책을 옮기면서 왜 이렇게 짊어지고 사나 싶었다. 책장과 책을 둘만한 곳마다 책장과 책이 쌓여있다. 넓지 않은 방에 미로가 생겼다. 방문에서 옷장까지 가는데 두 번을 꺾어야 한다. 어떤 책은 새로 들인 책장 뒤에 가려져 새로 이사를 하기 전까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형상이다. 이러다보니 이젠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사가 가능하긴 할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올 때, 책만 대충 사과박스로 3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두 배는 될 법하다. 이젠 책을 새로 들일 곳이 없다. 근데도 며칠 전 영화관에 갔을 때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만화책을 두 권 샀다. 이것도 벽(癖)이다. 도벽(盜癖)과 같은 수집벽. 일단 사고 보는 거다. 일단 모으고 보는 거다.

며칠 전 어느 블로그에서 책 3,000여 권을 버렸다는 글을 읽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만, 버릴 수 있는 책이나 잡지는 이미 버렸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은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곤란할 따름이다. 모두 지금 당장 읽지는 않아도 전공과 밀접한 책들이다. 나도 책을 버릴 수 있으면 좋겠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습관이 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경우는 드물다. 사서 쟁여두는 삶이다. 징글맞다. 어젠 쌓여있는 책들을 보다가 질려버렸고, 조금 소름끼쳤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렇게 움켜쥐고 있는 책이나 자료 중에 이제는 구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는 점이다. 玄牝에 있는 자료 중엔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엔 가치가 있을 성질의 것들도 적잖아 있다. 위로라면 위로다.

[영화] 키친: 배타적이지 않은 관계를 모색하기

[키친] 2009.02.07.09:20. CGV 구로 10관. (좌석은 없음. 조조라 아무 곳에 앉았음. -_-;;)

#스포일러를 배제하며 쓰다보니 영화의 기본 전제를 설명하지 않는 부분도 있네요.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이 스포일러일 수도…-_-; 흐흐. 😛

이성애 결혼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한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두 남성은 갈등한다. 1) 만약 이 이야기가 두 남성간의 싸움 끝에 어느 한 남성이 양보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런 결론이라면 소설이건 영화건 만들지 않는 게 좋다. 두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성거래건, 여성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두 남성간의 애정이건 간에 태만한 내용이긴 마찬가지다. 어지간히 잘 만든 내용이 아니라면 그냥 접는 게 좋을 듯. 2) 만약 이 이야기가 남성들끼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어느 한 남성을 ‘선택’하는 내용이라면? 조금 다른 내용일 것 같지만 진부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건 ‘선택’이 아니다. ‘선택’으로서 한 사람을 고른다 해도 차이는 없다. 배타적인 연애관계란 설정 때문이다. 만약 이 선택이 ㄱ과 ㄴ간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ㄱ과 ㄷ, ㄴ과 ㄷ 간의 관계를 종식시키는 방식이라면, 태만할 뿐이다. 3) 그럼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고, 배타적인 연애관계도 아닌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음식이란 소재를 부각하는 영화, [키친]은 앞 문단에서 쓴 내용의 고민 속에서 출발하는 듯 하다. 극장에 가기 전까지 내가 이 영화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단 하나: 결혼관계에 있는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난 궁금했다. 감독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 영화를 읽었기에, 내게 이 영화는 감독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순전히 나의 독해 방식, 나의 관심이 만들어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기획 속에서 주인공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말일 뿐이란 느낌이 내게 강하게 남아 있다. 배우가 직접 움직일 여지가 별로 없다는 느낌. 감독의 문제의식이 내게 너무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전혀 다른 고민 속에서 이 영화를 읽었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을 테다.

감독이 내린 결론이 1)이나 2)였다면 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진부한 서사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으니까. 감독은 3)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래서 음식을 얘기한다. 섞일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재료로 멋진 음식이 만들어지듯, 감독은 조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조화를 찾아낸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상인(김태우 분)이 음식점 개장을 위해 음식평론가들 앞에서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5명의 평론가 중 한 명이, 처음엔 조화를 못 찾아 자신의 색깔을 충분히 못 내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상인은 모래(신민아 분)와 두레(주지훈 분)가 연애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상당한 갈등이 발생하는 건 말하나 마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다시 음식평론가들 앞에서 요리를 선보인다. 처음에 비판했던 사람이 이번엔 상인에게 조화를 찾았다고 평한다. 이 평가. 음식평론가의 마지막 평은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내리는 평가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터. 자신의 결론에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 만족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을 평론가의 입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감독,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근데 이야기의 개연성은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개연성이 부족하기에 상상할 여지가 많고, 지레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뭔가 어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from gos

내용 없는 주절주절

일을 마무리 짓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장소는 학과 사무실. 켁. 학부 시험기간에도, 대학원 기말보고서를 쓸 때도, 심지어 학위논문을 쓸 때도 11시를 넘겨서까지 학교에 있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계는 새벽 1시. 아픈 눈을 부비며 玄牝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 있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건 아니었다. 결국 오늘 회의 준비는 많은 실수와 부족함을 노출한 상태로 끝났다. 그래도 한숨을 돌린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듣고 싶은 강의를 못 들어서 너무 속상했다. 일을 마무리 짓고 강의 들으러 가려는 바로 그 즈음 일이 늘어났다. 물론 상당히 큰 행사에 해당하는 회의를 앞두고 강좌를 들을 수 있다고 기대한 건 나의 어리석음이긴 하다. 그래도 속상했다. 공부 좀 하게 잠수라도 탈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_-;; 흐흐. 결국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이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요즘 눈이 아프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불면증은 아니고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다. 눈이 따갑고 아픈데, 그리고 너무 졸린데 잠이 안 와 늦게까지 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말거란 건 안다. 근데 눈을 비비다가 찌르는 듯이 아픈 경우는 처음이라 잠깐 놀랐다. 뭐, 일주일 안에 없어 진다에 한 표.

이러나저러나 최근의 깨달음 하나. 난 쉴 팔자는 아닌가 보다. 이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별 수 없다. 그냥 내 팔자려니 하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