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친: 배타적이지 않은 관계를 모색하기

[키친] 2009.02.07.09:20. CGV 구로 10관. (좌석은 없음. 조조라 아무 곳에 앉았음. -_-;;)

#스포일러를 배제하며 쓰다보니 영화의 기본 전제를 설명하지 않는 부분도 있네요.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이 스포일러일 수도…-_-; 흐흐. 😛

이성애 결혼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한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두 남성은 갈등한다. 1) 만약 이 이야기가 두 남성간의 싸움 끝에 어느 한 남성이 양보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런 결론이라면 소설이건 영화건 만들지 않는 게 좋다. 두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성거래건, 여성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두 남성간의 애정이건 간에 태만한 내용이긴 마찬가지다. 어지간히 잘 만든 내용이 아니라면 그냥 접는 게 좋을 듯. 2) 만약 이 이야기가 남성들끼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어느 한 남성을 ‘선택’하는 내용이라면? 조금 다른 내용일 것 같지만 진부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건 ‘선택’이 아니다. ‘선택’으로서 한 사람을 고른다 해도 차이는 없다. 배타적인 연애관계란 설정 때문이다. 만약 이 선택이 ㄱ과 ㄴ간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ㄱ과 ㄷ, ㄴ과 ㄷ 간의 관계를 종식시키는 방식이라면, 태만할 뿐이다. 3) 그럼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고, 배타적인 연애관계도 아닌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음식이란 소재를 부각하는 영화, [키친]은 앞 문단에서 쓴 내용의 고민 속에서 출발하는 듯 하다. 극장에 가기 전까지 내가 이 영화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단 하나: 결혼관계에 있는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난 궁금했다. 감독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 영화를 읽었기에, 내게 이 영화는 감독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순전히 나의 독해 방식, 나의 관심이 만들어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기획 속에서 주인공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말일 뿐이란 느낌이 내게 강하게 남아 있다. 배우가 직접 움직일 여지가 별로 없다는 느낌. 감독의 문제의식이 내게 너무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전혀 다른 고민 속에서 이 영화를 읽었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을 테다.

감독이 내린 결론이 1)이나 2)였다면 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진부한 서사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으니까. 감독은 3)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래서 음식을 얘기한다. 섞일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재료로 멋진 음식이 만들어지듯, 감독은 조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조화를 찾아낸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상인(김태우 분)이 음식점 개장을 위해 음식평론가들 앞에서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5명의 평론가 중 한 명이, 처음엔 조화를 못 찾아 자신의 색깔을 충분히 못 내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상인은 모래(신민아 분)와 두레(주지훈 분)가 연애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상당한 갈등이 발생하는 건 말하나 마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다시 음식평론가들 앞에서 요리를 선보인다. 처음에 비판했던 사람이 이번엔 상인에게 조화를 찾았다고 평한다. 이 평가. 음식평론가의 마지막 평은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내리는 평가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터. 자신의 결론에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 만족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을 평론가의 입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감독,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근데 이야기의 개연성은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개연성이 부족하기에 상상할 여지가 많고, 지레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뭔가 어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from gos

6 thoughts on “[영화] 키친: 배타적이지 않은 관계를 모색하기

    1. 저도 쌍화점은 아직 못(?, 안?) 봤어요. 흐흐. 첨엔 무척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소문이 무성할 수록 관심이 떨어지더라고요… 흐흐.
      키친은 감독의 고민이 특히나 매력적인 영화라고 느꼈어요. 헤헤

  1.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님의 글을 보고 공감이 가는 리뷰이기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혹시 이글을 펌을 해도 될까요?
    다른 곳에다 올리고 싶어서요.
    답글좀 주실수 있으세요?

    1. 공감가는 리뷰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폄보다는 링크 거는 정도는 어떨까요? 제가 오탈자나 어색한 문장을 추후에 수정하는 경향이 있어서요.
      이왕이면 어디에 올리는지 알려주시면 더 고맙고요. 🙂

      링크 주소는
      http://runtoruin.cafe24.com/tt/index.php?pl=1408
      이에요. 🙂

  2. 영화를 볼 것 같진 않고, 그냥 루인이 줄거리를 다 파헤쳐서 설명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읽으면서 드는 건 저의 태만일까요-ㅅ-;;

    1. 저의 태만한 태도가 빚은 결과랄까요… 흐흐. 사실 줄거리를 파헤치기 귀찮아서 적당한 선에서 멈췄어요… 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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