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옮긴 글이 없어서..

한글로 옮긴 글이면 적어도 100명은 읽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한글로 옮긴 글이 없어 1명이 읽을까 말까한 상황. 물론 한글로 옮긴 글이라면 나 역시 읽기도 편할 테고. 애써 영어로 읽는다고 몇 배의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테고. 좋은 번역은 바라지도 않고,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번역이라도 감지덕지다. 영어와 대조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사람이라면 대조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몫으로 남기고, 전반적으로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지만 알고 싶은 경우도 있잖아. 저자의 문체와 뉘앙스는 살짝 무시하고 적당히 풀어쓰고 선후 관계도 적당히 재배치해서 읽기 쉽게 만든 번역. 문체와 뉘앙스를 살리면서 읽기도 쉬운 번역이면 더 좋겠지만….
(아님 누군가 초벌 옮김을 공개하면, 위키처럼 여러 사람들이 수정할 수 있는 방식도 좋겠다.)

특히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선 더 그래. 이런 글은 한글로 옮기면 무척 좋을 텐데, 그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텐데… 하는 아쉬움. 그저 읽을 수만 있는 수준의 번역이라도 있으면 하는 아쉬움. (결코 내가 하겠다는 말은 안 한다. -_-;;)

책과 논문을 읽다가 이건 나중에 번역해서 배포하면 좋겠다 싶은 글이 몇 있다. 그럼 그 글이 필요한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될 텐데 싶다. 한글로 옮기기만 하면 100명은 읽을 수 있는 걸 1명이 읽을까 말까인 상황이란 건 정말 아니니까.

물론 지금이니까 이것저것 번역하고 싶은 게 많은 거다. 나중엔 딴 소리 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언제?” 라면서. 흐. 아님 “요즘 너무 바빠서….”라고. 흐흐 -_-;;

근데 정말 아쉽다.

+
저작권이 만료되었거나 웹으로 공개된 자료를 한글로 옮기는데 그걸 공개해서 위키처럼 오역인 부분은 여러 사람이 고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추가+
다른 자료 찾다가 유사한 성격의 사이트를 찾았다. 이미 있네-_-;;
(여기)

[세번째 상상더하기] 익숙한 이방인, 이주민씨 이야기

<반차별공동행동> 2008 세번째 반차별 상상더하기
“익숙한 이방인, 이주민씨 이야기 – 이주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

대학에서 유치원까지, 도시에서 농촌 마을까지… 이제는 내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얼굴, 이주민. 그러나 다문화 사회, 이주민 100만명 시대라는 거창한 말들이 무색하리만치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이주’와 ‘이주민’에 경직되어 있습니다. 반차별공동행동은 이번 상상더하기에서 함께 그 차별과 경계 너머의 세상을 열고, ‘이주’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풀어놓고자 합니다!

프로그램
1부 : 이주를 둘러싼 경험과 이야기
2부 : 이주를 보는 또 다른 시선, 불꽃 튀는 접점들

일정 : 10월 1일(수) 오후6:30~9:30
장소 : 서강대학교 인문관 234호 (약도 http://www.sogang.ac.kr/about/campus/guide.php)
주관 : 반차별공동행동 (http://chachacha.jinbo.net)

動, 名, 옥편이거나 왕편이거나

動(움직일 동)은 重(무거울 중)과 力(힘 력)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重은 人(사람 인)과 東(동녘 동)과 土(흙 토)로 이루어져 있다. 東이 비록 동쪽을 뜻할 때가 많지만 여기선 관통한다는 뜻이다. 重은 사람이 발로 지면을 쿵쿵, 꿰뚫을 기세로 밝고 무게를 가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重에 力을 더한 動은 원래 발로 땅을 밟는 동작을 뜻 했고, 발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동작을 뜻 했으나 나중에 전반적인 움직임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원을 따라가면 動은 한 자리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動적인 상태는 한 자리에서 꼼지락 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모든 움직임, 흐름은 제 자리를 유지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움직임과 정착은 동일한 의미일 수도 있다. (난, 수학에서 사용하는 벡터를 떠올렸지만, 나도 잘 모르는 벡터를 끌어들이고 싶진 않다.)

名(이름 명)은 夕(저녁 석)과 口(입 구)로 이루어진 글자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입으로 “아아아~~~” 소리를 내어 자기가 그곳에 있음을 남에게 알리는 일을 나타낸다. 밤에 자동차를 타고 꼬부랑길을 가다보면 불빛을 켰다 껐다를 반복해서 차가 있음을 알리는 것과 같고, 한 밤에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리는 것과 같다. 나의 위치는 변경 가능하단 점에서 名이 고정된 위치를 가정한다고 볼 수 없고,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마치 어렴풋이 위치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신호는 대개 짐작할 수 있되 명확하게 파악할 순 없다는 점에서 名이란 한자는 그 의미에 꽤나 충실하다. 타인의 이름, 어떤 사물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마치 그 사람이나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이다. 비오는 날 버스를 탔을 때의 유리창, 바깥이 흐릿하기만 한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뭔가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명사(noun, 名詞)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한다. 동사(verb, 動詞)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품사로,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한다. 영어논문을 읽다보면 어떤 개념어를 설명하고는 “○○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고 표현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정도? 영어의 어원에 따르면 이런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영어의 어원은 몰라서 생략-_-;;), 내 멋대로 해석하는 動과 名은 서로 대립하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뜻을 보완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_-; 흐.
(참고한 ‘왕편’은 금성판 활용옥편 1992년 판)

얼마 전에 옥편(근데 난 “왕편”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이 생겼다. 근래에 생긴 물건 중 가장 기쁜 물건이다. 3년 전 전자사전을 샀을 때 다른 건 다 참을 만 했는데 한자사전이 너무 허술해서 아쉬웠다. 물론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도 여러 모로 아쉽긴 마찬가지지만, 한자사전은 특히 심했다. 名을 찾으면 “이름 명”이란 설명만 나와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한자사전도 마찬가지여서 아쉬웠다. 動과 名으로 장난친 것처럼 난 아주아주아아아아아아주 가끔 이런 식의 장난을 좋아한다. 근데 전자사전이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한자사전엔 상세한 설명이 없다.

어릴 때 왕편을 사용하는 법, 한자를 찾는 법을 배웠는데, 참 유용한 배움이다. (←결론이 왜 이래? 새삼스럽진 않지만-_-;;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