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최고의 것들

사실 이번엔 2008년도 베스트나 2008년도 정리와 같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딱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상반기와 하반기의 일상이 너무 빤해서. 근데, 키드님 블로그에서 베스트 3를 읽다가, 다른 건 몰라도 베스트 삽질만은 꼭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하는 2008 최고의 3.

1. 최고의 책 3
미야베 미유키. 『스나크 사냥』.
온다 리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
천운영. 『그녀의 눈물 사용법』.

: 미미 여사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 중에서 무얼 고를까 고민했다. 마무리만 빼면, 『스나크 사냥』이 단연 돋보인다. 온다 리쿠 역시 고민했다. 그냥 작가 이름만 쓸까? 그래도 하나 고른다면…. 천운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는 맛이 난다. 예전엔 첫 인상이 너무 강했다. 이번 작품은 다른 듯 같은 느낌이다. 난 아마, 천운영의 작품은 계속 기다리며 읽을 거 같다.
그 외에도 『가위 들고 달리기』, 『나비가 없는 세상』으로 고심했다. 올 초에 미미 여사와 온다 리쿠에 푹 빠져서, 이 둘의 작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 권에서 빠졌을 뿐이다.

2. 최고의 영화 3
『스위니 토드』
『여자를 사랑한 트랜스젠더』
『블러드 시스터즈』

: 그러고 보면 올해는 영화관에 별로 안 갔다. 덕분에 세 편을 고르긴 쉬운데, 뭔가 아쉽다. 사이보그 『스위니 토드』는 흥미롭다. 영화의 분위기도 인상적이었고. 『여자를 사랑한 트랜스젠더』는 잘 만든 다큐를 보는 재미 이상이었다. 나는 이 다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블러드 시스터즈』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질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질투. 그래서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3. (올해 발매 앨범 중)최고의 앨범 3
Portishead 『Third』
백현진 『반성의 시간』
오지은 『지은』

: 정말 10년이 걸린 앨범이 있다. 포티쉐드가 그렇다. 이 정도 앨범이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납득했을 거다. 백현진은, 가사가 좀 불편하다. 그런데, 난 이런 목소리에 끌린다. 요란하지 않게 단조로운 악기 구성이 빚어내는 빼어남. 이 앨범 역시 2003년에 처음 녹음을 시작했으니 오래 걸렸다. 오지은은, 사실 2007년에 나왔다. 근데 나는 2008년에 나온 판본을 샀으니까…. 말도 안 되지만, 뭐, 그렇다. 흐흐. 강허달림과 경합했는데, 오지은을 선택했다. 오지은을 선택하고 싶어서, 살짝 생떼쓰는 거다. 흐흐.
포스트 록이란 말에 로로스의 『팍스』를 샀는데, 시우르 로스(Sigur Ros) 색깔이 너무 많이 나서 잠시 당황했다. 물론 로로스만의 색깔이 있지만, 난 시우르 로스보단 모과이 쪽이 좀 더 좋다는. 흐흐. 그래서 아쉬움을 달래며 제외했다. 김광진과 시와도 기억할 필요가 있네. The Music은 기대치에 못 미쳐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문제였달까. 흐흐.

4. 내게만 최고의 리이슈 음악 5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Experience)
닉 케이브(Nick Cave)
시인과촌장

: 앞의 셋은 말이 필요 없고. 특히 핑크 플로이드는 거의 두 달 동안 얘들만 들은 적도 있다. 흐. 닉 케이브는 최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좋다.
그리고 시인과촌장. 1990년대엔 “가시나무”가 수록된 『숲』이란 앨범만 들었다. 그러다 최근 『숲』 이전에 나온 『푸른 돛』과 2000년대에 나온 앨범 『Bridge』를 듣고 있다. 세 장의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내면의 고통과 불안은 때로 신을 찾게 한다는 걸,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한다. 사실,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김승옥의 수필집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를 읽고 있다. 김승옥은 시인과촌장의 하덕규와 비슷한 삶인 거 같다. 내면의 고통 그리고 종교에 귀의와 구원. 이젠 이런 삶이, 이런 욕망이 조금은 납득이 간다.

5. 최고의 공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십대 이반 상담 공간 마련을 위한 후원 콘서트.
: 말이 필요 없다. ㅎㅊㅇ님의 드랙퀸 공연을 봤다는 것만으로 이 공연은 최고의 공연이다. 후후.

6. 최고의 삽질
논문
: 정말 2008년 최고의 삽질은 논문이다. 푸하하. 전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걸까요?

[도서관 전쟁], 검열, 미디어 악법

살다보면 우연히 현재 상황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텍스트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블로거뉴스를 뒤적이다, 『도서관 전쟁』이란 제목의 애니를 소개받았다. 시대는 다소 미래. 어느 나라의 정부가 “미디어 양화법”이란 법을 만든다. 미디어 양화법은 모든 서적들을 검열해서 위험하다 싶은 책들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허가하는 도서만 도서관과 서점에 진열할 수 있다. 이에 각 지역 도서관들이 저항하고, “도서관 자유법”인가 하는 법을 통해, 사람들이 검열 없이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소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연방정부와 지역도서관의 싸움이랄까. 책을 검열해서 회수하려는 국가와 검열 없이 사람들이 모든 도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도서관 사이의 싸움. 이것이 도서관 전쟁이다. 제목의 “전쟁”은 은유가 아니라 진짜다. 책을 지키기 위해 방위군을 만들고, 실제 총을 겨누며 싸운다. 물론 시민들은 다치지 않게 도서관 내에서만.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애니를 받아서 보았다. 뭐, 불편한 부분도 있고, 진부한 내용도 있고, 결론도 빤하긴 하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만 볼 수 없었다. 애니의 한 에피소드가 끝나고 엔딩 곡이 흐르기 전엔, 이 애니는 어디까지나 허구지 실재가 아니라는 설명이 나온다. 일본에선 이게 허구일 수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허나 적어도 한국에선 작금의 현실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요즘 다시 한 번 촛불이 타오를 거란 얘기가 많이 오간다. 아니, 이미 타오르고 있다. MB는 미디어 관련법을 개정해서 재벌들이 방송사를 소유할 수 있게 하려 애쓰고, 조중동이라 불리는 언론들은 언론노조의 파업을 비난하기 바쁘다.

나는 아침마다 라디오를 듣는데 MBC는 사활을 걸고 있는 거 같다. 다행인지,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MBC의 간부들과 조합원이 아닌 이들도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지지하고 있다니 분위기는 좋은 거 같다. 물론, 노조원들이 자신들은 임금협상과 같은 이유로 파업을 하는 건 아니란 식의 언설은 불편하다.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임금협상이나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다른 노동자들의 파업에 “경제 위기” 운운하며 부정적으로 보도한 적이 많으니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궁색한 변명 같고, 작업환경 개선이나 임금협상을 위한 파업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은 중요하다.

어제 타종식을 했다고 한다. 그것을 KBS에서 중계도 했단다. 사실 이런 거 하는 줄 몰랐다. -_-;; 근데 그 타종식 중계가 참 웃겼단다. 타종식 주변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소리가 울렸지만, 방송에선 한 마디도 안 나갔다고 한다. 방송에선 오직 사회자들과 타종식만 보여줬다고 한다. 알고 보니, 종각의 타종식인데, 주변 모습은 대학로의 것, 타종은 종각이 아니라 임진각의 것이란 의혹이 있다고 한다.(출처: http://medwon.egloos.com/2233273) 비교화면을 보면, 확실히 카메라가 보여주는 모습도 다르다.(출처: http://sattonara.tistory.com/35) 이런 조작을 통해 주변의 시위 모습과 시위대의 함성이 방송에 안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은 의혹 수준인 듯하다. 다만, 이런 의혹의 대부분이 진실이라, 의혹이라는 부연 설명이 물증 같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도서관 전쟁』의 결론은 간단하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다른 누군가의 사전 검열 없이 ‘나의 선택’으로 읽을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 물론 이런 애니가, ‘지금은 애니의 상황 정도는 아니니까 지금은 괜찮아’라는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검열을 주장하는 입장과 검열에 저항하는 입장이라는 다소 단순한 구도(물론 이 둘 사이에 다른 입장이 있긴 하나, 결국은 어느 정도의 검열을 주장한다), 검열에 저항하는 이들은 마치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이 애니의 명백한 한계다. 한계와 문제점은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더 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애니가 오늘날의 한국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섬뜩했다.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애니로 만든 다큐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초승달과 샛별과 라디오

어제 초저녁. 부끄러운 표정의 초승달이 떴다. 그리고 그 옆에 샛별. 달과 수성이 어울린 저녁 하늘.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 바람이 차가왔다. 손이 시렸다. 종종 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했다. 텅 빈 느낌의 학교. 나는 여전히 다른 날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라디오에선 손석희가 신년 특집을 방송하고 있었다. “2009년은 □다.”로 청취자들의 문자를 받았고, 그 내용을 소개했다. 누군가가 “2009년은 손석희다.”고 보냈다. 진지하지만 때로 웃음이 나는 방송처럼, 그런 한 해를 바라는 의미라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부연했다. 손석희는 자신의 개그를 인정해주는 거냐며 좋아했다. 나는 깔깔, 웃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는 진지함보단 개그에 승부를 거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유머가 썰렁하단 걸 안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그를 한다. 그리고 그의 개그 코드를 모르는 인터뷰참가자들은 당황한다. 가장 웃긴 건, 바로 이럴 때다. 농담과 개그라곤 절대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농담이나 개그를 해서 상대방이 당황하는 찰나에 생기는 공백. 박장대소할 만한 웃음도 좋지만, 나는 이런 공백에서 발생하는 개그가 좋다.

라디오가 아니었다면, 오늘은 휴일이거나 일요일이라 착각했을 거 같다. 내가 머무는 공간엔 달력이 없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도착하면 그제야 깨닫는다. 오늘이 평일인지, 휴일인지를. 내게 요일은 평일과 휴일이란 구분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생활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 나의 삶은 언제나 단절과 이음 속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이어나간다.

이 추운 날에도 밖에서 밤 샌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주 짧은 문장으로만 이들을 기록한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초승달을 바라볼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한 동안은 쉴 예정이니까. 힘든 적은 없지만, 그냥 이것저것 정리하고 싶은 게 많다. 간사를 맡은 일이 있어 자꾸만 움직여야 하지만, 그래도 한 동안은 멍하니 지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