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 음악 속으로 도망쳐 숨어 있기엔 내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봐주는 날은 있어도 결국은 끌고 간다. 나는 기꺼이 끌려간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도, 나는 할 일을 해야 한다. 꺽꺽대며 가픈 호흡을 밭으면서도 나는 끌려가길 자처한다. 끌려가다보면 다른 길이 나온다. 지금 경도된 상황으로 인해 놓치고 있는 다른 길. 다른 세상. 식각한 곳이 만드는 반사각의 조명도가 약해지는 곳.
나와 [Run To 루인]과 조각과
뭔가 자꾸만 쓰고 싶은데 쓸 내용이 없을 땐 뭐라도 쓰고 지우길 반복한다. 하루 종일 이 상태다. 뭔가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블로깅을 할 땐 키보드로 바로 쓰는 습관이라 모든 글은 사라지고 없다. 다행이다. 만약 혼자 읽는 일기장이었다면 상당히 많은 글을 썼겠지. 일기장이었다면 아무 글이나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썼을 테다. 이곳에 쓰는 두서없는 글은 그나마(!) 정리를 한 글이다. 믿거나 말거나-_-; 나는 이곳, [Run To 루인]이 일기장이길 바라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이제 이곳은 일기장이라기 보단 그냥 어떤 공간이다. 일기장이기도 하지만 일기장일 수 없는 어떤 공간. 일기장이긴 한데 일기장이 아니기도 한. 어떤 공간. 그래서 나를 가장 많이 닮았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난 항상 사무실에 있기에, 사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록 나는 누가 들렀다 가는지 모른다 해도. 그들이 내가 있는지 여부에 신경을 쓰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해도. ‘나’라는 어떤 사람이 사무실 한 구석에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일상은 완전히 노출되지만, 이런 노출이 나와 관련해서 알려주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것을 알려주면서도 알려 주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 이런 내 생활 방식은 [Run To 루인]과 닮았다. 나의 블로그는 나의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또한 나의 일부만을 알려준다.
나의 오프라인과 나의 온라인. 이 둘을 다 안다고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나의 모습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모습이 낯설다. 종종 나의 블로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낯설고, 내가 사무실에 있는 모습을 말해주는 사람들의 언어 속에 있는 내가 낯설다. 그 둘을 합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나의 블로그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아니며, 사무실에 머무는 나도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런 어떤 기억들의 조합, 흔적들의 조합일 뿐이다.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뉜 조각 맞추기인지 모르는 상태인데다 각각의 조각들도 어느 하나 딱 들어맞는 게 없는 조각 맞추기. 근데, 고작 몇 개의 조각만으로 타인과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을 뿐, 이런 게 너무 당연하다.
백만 년 만에 음악다방에 새 글도 하나 쓰고 음악도 올리고 댓글도 달았다. 참 민망하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말, 쓰고 지우길 반복했던 말의 일부, 조각 하나는 다방에 있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넋두리
많은 글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고 있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다. 거짓말이다. 쓰고 싶은 말을 쓸 수가 없어 다른 어떤 이야기를 찾고 있는데 쓸거리가 없다. 그래서 쓰고 지우길 반복한다.
그저 음악이 없었다면 난 지금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음악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몇 번을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하지만 요즘은 니나(Nina Nastasia)를 피하고 있다. 얼마 전, 니나를 들으려다 알 수 없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냥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듣고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느낌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 느낌 이후로 피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피하고 있다. 지지(mp3p)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재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곧 듣겠지.
아침에 눈이 왔다. 나에겐 올해 처음 본 눈이다. 많은 눈이 내렸지만 이젠 다 녹았다. 덮어서 가릴 수가 없다. 햇빛이 빛난다. 사금파리 끝에서 반짝이는 붉고 비린 햇살에 눈이 아프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만 몇 번이고 되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