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비움

26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 가요. 우히히. 놀러 가는 건 아닌데, 왠지 놀러 가는 기분이라 안 쓰려다가, 그래도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

시절이 하 수상하여, 차라리 집회에 나가고 싶지만 그래도 갔다 오는 게 좋겠죠. 그럼 월요일에 만나요. (댓글은 그때;;)

숨책, “놀지 않으면 DISplay한다.”

어제 갑자기 연락을 받고, 숨책에서 잠깐 알바를 했다. 알바를 겸해서 놀러 간 덕분에 평소에 찾던 책들도 몇 구했다. 가장 큰 수확이라면 [폐쇄자]를 구한 것. 오래 전부터 소장하고 싶었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기에 무척 기뻤다. 더구나 숨책은 만화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도 아니기에 기쁨이 더 컸달까. 흐. [보트 위의 세 남자]도 획득(득템! 흐흐 ;;). 이건 [카모메 식당]에 나온 소설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닌가? 헷갈린다. 암튼 지다님 서평에 따르면 재미있을 거 같다. 흐. 그 외에도 몇 권의 책을 더 샀는데 언제 읽으려나.

아참, 숨책에서 책 산 거 자랑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고.

어제 “숨”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가 정말 멋진 말을 들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Dis-play is (only) display.”(문법은 무시하는 센스! ㅠ_ㅠ) 정도가 되려나.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놀지 않으면 전시/과시만 한다.”란 의미. 책만 읽고 놀지도 않고 활동도 않을 때, 자신의 지식 과시만 하게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아니, “논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계기여서 위로를 받았다는 게 더 정확하리라. 아무려나, “놀지 않으면 DISplay한다.”는 말이 참 좋았다.

앨리스, Alice doesn’t

[앨리스는 ~하지 않는다]Alice Doesn’t의 서문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책을 다 읽으면 좋겠지만 당장 그럴 여건은 아니니, 일단 서문 정도만 읽으려고. 근데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를 읽지 않으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ㅠ_ㅠ

그래서 일전에 마틴 가드너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다. 근데, 오오, 진작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재밌다. 재기발랄한 말장난(언어유희라고도 말하는;;)과 치밀한 구성. 루이스 캐롤을 좋아하고 때로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말이지 한 구절, 한 구절을 모두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가드너 역시, 상당한 양의 주석을 달았는데, 이런 주석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고 읽어도 재밌다. 대체로 이런 주석은 내용을 상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기에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다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주석은 너무 재밌다.

일테면 앨리스가 토끼굴에 들어간 후,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며 “어머나, 점점 더 뒤죽박죽이야! 내가 정말 유식한지 알아봐야 되겠어. 어디 보자. 4 곱하기 5는 12이고, 4 곱하기 6은 13, 그리고 4 곱하기 7은…. 안 돼! 이런 식으로 가면 20까지는 절대 도달하지 못할 거야!”(55쪽)란 말을 한다. 이런 계산 자체도 재밌지만, 주석을 보면 더 재밌다.

왜 앨리스가 20까지 도달할 수가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곱셈표는 12까지 나온다. 그러므로 만약 앨리스식의 엉터리 곱셈을 계속하다 보면, 4×5는 12, 4×6은 13, 4×7은 14, …가 되고, 4×12(앨리스가 외울 수 있는 최고의 숫자)는 19가 되어서 결국 20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된다.
A. L. 테일러는 [하얀 기사]라는 책에서 흥미롭긴 하지만 훨씬 복잡한 이론을 전재하고 있다. 18진법을 사용하는 숫자 체계에서는 4×5가 실제로 12이며, 21진법을 사용하는 숫자 체계에서는 4×6이 13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계속 진행해 보면, 언제나 기준 숫자는 3씩 늘어나고, 곱한 값은 1씩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곱한 값이 20에 도달하게 되면 처음으로 이 법칙이 깨지게 된다. 4×13은 20이 아니라(42진법을 적용했을 때) 1이 되기 때문이다. (55쪽)

루이스 캐롤이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기도 하단 점에서 이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독해는 언제나 흥미롭다. 흐흐.

또 다른 재미라면, Alice Doesn’t의 서문에 실린 내용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스나크가 나오는 구절들. 최근에 [스나크 사냥]을 읽어서인지, [앨리스]에서 이미 스나크가 등장하고 있다는 게 반갑고 재밌었다. 특히나 스나크snark가 shark의 h를 n으로 식자공들이 잘못 조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석은, 무척이나 재밌었다. 왠지 그럴 듯 하고. 흐흐.

책의 머리말에 나오는 구절.

그나저나, 혹시 “wed. Oct. 29, 1975 Alice doesn’t!”가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분, 무슨 이유에서 이런 구절이 들어간 피켓을 데모에서 들었는지 알려주세요~, 라고 쓰려는데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찾았다. [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라는 영화에서 따온 구절인 듯. 1975년 10월 29일, 여성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와 노동시장에 파업을 하자고 NOW(전미여성기구)에서 제안하는데, 이 제안의 이름이 “Alice doesn’t”이다. 집 안팎에서 일을 하지 않고, 음식을 사려고 돈을 지불하지 않으며, 대중문화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지지하지 않고, 등등. 이런 일을 하기 위한 행사이름이 “Alice doesn’t”이다. (자세한 건 여기로.) 물론 책 내용은 이 행사와 직접 관련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아예 무관한 내용은 아니다.

암튼, 암튼, 루이스 캐롤의 책은 여러 모로 재밌다. 매력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