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촛불집회와 가두시위를 두고, “배후가 있다”, “운동권이 추동해서 무고한 시민들이 놀아나고 있다”는 식으로, 정부와 몇몇 언론이 얘기하고 있다. 재밌는 말이다. 운동권, 인권활동가들이 뒤에서 부추겨서 무고한 시민들이 집회에 나오고 가두시위도 한다는 말. 이 말이야 말로 시민을 “바보”로 여기고 있다는 말의 반증이다. 이 정도의 추동에 시민들은 아무런 판단도 없이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것, 그것이 현 정부의 수준인 듯하다.

아울러 운동권이나 인권활동가는 시민 아냐? 운동권이나 활동가들은 이제 시민이 아니니, 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인정투쟁”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푸훗.

아는 활동가 한 명은 집회와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활동가 한 명은, 연행되었다고 한다. 연행된 100여 명 중에 한 명. 재밌는 건, “무고한 시민” 행세를 하기엔 이미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어 그러지도 못 한다는 거. 정말, 시절이 하 수상하다.

31일 퍼레이드가 끝나면, 축제에 참가하지 않고 청계천에서 진행하는 촛불집회에 합류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퍼레이드 복장과 각 단체 깃발을 그대로 들고 집회에 참가하자는 것.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자는 의미도 있지만, 현재 촛불집회가 가진 문제점을 환기하자는 의미도 있으니까. CJD를 에이즈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방식, 대한민국을 외치고 애국가를 부름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방식, 장애인, “여성”, “비성인”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발언 등에 문제제기하고 이런 방식이 차별과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동시에 이렇게 배제하는 이들 역시 살아가고 있는 시민임을 알릴 필요도 있으니까(“건전한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안에서의 운동이고, 집회 안에서의 집회인 셈.

이러나저러나, 아침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는데,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잠에서 확 깬다.

주절주절

01
한동안 귀차니즘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만사가 귀찮다. 이럴 때 엄마님은, “만사가 귀찮으면 죽어야지.”라고 일갈하실 텐데. 큭. 나의 성깔은 집안 내력인 게야. -_-;;

02
이젠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드립할 수 있는 도구들이 생겼다.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커피를 맛있게 볶아 주는 곳이 있으니 이 어찌 아니 좋을까. 훗. 다만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겠구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같이 하고 있달까.

03
오는 토요일, 31일은 퀴어문화축제의 행사 일환으로 진행하는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다. 농담처럼 한 해 비가 오면 다음 해는 비가 안 오고, 그 다음 해엔 비가 온다고 했다. 작년엔 비가 안 왔는데, 올핸 어쩌려나. 일단 기상청 예보엔 비가 안 온다고 나와 있다. 비 오면 안 되는데.

이날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서도 부스를 설치하고 퀴즈쇼를 할 예정이다. 몇 명의 참가자들을 보고, 저 사람의 성별과 성적 지향이 어떤 것 같은지 얘기하는 쇼. 맞추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말하는 게 핵심. 나 역시 어떤 옷을 입고 있을 예정. 푸훗.

퍼레이드에선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인데, 어떻게 하려나.

04
목요일에 모 대학에서 화장실과 관련한 특강을 하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주제가 좋아서 한다고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특강은, 대체로 “트랜스젠더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특강은 화장실이란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특강을 하며 느꼈던 답답함 혹은 지루함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라 꽤나 기대하고 있다.

감동적인 말들

다큐 [3×FTM]엔 세 명의 ftm이 등장하는데, 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고종우씨다. 적잖은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 법안 명진씨나 활동가로서의 언어와 정체성이 분명한 무지씨와 같은 캐릭터를 좋아할 것 같은데, 실제 다큐를 읽고 나면 가장 인상적이고 좋아하는 캐릭터는 고종우씨다. 활동가로서 활동을 하다보면, 이전까지 사용했던 언어에서 활동을 통해 익히는 언어로 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고종우씨의 언어는 날 것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날 것의 언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명징하게 포착하고 드러낸다.

그런 말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들이 있는데,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여요.”란 말과 “내가 내 삶엔 전문가니까요.”란 말이 무척 좋다.

ftm인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여성으로 설명하면서 남성의 옷을 좋아하는 걸 이해하지 못 한다고 종우씨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술을 마시고 있는 와중에 하는 말인데, 이해는 못 하지만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에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받아들인다는 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물론 이 말이, “결국 당신이 ftm이 아니었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 아니냐.”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성찰하고 이런 성찰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에, 완벽하게 기득권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기득권의 편을 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종우씨는, 자신이 기득권일 수 없게 하는 상황,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자 하는 셈이다.

“내가 내 삶엔 전문가니까요.”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감동했는데, 이 말처럼 내 자신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경우처럼, 트랜스젠더 역시 연구의 대상, 다른 누군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어떤 자리에 트랜스젠더가 나가면 트랜스젠더는 경험 증언자이고 전문가가 별도로 있어서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해석해주고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활동을 시작하던 초기, 어떤 단체에서 사업을 기획할 때 특히나 이런 구도를 많이 취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했다. 그러니 종우씨의 이 말이 ‘내가 내 삶을 완벽하게 알 수 있다’란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학력, 학벌, 전문가 권위 등에 기대지 않으려는 의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설명하게끔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니, 아니. 이런 식의 해석 따위 필요 없다. 그냥 이 말 자체가 멋지잖아. 힘을 주는 말이란 점에서, 그냥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