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01
이미 한 번 정도는 여기에 쓴 것 같기도 한 얘기.

예전에 어떤 취미 모임에서 활동할 때 누군가가 나의 활동과 관련해서 “최고의 인사이드이자 최고의 아웃사이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정말 그랬는지 잘 모르겠고,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이랬나보다. 근데 따지고 보면 나의 위치는 항상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02
그러고 보면 한 모임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던 적도 별로 없는 거 같다. 그 모임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거나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으면 그냥 떠났던 거 같다. 근데 내게 그런 떠남은 곧 인간관계를 단절한다는 의미란 점에서 좀 곤란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싫었던 건 아닐 때에도 모임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은 그 모임과의 인연을 끝으로 사람들과의 인연도 끝냈다. 물론 우연히 만나 인사라도 하면 반갑지만, 10년 지기 친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성격이라, 먼저 연락을 안 하다 보니 그냥 인연의 끈은 희미해지고 사라졌다.

03
사람이 만든 건 유기체여야 한다. 그래서 효용이 끝나거나 더 이상 계속할 이유가 없을 때엔 끝내야지, 억지로 유지하려는 순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고민을 한다.

04
근데 사실 나 때문이란 것 정도는 안다. 그래서 그냥 나만 사라지면 어느 정도 봉합은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물론 봉합은 언제나 언제든 덧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임시방편이긴 하다.

05
한 곳에서 징하게 오래 머문 경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오래 머무는 건 부패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최선일까? 혹은 차선으로서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해서 한계와 단점과 반성은 필요하기 마련. 그럼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만남. Third

10년 걸렸다. 아니 10년 조금 더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기다렸다. 그 동안 많이도 만나고 싶었지만, 소문만 무성했다. 그래서 새로 만날 길은 없을 거라 믿기도 했는데.

하지만 나의 만남은 10년 조금 덜 거렸다. 처음 만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저 웹을 타고 배회하던 어느 날의 어느 늦은 밤. 단박에 좋았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이 만남을 위해 기다렸던가 싶었다. 물론 만남을 주선한 사람의 소개는 별로였다. 그 소개가 싫었지만 소개가 싫다고 만남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니까.

한 번의 만남이 한 번만 만나는 건 결코 아니고, 우연한 만남이 그저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인 건 아니다.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도 새로운 느낌. 언제나 위로를 주는 느낌. 그런 느낌이 좋아서 많이많이 자주자주 만나는가 하면, 또 만나지 않고 외면하며 지내던 시절도 많았다. 하지만 외면하고 지내던 시절에도 잊은 적은 없었다. 하루를 보내는 어느 시간, 갑자기 너무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을 때면 스스로를 질책하곤 했다.

2005년 즈음엔 소문이 무성하기도 했다. 올해는 만날 수 있을 거야, 라고. 하지만 소문일 뿐, 실체는 없었다. 하지만 소문만으로도 좋았다. 충분히 오랜 시간 소식이 없었는데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거란 소문이라도 도는 건, 언젠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젠 소문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다시 새로운 강산으로 바뀌려는 시간이다. 11년 만의 만남이기도 하고, 10년 만의 만남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만큼 새로 만나기가 힘들 거란 짐작은 있었다.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지난 두 번의 만남이 너무도 강렬해서 새로운 만남이 쉽진 않았으리라.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 두 번째 앨범, 1998년에 라이브 앨범 이후, 베쓰 기븐스의 개인 작업은 있었지만 그룹의 작업이 없어, 징하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이제서야 Portishead의 세 번째 앨범 [Third]가 나왔다. 사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정말 나온거야? 정말인거야? 라고 몇 번이고 반문했다. 하지만 정말 나왔다!

음악은,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만족스럽다. 흑백영화 같은 느낌도 여전하고, 오래된 LP판을 틀고 있는 듯 한 느낌도 좋다. 음악은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포티쉐드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다. 백 번 좋다고 말하면 무엇하랴. 다방에 올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