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공격], 김민정 옮김, 열린책들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홀딱 반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미녀 에스메랄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를 사랑해야 해! 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겉모습만 보고 지레 겁먹지 말라니까!”
상당히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왜 에스메랄다한테만 올바른 태도를 요구하는 걸까? 카지모도한테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 그는 여자의 겉모습에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가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는 그는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지.
그런데 그가 마음에 품은 것은 누구든 반할 수밖에 없는 어여쁜 집시 처녀다. 그런데도 이 꼽추 사내의 영혼이 순수하다고?
단언하건대 그의 영혼은 더럽고 천박하다.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바로 카지모도니까.
(p.10-11)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난 세상에서 가장 못생겼지. 그게 바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는 증거야. 나는 네 아름다움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고, 넌 내 추함으로만 더럽혀질 수 있으니까. 난 타고난 추접스러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간쓰레기, 이런 나 없이 넌 타고난 순수함에 희생된 인간 천사에 지나지 않아.
(p.157)
글만큼 육체적인 건 없어.
(p.169)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때의 고통스러움. 고백하는 순간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고백할 수 없음의 고통들.’
노통브 식의 “미녀와 야수”를 읽다가,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노통브의 어떤 소설들은 읽는 것 자체가 좀 끔찍하거나 힘든 경우가 있다. 내용이 아니라 기술하는 방식이 끔찍해서. 이 소설도 좀 그렇다. 그래도 “글만큼 육체적인 건 없어.”란 구절은 무척 좋다.
아무려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