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

홍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직진으로 200미터 정도를 걸으면 편의점이 나온다. 그 편의점을 왼쪽으로 끼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골목은 사람이 드나들 법한 곳이 아니라, 두 명이서 걷기엔 좁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각종 음식점과 카페의 뒷문이 있고, 쓰레기통이 즐비한 그 골목을 얼마간 걷다보면 보라색의 입구가 나온다. 물론 그 입구로 들어가는 건 아니다. 그 입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좀 더 넓은 골목이 하나 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정확하게 13번째 입구를 찾으면 ‘그 카페’가 나온다.

카페는 그 건물의 2층에 있는데 계단은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이블은 다섯 개 남짓. 각 테이블마다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의 의자가 놓여 있다. 그렇다고 카페가 좁은 편인 건 아니다. 각각의 의자는 다양한 종류로 갖추어져 있는데, 딱딱한 나무 의자는 별로 없다. 소파처럼 푹신한 의자, 바람 빠진 공처럼 안으로 파묻힐 수도 있는 의자. 물론 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와, 그런 의자에 방석을 올린 의자도 있다. 조명은 약간 어두운 편이지만 몇 시간 동안 책을 읽어도 괜찮을 정도고, 흐르는 음악은 조용해서 옆 사람과 속삭이듯 얘기해도 충분하다.

카페 한 곳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그곳엔 만두베개와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고, 가운데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곳엔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든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원한다면 등을 벽에 기대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친구와 오기보다는 혼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 정도는 소파나 바람 빠진 공 같은 의자에 파묻혀 잠들어 있다. 그 앞엔 식은 커피 잔과 페이지를 표시한 체 덮어둔 책이 놓여 있고, 때로 애기 고양이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도 하다. 음료는 몇 종류의 커피와 몇 종류의 허브가 전부다. 커피는 원두를 볶는 과정부터 주인장이 직접하고, 허브는 카페 한 곳에서 직접 기른다. 그러니 허브는, 손님이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잎을 따서 만들지만, 단골들의 경우 주인에게 컵과 뜨거운 물만 받아서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 외에 밀전병으로 먹는 카레(밥을 추가로 주문할 수 있다)와 주먹밥을 식사로 갖추고 있다. 그 모든 식사는 유제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지만, 주인장이 채식을 하는 건 아니다. 배가 고프거나 약간의 허기를 느낀다고 반드시 식사를 주문할 필요는 없는데, 적당한 두께로 자른 바게뜨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게뜨는 토스터기와 함께 카페 한 곳에 놓여있고, 본인이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다. 무한리필이기에 식사를 시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음료 가격은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닌데, 찾는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기에 카페 문을 열 때 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머물 수도 있다. 10시 즈음 문을 연다고 입구에 적혀 있긴 하지만, 11시 즈음에 오는 게 안전하다. 밤 12시에 닫는다곤 하지만 새벽 1시나 2시까지 문을 열어 두는 경우도 많다. 단골들의 경우, ‘그 카페’가 문을 연 시간 내내 머물기도 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단골이라고 해서 주인장이 알은체 하지는 않으며, 그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침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무시하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데, 그래서 단골들은 때로 자신이 그곳에 혼자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카페가 문을 연지 이제 3년하고 2달이 지났다고 한다. ‘그 카페’에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한동안은 더 갈 수 있을 거 같다.

공포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부동산경매와 관련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추리소설인데, 600페이지가 넘지만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어. 작가가 글을 잘 쓰거든.

나는 귀신이나 어떤 무서운 상황이 등장하는 책도 곧잘 읽어. 영화도 이른바 공포영화라고 불리는 장르를 무척 잘 읽고. 작년 여름에 읽은 영화의 태반은 공포영화라고 불리는 장르일 거야.

근데, 나는 무척이나 겁이 많아. -_-;; 그러니까, 늦은 밤 무서운 소재의 소설을 읽으면 화장실에도 제대로 못 가. 어떤 땐, 보일러로 물을 덥히는 동한 소설을 읽다가, 무서워서 세수하러 가길 꺼린 적도 있어. 씻느라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면 거울 너머에 귀신이 있다거나, 화장실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떨어지는 장면을 본다거나 하는 상상을 하거든. 이런 상상에 세수도 간신히 할 때가 많지만, 다른 한 편, ‘나의 감각 경험의 상당 부분은 시각경험에 의존하고 있구나’를 깨달아.

눈을 감는 동안, 내가 있는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는 것이 두려운 거지. 눈을 감는 동안은 현재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고.

아무려나, [20세기 소년]을 읽을 땐 정말, 화장실에도 간신히 갔고, 세수도 간신히 했지. 요즘 읽고 있는 소설도 만만찮아서, 늦은 밤 소설을 펼쳐서 읽으면 금방 빠져들지만 씻으러 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후회해. 그런데 또 추리소설 같은 것, 공포소설 같은 것은 밤에 읽어야 제격이잖아. ;;; 그래서 만날 이런 갈등을 해. 책을 읽고 싶다는 유혹과 씻기 전에 읽으면 제대로 못 씻을 거라는 두려움. 어쩌면 이런 갈등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고. 흐흐. -_-;;

퀴즈

키드님이 낸 문제를 보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하나도 모르겠다.’ 였다. ㅠㅠ 문학은 읽은 것과 전혀 모르는 작품/작가가 섞여 있어서 그렇다 치자. 나의 경우, 영화 제목은 간신히 기억해도 배우와 감독,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가 전혀 없고, 음악은 가사를 찾아서 읽는 경우가 드물고. ㅠㅠㅠ 그렇다고 인터넷 찬스를 쓰기는 싫고. -_-;; 흐흐

그러니 어느 정도의 난이도로 보이냐면,

1930/괴델/아인슈타인

메리 셸리/수잔 스트라이커/해러웨이/[엔드 게임]

정도랄까? 쉬울 것 같으면서도 헷갈리고. 종종 검색을 해도 정확하게 맞추긴 힘들 거 같은 느낌. ㅠ_ㅠ

+
참 민망한 소식. 책이 2월 말엔 나올 예정. 최근 교정을 다시 봤고, 편집은 거의 다 끝났고. 혹시나 위의 두 문제를 다 풀면 선물로 책을 보내 드릴 수도…. ;;;